마당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비온뒤무지개재단 큐플래닛)

 

아마도 2018년 가을 쯤으로 기억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국 회의에서 유튜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원사업도 실태조사도 아니었다. 바로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해보자는 이야기였다. 재단과 캠페인을 홍보하는 채널이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등장한 청사진은 그 이상이었다. 바로 한국 최초의 퀴어방송국. 뉴스, 인터뷰, 예능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 ‘이게 될까?’라는 마음과 ‘까짓거 해보자’는 마음이 반이었지만 어쨌거나 프로젝트는 그렇게 발을 뗐다. 그렇게 채널의 기획에서 프로그램 구성과 팀원 섭외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3월 18일 퀴어방송국 큐플래닛은 개국을 선언했다.

 

 

오픈을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오픈 당일 과연 어떤 기분일까 늘 궁금했어요. '울거 같다, 운다, 이건 100%다'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사실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오픈에 동반되는 이런저런 업무와 당장 20일로 예정된 촬영 준비로 머릿 속이 분주해요.’

큐플래닛이 오픈한 날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의 일부다. 유튜브 채널을 여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개인 ‘유튜버 채널’이야 출연하는 사람이 이미 콘텐츠의 역할을 하지만(가령 유명인들의 유튜브 채널을 생각해보라, 이들이 먹고 일하는 것만 찍어도 콘텐츠가 된다) 큐플래닛은 그런 채널이 아니었다. 우리는 큐플래닛이 유튜브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에 대응하여 정확한 정보를 전파하고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공익적 성격을 가지기를 원했다. 동시에 많은 시청자들을 만나야 했기에 재미와 흥미도 잡아야 했다. 하지만 퀴어방송국이자 공익채널로서 가진 품위가 있기에 웃기다고 무작정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즉 채널의 성격을 규정하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머리가 터질지경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유튜브 초심자이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큐플래닛 오픈 전에 농담처럼 그런 말을 했다. 6개월만 하면 익숙해질거라고. 모든 일이야 처음이 어렵고 발을 떼서 일상이 되면 점차 덜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저 말을 했을 때는 기획이 끝나고 반복적인 제작 체계가 갖춰지면 채널 운영이 수월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까. 실제로 큐플래닛은 개국 이후에 더 많은 회의를 했다. 팀 전체 회의도 여러 번 가졌다. 그 결과 오픈 이후 두 번 정도의 개편을 거쳤다. 신생 채널치고는 많은 편인데 어쩔 수가 없었다. 기획 단계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점이 제작을 거치고 콘텐츠를 업로드 하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튜브에서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계속해서 ‘지금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오픈을 한다고 그대로 가는 것도 눈 앞에 꽃길만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영상 콘텐츠’ 만들기의 어려운 점

유튜브는 영상 플랫폼이다. 즉 영상을 찍어서 편집해서 업로드를 하는 공간이다. 짧은 문장으로 정리를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주제가 특정된 채널은 더욱 그렇다. 영상의 깊이가 얕으면 다룰 수 있는 소재가 한정적이다. 그렇다고 깊이 있는 이야기, 보다 복잡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면 그 소재로는 절대 영상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를들어 글을 통해 ‘섹스-젠더-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설명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여러 가지의 정보가 하나의 원고지 위에 담긴다. 그렇다면 영상은 어떨까. 짧건 길건 영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새로운 정보가 전달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글처럼 종이 한 장 위에서 모든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게 아니라 진행자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 러닝타임이 길면 이전의 이야기를 까먹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야기가 복잡하다면 이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감상을 해도 된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도 아닌 콘텐츠에 이 정도의 열정을 기울일 시청자는 드물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영상에 CG를 입혀 도식을 그리거나 자막으로 부차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업 또한 노동이자 기술이다. 즉 시간이 더 들거나 돈이 더 든다. 한 마디로 한정된 예산과 일정 속에서 결국은 어떤 소재를 어떻게 어디까지 다룰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혹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의미가 있거나 혹은 반응이 좋을 것 같은 콘텐츠에 시간과 예산을 몰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영상 콘텐츠’를 팀으로 제작할 때 생기는 문제도 있다. 요즘은 개인이 출연, 촬영, 편집을 일임하는 채널도 있지만 큐플래닛은 촬영담당과 편집담당을 따로 두고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잘 맞고 성격이 좋은 담당자들과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영상 콘텐츠 제작’ 자체에서 오는 본질적인 문제다. 예를들어 내가 편집자와 글을 교환한다고 치자. 마음만 먹으면 논의 중에 거의 실시간으로 완성본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실제로 나는 편집자와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교환하며 글을 완성해 송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영상은? 불가능하다. 기획자, 촬영자, 편집자는 영상에 대한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모이지만 그 그림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획했던 것과 다르게 현장에서 촬영이 진행되거나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영상이 편집되고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촬영자나 편집자도 기획으로 접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대본이나 영상을 받게되기도 한다. 그 결과 팀원들 각각이 생각한 그림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때 영상은 순조롭게 완성되지 못한다. 거의 모자이크를 맞추는 수준으로 뼈를 깎는 편집과정을 거치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재촬영을 감행해야 하는 수도 있다. 물론 다행히 아직까지 큐플래닛이 그 정도의 일을 겪은 적은 없다.(물론 다른 팀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유튜브, 해봐야 남는 것은 고통 뿐?

물론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유튜브 해봐야 고생 뿐이라는 소리 같아 보일지 모르겠다. 힘든 것도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담당자의 자리가 주는 중압감도 꽤 크다. 예산과 팀원들의 노력을 생각했을 때 생각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심란하기 그지 없다. ‘기획의 문제인가? 소재의 문제인가? 나의 감각이 낡았는가? 조금 더 현장을 챙겼어야 했나?’ 등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영상의 반응이 좋다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왜 이 콘텐츠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해답을 찾지 못하면 성과는 찰나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는 새로운 매체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언론이나 블로그 SNS는 사용하지 않지만 유튜브는 쓰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또한 팀을 꾸려서 공동작업을 하는 일도 힘들 때보단 황홀한 순간이 더 많다. 여러 사람이 손을 모아 하나의 현장에서 혹은 각자의 공간에서 콘텐츠를 완성시켜 가고 결과물을 받아드는 순간은 매번 놀라움을 전한다. 기획자, 출연자, 촬영자, 편집자가 서로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결과 나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신선함이 있기에 다음을 기대하고 계속해서 영상을 만들게 된다.

 


한국 최초의 퀴어방송국 큐플래닛은 현재 다양한 퀴어와 앨라이들의 삶을 들어보는 ‘손희정의 TMI’, 퀴어 시사 프로그램과 고민 상담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퀴어 업데이트’(진행: 은하선, 신필규) 그리고 퀴어들도 즐겁자고 만든 퀴어 패러디 예능 ‘덜지니어스’가 절찬리에 방송 중이다.(그리고 ‘덜지니어스’는 큐플래닛의 자체제작이 아닌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제작은 ‘블랭크레이블’이 맡고 만들어진 영상은 ‘큐플래닛’을 통해 제공된다, 큐플래닛은 퀴어방송국으로서 다양한 창작자들이 만든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지향하고 ‘덜지니어스’가 첫 번째 주자라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큐플래닛은 앞으로도 많은 창작자들의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실시간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큐플래닛의 기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채널을 시작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 상태에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 생소한 일이 익숙해지면 자신감이 붙고 그 힘이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유튜브를 시작해볼까 주저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일단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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