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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유성원 a.k.a 버섯 북토크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by 행성인 2020. 9. 21.

일시 : 202097일 월요일 저녁 7:30

장소 : 행성인 교육장 / Zoom

사회 :

녹취 : 갈릭

주최 : 행성인 HIV/AIDS 인권팀

 

 

: 행성인 HIV/AIDS 인권팀에서 기획한 유성원 작가님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북토크 시작합니다. 코로나19 2.5 단계인 만큼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어요. 급히 기획을 조정하면서 에이즈팀원 여러분들과 조촐하게 이야기 나눕니다. 저는 책을 읽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책 제목을 좀 비틀고 싶더라고요. ‘외로운 삼십대 모임 없는 토요일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유성원(이하 유) : 파주에 사는 서른네 살 게이 남성입니다. 주로 탑을 합니다. 정체화는 군대 전역한 스물세 살 무렵 했어요. 전에도 경험이 있었지만 스스로 게이라고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건 그때였고요. 그 무렵 종로 술번개에 처음 나가보고 찜방과 사우나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반시티 우리 동네 게시판같은 데서, 어느 지하철역 앞 공원 화장실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글을 보고, 그런 데를 찾아간 시기에요.

 

: 행성인은 언제 어떤 계기로 가입하고 회원으로 참여하셨나요?

 

: 행성인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2013년 겨울 무렵에 온 것 같아요. 당시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파도 감염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다 HIV/AIDS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 무렵 행성인에서 HIV/AIDS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고 그게 제 기질에 맞다고 느꼈어요. 술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 고민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고, 그런 고민을 품은 채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행동을 기획하는 곳이 행성인 HIV/AIDS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게이 남성을 사우나나 찜방이 아닌 오픈된 공간에서 만나 관계 맺는 게 어려웠어요. 제겐 게이 남성과 관계 맺을 때 그 사람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문법이 익숙해서, 성적인 호감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폭력적이거나 무례하지 않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제게는 덜 성애화된, 다른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편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행성인에 처음 오게 되었고, 점차 단체에 나오고 싶다고 생각해서 기웃거리게 된 것 같습니다.

 

: 단체에서 처음 만났지만 저는 주로 오프라인보다 SNS에서 버섯을 본 것 같아요. 트위터 등에서섯버체를 쓰면서 본인 이야기를 해오던 기록들을 종종 찾아본 기억이 나는데요. 당시 버섯님 문체나 글들이 주변에 많이 회자되고 사람들도 줄곧 따라했던 기억이 나네요. 주로 박타는 얘기와 찜방 가는 얘기를 하면서도 노골적인 섹스 이야기만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는데요. 본인 SNS에 대해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 저에게 SNS는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어요. 페이스북은 주로 좋아하는 기사나 관심사의 사람들이 올려주는 글들, 기사화되거나 출판되지 않았지만 글을 잘 쓰고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글을 공유하는 목적이었어요. 페북은 오프라인에서 아는 지인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졸업한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이나,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건너건너 알게 된 사람,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섞여 있었어요. 페북에서는 고나리질을 많이 받았어요. “유성원, 너 하루에 게시글 두 개만 올려.” 이런 식으로. 너무 글을 많이 올린다는 거예요. 나는 너 보라고 올리는 게 아닌데. 그러다보니 저를 전혀 모르는 트위터를 찾게 되었어요, 거기는 서로가 익명이라고 약속하는 공간이잖아요. 누구인지 아는 척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으로 통용되는 곳이어서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했어요. 팔로워도 안 받았어요. 제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을 때 그 사람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절히 체험하고 있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외롭거나 누가 보고 싶거나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제 감정은 구경거리 내지 화장실에서 똥 싸면서 볼 수 있는 그런 오락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공감을 원하면 자신이 병들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팔로워 같은 것도 없애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천 개면 천 개를 다 올리는 방식으로 썼어요.

