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요즘은 자기전에만 들었던 ASMR 컨텐츠들을 시시때때로 틀어놓습니다. 책보고 글쓰고 방 닦고 설겆이하고 혼술하면서 허전해서 일단 틀고보는 식이에요.
안부를 얘기하는 김에 막간의 ASMR썰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아 얘가 키보드로 달고나커피+수플레계란말이 같은 걸 만드는구나 생각해주세요.
예전엔 많은 ASMR컨텐츠가 많은 경우 사물태핑과(초반에는 자신을 소리연구자라고 적어넣은 이들도 있었지요.) 먹방, 성적인 상황극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이후에는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시도들이 눈에 띕니다. 이완과 휴식을 위한 청각 자극은 각종 캐릭터를 연성하고 롤플레이와 결합하면서 이상한 혼종들을 창안합니다. 대개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주도하는가 싶었던 자체 스튜디오형 롤플은 최근들어 남성 채널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바버샵, 카페, 귀청소, 마사지, 병원, 학원물, 마법학교, 남친/남사친/남매형제플, 치유, 최면, 병간호 등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ASMR은 청각적인 자극을 바탕하지만 흥행여부는 기본적으로 시각요소가 좌우하는 모양새입니다. 해서 이들 중 많은 수는 마이크 외에도 조명과 촬영스튜디오를 방불케 하는 장비와 소품을 구비하지요. 장비가 부실해도 얼굴이 장비인 경우도 많습니다. 말하자면 외모와 처세를 포함한 전반적인 캐릭터 구축과 디테일이 조회수의 척도가 되었는데요.. 기본기라 할 수 있는 트리거(trigger) 스킬이나 마이크 퀄리티와 상관 없이 해상도(해상도가 낮으면 아무리 소리가 좋고 잘생겨도 좋아요가 크게 늘지 못하는 무정한 세계)와 디테일이 높으면 그 자체로 시각적 팅글링이 충족되므로 좋아요와 댓글이 많이 붙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몇몇 독자들은 외모와 트리거 기술은 반비례하는가 불만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요. 몇몇 ASMR 유튜버는 백만이 넘는 팬덤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업 콜라보도 많아지고, 정기후원을 유도하며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한 친구는 ASMR에 서비스 롤플레이를 접목하는건 유사성매매의 정동과 비슷한 맥락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상당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는 단순히 성적 롤플 같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떠나 몇 가지 시사점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귀청소와 입소리(라 하지만 대개는 핥고 빠는 소리) 방송은 단순히 감각을 활성화하고 긴장과 이완을 컨트롤하는 몸의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ASMR은 청각적 자극을 목표로 삼지만 구독자의 감각적 쾌락뿐 아니라 정서적 욕망을 롤플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가 전제되는 방식 속에 서비스업종이 컨셉의 얼개가 되는 거지요.
ASMR은 겉보기에 다른 장르에 비해 강도가 높지 않아 보이지만 컨텐츠 구성에 있어 (당연히) 젠더위계와 규범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서비스 직종이 테마로 작동하는 경우에는 친절의 기술들이 요구되고, 그 속에서 젠더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여자 크리에이터는 방송과 상관 없이 남자보다 구독자의 외모지적이나 비하적인 평가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독자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컨텐츠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은 둘의 관계가 온전히 수평적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채널운영자 안에서도 성별과 성적지향에 따라 다른 반응과 처우를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경우 크리에이터는 악플을 지우거나 악플러를 차단하는가 하면, 외국어로 컨텐츠를 제작해서 국내의 시청자와 거리를 두거나 아예 불친절을 컨셉으로 상황극을 기획하는 등의 대응을 시도합니다. 말하자면 방송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청자들과 소통하면서도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겠지요.
ASMR은 이미 특정 취향 너머 일인 채널 씬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성적 뉘앙스가 잠재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는 정도의 문제일 것이고 실상은 자극과 오락과 비지니스와 교양을 횡단하는 수많은 혼종이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극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꼭 상황극과 캐릭터를 만들지 않고, 성적인 함의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ASMR은 일차적으로 감각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응용력을 바탕으로 하지요. 하기에 ASMR은 어린이청소년들의 학습과 오락거리로 채택하기도 합니다.
당장 코로나 정국 전후로 신생 ASMR 채널들이 많이 눈에 띄고 검색되는 경향이 눈에 띄는데요. 이는 아마도 1. 유튜버가 환란 속에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선망의 직종으로 보이기 쉬운데다 2. ASMR은 전문성과 일인채널 특유의 센캐(기갈?)와 처세가 굳이 필요치 않으며 기본적으로 큰 품이 들지 않는 소프트장르로 비쳐지는 인상이 작동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상 이어폰 마이크로도 만들 수 있고, 입으로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누구든 만들 수 있으니까요.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ASMR 채널의 선호는 물리적 거리두기 속에서 어떻게 감각적 친밀함의 경험이 제공되고 유통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ASMR은 감각자극 너머 독자의 결핍을 상냥한 판타지로 충족시켜줍니다. 생각해봅시다. 현실세계에 귀파주고 메이크업 지워주겠다고 공짜로 제 무릎을 내주는 훌륭한 생명체가 얼마나 있을까요.. 불면과 스트레스를 걱정해주는 이들은 있을지 몰라도 베개 맡에서 사랑스런 눈빛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살펴주고 혹여나 심심할까 계속 말걸어주고 진찰과 치료에 간식까지 준비하고 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토닥여주는 완전체 같은 건 있을 턱이 없습니다. (저만 이러고 사는 건가요?) 설령 누가 그래준다고 찾아와도 매우 부담스럽고 미안할 것...에 비해 유튜브는 좋아요와 구독과 주접댓글 수준의 소통만 하면 된다는 점에 편의적입니다.
이성애 독자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남녀노소를 상대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친밀함을 제공한다는 점에 ASMR은 퀴어친화성을 잠재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많은 게이 남성들이 종사하는 콜센터 등과 같은 서비스 업종은 상냥하고 친절한 남성 ASMR 캐릭터의 컨셉과 겹치는 지점이 많습니다. (마음에 드는 ASMR 크리에이터 인스타계정을 들어가 검색하면서 이사람 퀴어겠거니 혼자 짐작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지요.) 국내에도 아직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ASMR의 젠더정치학적 재현에 대한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해외에는 퀴어 당사자성을 내세우거나 퀴어적인 요소들을 내건 ASMR 채널과 컨텐츠도 적지 않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젠더표현이 다양해지면서 세계관도 넓어지고 소재도 다양해지는 것이 인지상정. 향후 ASMR은 어떤 시도와 변화를 가지게 될까요?
덧: 가끔은 이런저런 딴생각을 합니다. 테마와 캐릭터를 계속해서 변주하고 창안하는 가운데 인권과 ASMR은 어떻게 교차할 수 있는가. 구호를 마이크에 속삭인다던지, 점거농성 상황극을 만들어본다든지...는 더 얘기하면 민망하고, ASMR 노동은 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나 방송노동자의 환경과 교차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왜 내가 좋아하는 ASMR컨텐츠를 주변에 소개하고 같이 볼때면 어색하고 민망하고 후져지는 것일까, ASMR 애호는 결국 사람에 대한 갈망의 대리표상은 아닌가(맞다), 그걸 알면서 나는 왜 ASMR을 찾을까,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썰을 풀면설도 ASMR을 틀어놓을 만큼 찾아듣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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