제가 출판편집자로 일하다 보니 맞춤법을 항상 지켜야 하거든요. 트위터는 내 마음대로 써도 상관없고, 그런 부분이 좋았죠. 주변 사람들로부터 끊어지기 위해 선택한 매체여서 주변인에게 SNS에 대한 반응을 직접 듣지는 않았어요. 제 책에 있는 얘기의 많은 부분이 사실 트위터로 써왔던 거여서 누가 호기심으로 봤더라도 말하기 민망한 내용이 많아요. 트위터에서 팔로잉을 받진 않았지만, 계속 사용하면서 관계를 맺거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만남도 가졌고, 그러다보니 그분들을 통해서, 바이럴을 통해서 반응을 알고는 있었어요.

 

: 근래에는 에이즈팀에 나오고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에서도 활동하면서 운동에서 자기 언어를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도 고군분투를 해온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행성인 웹진에 외로움의 조건 이라는 글을 기고했잖아요. 이 사람의 얘기를 운동사회에서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했던 건데, 역시나 커뮤니티를 뚫고 나왔다고 생각할만한 문장들을 써주셨습니다.(웃음) 찜방에서 섹스를 한다,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섹스가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지는지, 이게 왜 취약하고 질병이나 폭력과 같은 손상과 훼손의 상황들에 얼마나 쉽게 노출되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반응도 만만치 않았지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행성인 웹진 글들 중 몇 안 되는 좌표가 되었어요. 이런 반응을 어떻게 생각해요?

: 그런 반응이 있는 게 너무 좋은데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 글에 묘사된 일부를 가지고 비난이나 비판하는 것은 보았지만, 제가 그 글을 쓸 때 가졌던 문제의식을, 그리고 다음 질문을 이해하고 얘기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몇 안 되거든요. 조리돌림 같은 것들은 유의미한 반응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서 쉽게 무시할 수 있었어요. 소수자를 다룬 언론기사, 특히 퀴퍼가 끝나면 언론기사가 많이 뜨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댓글을 많이 달잖아요. 근데 댓글 중에 정말 참조할만한 글은 많지 않고, 대부분 비난하기 위한 의도로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크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무엇보다 제가 실제로 주말에 찜방이나 사우나에 가보면, 저와 동일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죠. 저의 행동에 대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이걸 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궁금한 건 그 공간에서 저와 같이 체액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과 느낌, 생각이에요. 조리돌림은 그들과 다른 층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과 생각이어서 와닿지 않았어요.

 

: 다른 피드백을 받기도 했나요?

 

: 외로움의 조건이후에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저에게 메시지가 많이 왔어요. 나도 이런 걸 좋아한다, 저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만나기도 많이 했고. 근데 저는 항상 1:1로 만나기보다는 찜방이나 사우나에서 만나지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분들과는 뭐가 이어지진 않았어요. 다만 프렙 같은 사업이 떴을 때 어떤 사람에게 연락을 돌려야 할지 정도의 목록, 나와 비슷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목록. 그런 걸 조금씩 만들게 된 것 같아요.

 

: 혹시 본인의 섹스를 기록으로 남기고 고민을 다듬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들이 있나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 동료라기보다는저와 정체성도 살아가는 삶도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 혹은 제가 좋아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참조해요. 그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의식이 어떻게 발전해가고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주의 깊게 보는 편이에요. 그리고 책에서 영향을 받아요. 과거에는 시나 소설 등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면 최근 몇 년은 비소설, 에세이나 르포 같은 글들, 그리고 연구자보다는, 서툴지만 당사자의 목소리로 자기 경험을 쓴 글들을 보면서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습니다.

 

: 근간에는 몇 년 동안 SNS에 남겨온 글들을 묶고 바깥에 보이는 작업을 근래에 해왔어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2019년도 <동성캉캉>이라는 전시에 참여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이라는 책을 냈죠. 이후 못 붙인 텍스트들을 업데이트해서 확장해나간 결과물이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인데, 트위터에서 일기 쓰듯이 남기는 것과 그걸 엮어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건 다를 것 같아요.

 

: 저는 과거에 퀴어 콘텐츠, 특히 게이 콘텐츠를 생산하던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았어요. 현실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데도 그걸 계속 지연시킨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해결이 끝났거나 합의가 끝난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거나. 그래서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가져간다는 불만이 늘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기도 했어요. 지금 이 책을 읽은 어떤 게이에게 제가 쓴 책의 내용이 굉장히 낡아보이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이야 저의 시간과 경험들이 아직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급진적이고 낯설다고 여겨지지만 분명히 이걸 읽은 어떤 게이 남성에게는 이것이 굉장히 낡은 거고 지나간 문제로, 합의가 끝난 문제로 비춰질 수 있다고 늘 생각해요.

ISBN을 발급받아 책을 만들면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두 권씩 납본이 돼요. 설령 제가 이 책을 절판시킨다 하더라도 한번 책의 형태로 출판된 건 어떤 형태로건 남거든요.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소유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해줄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요. 독자들 중에는 분명 자기가 말하려던 게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거나, 자기가 늘 써오던 글이 있는데 어떻게 묶거나 정리해야 할지 모를 때 제 책이 참조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물이 저에게 천천히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유성원,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 볼끼책방, 2019. 

 

: 그렇게 기다리면서 어떤 반응들을 만났나요?

 

: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리뷰를 찾아보고 있어요. 공개적인 리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문제에서 최대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감염인 당사자나 성소수자이면서 찜방을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SNS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리뷰가 올라오는 건 책을 좋아하는 독자나 작가들이었죠. 보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나도 사람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구나.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온전하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마다 갖고 있는 문제와 시각 때문에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 책의 이야기를 통과하는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저처럼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책을 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아직 기다리는 중입니다.

 

: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야기를 하고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 재밌네요. 책을 쓰는 것도 중요하고, 그걸 이야기하는 자리를 계속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크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먼저 SNS 텍스트를 기반으로 책을 엮는 과정이 있을 텐데요. 이야기를 선별하고 편집하는 작업들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 이건 일기를 묶은 건데요. 저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면서 일기를 써요. 그날 기억할만한 일. 화가 났거나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는 쓰지 않았고, 뭔가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들을 글로 남겼어요. 친한 친구가 있어서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있다면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다 지치잖아요. 얘기를 들어주고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 힘이 드는데, 글은 천 페이지를 쓴다면 천 페이지를 하소연해도 되는 게 글이다 보니 썼어요. 책은 원래 쓴 거에서 3분의 1 정도만 묶은 거예요. 일하고 공부하고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는 내용들은 다 빼고, 성애적인 부분을 위주로 글을 남겼어요. 처음에는 장편소설로 생각하고 글을 정리했어요. 유성원이라는 캐릭터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했고, 이 사람이 어떤 과정과 변화를 거쳤는지 보여주고 싶었고, 첫 장을 넘긴 시점과 책을 덮었을 때의 시점에 독자에게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들을 선택했어요. 어떤 것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지를 고르는 과정에서 인물의 전체를 보여줄 순 없지만, 이 사람이 보여준 행동들을 집중해서 테마를 잡고 보여준다면 오히려 그게 이 사람을 구성하는 바깥의 것들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이지만 모든 사실을 다 쓰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충분히 허구적이 되더라고요 마지막까지 소설로 쓸지 에세이로 쓸지 고민했는데요. 사람들은 소설에 대해 어떤 자격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이건 소설이야.” “이건 일기 같은데?” 마치 수준이 낮은 것처럼, 비평의 언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일기이자 에세이인 글로 냈는데, 주변 반응에도 영향을 받았죠. 이거 내용이 너무 세니까 누가 뭐라고 하면 그거 소설이라고 답하라는 거예요. 그게 싫었고, 저는 실재하는 삶에 대해 애기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려고 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었고요. 저는 일을 잘하고 다른 사람에게 예의 바른 편이에요. 그래서 참한 처자를 저에게 소개시켜주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그분들에게 일일이 전 찜방 다니는 거 좋아하고, 노콘섹스 하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써보고 싶었어요.

 

: 그런 분들이 책을 읽는다면 버섯님을 어떻게 보게 될지 궁금하네요.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환청처럼 들리는 문구들이 있어요. “인생 뭘까, 자살하고 싶다, 외롭다.”(웃음) 천지사방에 섹스가 있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휘몰아쳤던 정념들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적으로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정체화하는 계기는 남자와 만나고 섹스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인지하면서라고 얘기한 부분이 기억이 나네요. 성소수자 운동에서 쉽게 이야기하는 프라이드가 허상임을 드러내고 자긍심의 프로파간다가 배제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매력자원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요. 안 행복한 본인과 행복할 것 같은 호모들에 대해 얘기하죠. 막상 행복한 호모가 뭘까, 호모 자체가 행복이랑 가까울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행복한 호모는 모순적인 얘기 같거든요. 성소수자는 취약함에 놓이고 누군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나요? 일상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야 되고 설명을 요구당하지만 곧잘 무시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한 호모에 대해서 전략적으로 쓴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 매력자원을 이야기해본다면, 어플은 사진을 주고받으니 만나기 전에 서로 간을 보는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찜방이나 사우나는 굉장히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바로 반응을 보이고 확인하잖아요. 거기에는 설령 내가 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든지 하는 여러 환경적 요소들이 있어요. 그 공간에 직접 있으면서, 매력자원이 정말 있고 그걸 무시할 수 없지만, 어떤 착시일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우리가 어플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문법에 익숙해서 신체 사이즈나 사진, 근육이나 성기 크기, 포지션 이런 걸로 서로를 주고받지만, 결국 그것은 그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실제로 만났다면 다른 성적인 매력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배제하고 시작하는 플랫폼이에요. 거기서 약자가 되는 사람이 사우나나 찜질방에서는 오히려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젊고 어린 사람을 좋아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은 싫어한다고 학습한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을 하게 되었죠.

어플의 문법은 그리 오래되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에요. 어플의 논리에 학습된 결과일 뿐이지, 그게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력자원에 대한 혼란이 있었는데, 마치 제가 폭식을 할 때 치킨이나 피자를 좋아해서 폭식을 하지, 양배추를 폭식하진 않는 것처럼 집중하는 취향과 기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무너지는 순간들을 사우나와 찜방에서 계속 체험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공간에서마저도 배제당한 사람들너무 늙었거나, 어떤 질병이 있는 것이 확실하거나, 여러 명이 관계를 할 때에도 끝까지 배제되는 사람이 있는 걸 목격할 때 어떤 게 문제인지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호모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요. 매력자원도 외모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돈이 많은 게 매력일 수도 있는 거고. 생각해보면 호모나 게이는 범주가 너무 커요. 정체성의 단어만으로 사람을 묶기에는, 제가 체험한 게이 사회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너무 많은 차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단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공통점 하나로 묶여 있는 느낌이고, 그 안에서 서로 자원이 다른 사람들이 끼리끼리 계층을 만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래서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배제된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죠. 암묵적으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게 없으면 좀 깨는 애가 되고요. 돈이 많은 호모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지?라고 물어보는 것과 가난하고 18시간 노동해야 하는 호모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지? 하고 물을 때는 호모라는 속성보다는 18시간 노동해야 하는 속성이 행복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글을 쓸 때도 섹스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일을 하는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이 사람이 처한 가족관계, 사회한경에 대해서도 계속 암시하고 묘사했어요. 이혼한 어머니와 살고 있는, 경기도 외곽에 월세를 내고 살아가는 이 남성, 그리고 고수입이 아닌 저소득층에 가까운 이 남성이 경험한 행복에 대해서, 그리고 거기에 게이라는 소수자성이 겹쳐졌을 때 나타나는 풍경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 행복한 호모에 대해 질문했지만 여러 답변을 주셨어요. 말씀하신 제약이나 위계들이 나로 하여금 더 문을 닫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게 글쓰는 태도에 연결되는가 싶기도 해요. 독자로서 이야기한다면나는 나를 위해서만 쓴다.”라고 쓰인 문장을 읽고 이상하게 편한 태도로 책을 대하게 되더라고요. 이 사람이 독자에게 거리를 확보해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방어적인 태도라는 생각도 들면서 이건 뭘까 계속 품고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품에서 화자는 계속해서 찜방을 가고, 사우나를 가고, 공원 화장실을 찾으면서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장소의 성격이나 그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을 봤을 때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낳거나 판타지를 만들거나 곧이곧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코로나19 이태원 사태에서도 표적이 되어 르포 같지도 않은 글들이 생산된 걸 보면 말이죠.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은 찜방이나 사우나에서 일회성으로 맺는 관계와 바깥에서 맺는 관계를 선을 긋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에요. 자만추 왜 어렵나 싶고. (웃음) 일회적으로 만났는데 계속 연락하자고 하면 부담을 갖고, 그래서 1:1의 관계를 따로 가져가기도 하고. 이 관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것도 곱씹어봤어요.

 

: 어찌되었건 이 공간은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는 곳이고, 그 안에서의 문법은 어플과도 다르고 거절과 수락, 중지의 뉘앙스를 잘 읽어야만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심리전과 탐색이 이뤄져야 하잖아요. 자기가 신체적으로 우월하지 않으면. 제가 찜방에서 굉장히 많은 섹스를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공치거나 허탈하거나 실패한 장면은 많이 남기지 않았을 수 있잖아요. 무수한 실패들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선 더 관계가 수월한가? 라는 오해를 할 수 있어요. 사실 동성애는 만만하지 않다, 어중간한 마음으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죠.

 

: 게이 찜방과 사우나라고 하면 위계도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평등의 공간, 합의를 통해 섹스를 하는 공간. 이런 식으로 얘기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책 곳곳에 직간접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늙은 게이, 가난한 사람, 아파보이는 사람도 있고.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지만 계층적인 상황이 작동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 외모자원이 부족한 사람이 참여하려면 놀라운 스킬이 있거나 봉사정신이 뛰어나거나, 나에게 많은 위험을 허락하거나 하는 협상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에요. 공간에 입장할 때마다 선택하는 거죠. 어디까지 허용할지, 저 사람과 섹스할 때 콘돔을 쓸지, 다음 사람이 바로 나에게 사정하게 만들지 안 할지, 이런 것을 매 순간 선택하고, 선택에는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있겠죠. 밖에서 게이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거나 상처를 받은 상황에서 그 공간에 찾아왔을 때, 자신을 원하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을 할지 말지, 이러한 맥락들을 같이 봐야 해서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있어요.

 

: 그건 찜방 너머 주변의 사회 환경이나 경제 조건도 작용하는 것 같더라고요. 작품에서 화자는 창고에서 일을 하는데 작업환경이 그리 쾌적하진 않고, 이 사람은 찜방에 가는 것만큼이나 KFC와 맥도날드를 너무 자주 가.(웃음) 꼭 혼자 가서 햄버거랑 닭다리를 뜯는 걸 보면서 이 상황들이 단편적으로 나열되는 것처럼 보여도 큰 그림을 모아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퀴어라고 정체화를 하더라도, “나는 퀴어야라고 순수한 정체성을 정제해내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계층도 있고, 노동권이나 주거권, 하물며 가족구성원, 성적 권리들을 비롯한 구성원의 권리들이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면서 본인을 설명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문장으로 체화해서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 항상 모든 이야기를 다 하고 싶은 욕망이 있죠. 이 사람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고, 왜 이런 공간에 있고, 이런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컸고 어떤 환경 속에 있고 어떤 영향 속에 있어. 이러한 감정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있어. 이런 걸 다 얘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죠. 근데 책을 쓰면 독자가 읽건 말건 그런 부분들을 다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퀴어로서 경험하는 계층적 상황들도 최대한 병치하고 싶었어요. 찜방 안에서의 관계와 바깥에서의 관계를 구분하기도 하는데, 제 경우는 애초에 밖에서 맺는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맥도날드와 KFC를 자주 먹는다고 얘기해주셨는데, 식사를 하는 것도 관계의 문제잖아요.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둘이 밥 먹을 때보다 싼 거예요. 더치페이를 할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계속해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데, 그게 이 책에 쓰인 유성원이라는 게이 남성에게는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된다는 거죠. 누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알아가고 어디 놀러가고 하는 것 자체가 이 사람에게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운 거고. 이 사람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그 여유만큼 관계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거죠. 모텔에 가서 1:1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과 그런 경제력이 없는 사람의 관계 맺는 방식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 화자로부터 거리를 두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나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바닥에 있을 때,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 받고 체념을 하게 되고. 협상력이 떨어지다 보니 상대의 제안이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뭐가 문제고 차별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책에서 이야기한 부분에 공감이 가요.

책이 4부로 나뉘어져 있잖아요. 나름 고도의 기획과 편집력이 들어간 작업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데. 거칠게 인상묘사를 해보면 1부 초반에는 본인의 심적인 것들에 대해 즉자적인 정념과 상황묘사 등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2부에서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지점이 있고, 3부로 넘어가면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들이 새로 그려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후반으로 나갈수록 활동을 하게 된 이야기들이 잠깐씩 등장하고. 혹시 장을 나누는 기준이 있었나요?

 

: 원래 어디서 끊어도 상관없는 얘기들인데, 다만 밥벌이의 수단이 바뀌는 지점마다 부를 나눈 느낌이 있어요. 처음 출판사에 다니다가 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1부가 끝나고. 새로운 출판사로 가면서 다른 게 시작되고, 거기서 임금 체불과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새롭게 넘어가요. 경제적 부담으로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서 경제적으로 변화가 있을 때마다 관계에서도 변화가 오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친구를 만나는 것, 이 친구와 초밥을 사먹는 것이 괜찮아진다, 그러면 누굴 만나려는 욕심을 낼 수 있겠죠. 당장 삼각김밥 먹을 여유도 없는데 누구를 만날 순 없는 거잖아요. 그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이야기도 비슷비슷할 거고. 그런 식으로 나누지 않았나 싶어요.

 

: 경제력이 기준이었다는 점이 새롭네요. 페이지를 넘길수록 좀 더 정제된 언어로 정리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이야기만 한다고 말하다가도 내 아픔이나 고민에 대해서 생각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불행이나 고통에 대해서 알아야겠다, 는 태도의 변화를 남긴 문장이 기억나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찾는 과정이 그려지는데요. U=U, 프렙이든 혐오에 맞설 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과학적인 답들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동시대 의학의 성과이기도 하죠. 한데 책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더라고요. 과학적인 논리는 만들어졌지만 그 다음은 뭐냐고 물어요. 건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고 나이를 먹으면서 매력은 떨어질 거고 결국 누구도 찾지 않는 몸이 될 거라고 하는데,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통감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초반에는 자살이나 회의적인 표현이 많이 나오다가 후반에는 본인이 삶에 있어서 안정이나 지속 같은 이야기들을 지나치듯 한두 마디씩 던지는 장면이 나와요. 자신은 불행한 사람들, 매력 없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다가 나중에 일대일의 정서적 결속 관계를 갖고 직장이 바뀌는 등의 변화를 거치면서는 찜방에서 나이를 먹고 가진 게 많이 없어 보이고 아파보이기까지 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와의 관계에서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후일을 접어버리는 지점도 있었고요. 관점에 따라서는 이기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런 감정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숨기기보다 지속적 관계를 확보하고 안정된 삶을 찾아갈 때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협상할 것인가, 여기에 나를 구성하는 외부 환경은 어떤 제약과 수행의 조건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기도 하잖아요.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같은 문란함이라도 불안정하고 단절적인 경험이 있고, 지속할 수 있는 문란함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여기에는 어떤 자원들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이 고민이 4친절한 설명에서 운동의 논리로 다시 설명되고 있어요. 지금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고민을 어떻게 연결해가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 예전에 정체성 깨달았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은, 내가 게이다 아니다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게이인 걸 받아들인 이후 어떤 문제가 나타날지 아직 모른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를 빨리 알고 싶었어요. 나의 욕망을 선명하게 하고 그걸 실천한 이후에 나타나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런 맥락에서 다음 이야기를 찾는 걸 지연시키는 서사들에 대해 굉장히 반감을 갖고 있거든요. 의도적으로라도 다음 이야기를 찾고 싶었어요.

제 경우는 제가 게이임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정도로 성욕이 강하고 실천하고 싶어 한다, 다만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하고 싶다. 이것이 저의 문제였는데.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학적 답은 찾았지만, 찜방이나 사우나 혹은 화장실에서의 만남들은 답이 없잖아요. 변수도 많고, 불확실성을 감당해야 할 게 많은 거예요.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제 조건을 따지게 되죠. 어느 날 화장실에서 늙은 남성과 오럴섹스를 주고받았을 때 이 사람이 너무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는데,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내 나이가 60, 70이 되었을 때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입에 고추를 물려줬을 때 이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단순히 이 사람이 오럴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혹은 젊은 사람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아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았고, 내일이나 내년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점점 느끼게 되는 건 제 몸이 휴대폰처럼 한 2년 쓰면 새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내 몸을 계속 수리하면서 써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아픈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것도 같아요. 몇 년 전에는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활발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거나, 살아 있던 사람이 얼마 후에 없어지는 걸 보면서 인간의 몸과 건강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사람에게 건강함이 강요되는 건 분명 문제적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사람이 계속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가급적이면 고통을 줄이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나의 건강함,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것과 문란한’, 욕구를 활발히 실천하는 것이 서로 상충했을 때 이걸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저에게 고민으로 다가왔어요. 이건 이직을 하면서 소득이 올랐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다는 생각도 있어요. 호모라는 작은 사실 말고 호모라는 남성을 구성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시달리고 있을 때 거기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 사람의 우울증이나 신경증적인 반응들이 개선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속 가능한 삶, 관계에 대한 욕구도 생기는 거고.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읽는 사람에게 어떤 답처럼 주어지는 건 원치 않아요. 이 사람이 성장했어, 어른스러워졌어, 옛날에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문란함에서 거리를 두고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어요. 그러면서도 관계에 대한 욕구는 생기는 거죠.

저에게 던지는 질문은, 활발한 성적 실천과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을 어떻게 조율할까예요. 혼자일 때는 나의 욕망이 주는 위험 정도만 숙지하고 통제하면 됐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거기에 끼어들었을 때는 이 사람이 말하는 동의가 정말 동의인지 제가 판단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나는 네가 찜방 가도 괜찮아하는 것이 정말 찜방 가도 괜찮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해도 거짓말하고 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허락했다는 제스처를 취할 뿐인 건지는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어요. 심지어 요즘 미투를 비롯한 페미니즘 운동에서 배우는 건, 당시에 동의했다고 생각하더라도 사후적으로 되돌아볼 때 그것이 폭력적인 방식의 관계였다는 경험도 발견되고 있어서 저에게는 그게 계속 고민으로 남아 있어요.

 

: 4부는 본인이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문란하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동안 성적 권리나 쾌락의 문제로 접근했던 것을 건강이나 치료접근권의 관점으로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건 보통 활동가들은 치료를 받으면 바이러스 수치가 제로에 가까워지고 감염시킬 수가 없다고 의료적 성과를 주로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책에서는 치료를 원치 않을 때 거부할 권리까지 확장하더라고요. 건강이라는 담론이 질병에 대한 예방이나 방역의 차원에서 이 사람을 강제하고 구속하는 효과를 낸 것은 아닐까, 약을 먹어도 괜찮다고 했던 것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몸이 아프거나 가난하거나 협상력 없는 사람들이 과중한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책임을 같이 분담하고 함께 관계 이후를 계속 모색하고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런 부분을 운동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지막 챕터에서 본인이 쓰고자 했던 의도나 메시지가 있었을 것 같아요. 독자가 어떤 감상이나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썼는지 작가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저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이 늘 있어요. 옳은 말 하기는 너무 쉽잖아요. 남들이 좋다고 호응해줄 수 있는 말은 참 하기 쉬운데, 제 삶에서 같이 가야 하는 문제고. 삶에서 상충하는 부분을 조율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글이 너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맥락에서 노콘안싸 같은 걸 많이 강조했어요. 성병 예방에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콘돔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죠. 근데 이건 콘돔을 사용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HIV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거기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거든요.

글에서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 얘기도 하는데, HIV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HIV감염인이 타인과 콘돔 없는 성관계를 맺었을 때 전파매개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조항이에요. 저는 이 부분에서 국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명확하게 보인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타인에게 전파력을 상실한다는 U=U 성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염인이 치료받는 것 자체가 예방이 되는 것인데, HIV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며 감염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감염 확산을 막고 싶다면 HIV감염인의 의료접근성과 예방에 장벽이 되는 낙인, 편견, 혐오들을 제거하지 않는 국가가 처벌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나? 감염인이 전파의 온상이 아니라 감염된 사람들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거나 에이즈에 대한 불필요한 두려움으로 전파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의료 차별과 낙인을 공고히 하면서 나 몰라라 하는 사회가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얘기를 같이 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이것이 HIV 감염인들의 서사를 방패막이처럼 쓰는 걸로 보일까봐 우려도 있었어요. 저는 활발한 성행동을 하는 문란한게이로서, 예비 감염인으로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사회의 낙인을 껴안고 있는 소수자를 끌어와서 이야기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같은 혐의를 스스로 느끼고 있거든요. 쓰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글이에요.

글을 통해 독자가 어떤 메시지를 얻었으면 좋겠나 하는 것은 글의 마지막 소제목 10번 부분에 있었던 것 같아요. 프렙, U=U를 이야기할 때 치료받으면 전파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말하기 전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여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일이죠. 부작용 때문에 약을 못 먹는 사람도 있고, 사회의 낙인 때문에 병원에 못 가고 약 못 먹는 사람도 있고,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때문에 불필요하게 개인적인 낙인이 심해서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것이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면 늘 드는 아쉬움이 있어요. 치료와 예방은 권리잖아요. 한데 그게 강제되고 강요되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의료 차별과 장벽을 다 없애고 걸림돌을 다 없애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가? 그게 아니라는 거. 사실 사람이 바른 행동만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사회적으로 강제되고 주어진 것이라 해도.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어떤 일들을 형법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 약속으로 금지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엔 그런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요.

 

: 혐오에 반박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인 것 같아요. 꼭 사회적 소수자들이 바른 모습을 전시하면서 권리를 요구할 필요는 없는 건데 말이죠.

한편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당위성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래도 즐겁게 살자고 운동하는 건데 이 긴장을 어떻게 아프지 않게 가져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고민으로 책을 보다가, 재밌는 장면도 눈에 들어왔고요. 작가님 반도체 노동자 티셔츠 입고 찜방 간 적이 있었나 봐요. 다른 사람들한테 안 보이고 싶어 했다는 부분이 있는데.(웃음) 이 간격은 뭘까 싶었어요. 질문의 볼륨을 키운다면 운동과 쾌락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즐거운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섹시한 운동이라는 게 가능할까 이런 고민들이 들었어요. 같이 만들어 가야 할 활동의 과제라는 생각도 들고요.

 

: 그 티셔츠 입고 갔다가 찜방에서 벗은 이야기는그동안 단체에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부분과도 연결되는 게 있어요. 전 항상 제가 문제적일 수 있고 문제제기 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공동체나 단체에 누가 될까 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스스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꺼려진다기보다, 단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행성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고, 제가 모르는 역사에 함께하고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저 개인의 행동이 여기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조심스러웠어요. 이런 인권 티셔츠를 만든 사람들의 삶의 맥락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개인적인 예의였어요. 제가 이런 문구로 티셔츠를 만든 단체의 서사를 모르면서 이걸 입은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조심하는 것 같아요.

 

: 지금도 SNS에 글을 쓰나요?

 

: 지금도 트위터를 하고. 페이스북은 주로 뉴스 공유용으로 사용해요. 관심 있는 소식을 저장하고 공유하는 용도로 쓰고. 블로그를 아카이빙 용도로 쓰고. 인스타그램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올라오는 리뷰를 확인해요. 예전에는 그만 살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는데 그런 말을 안 한 지 2년쯤 된 것 같아요, 돈을 좀 더 벌게 되면서. 그게 저한테는 정말 큰 거였어요. 개인적인 서사를 얘기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돈을 벌었는데, 홀어머니다보니 제가 월급을 받으면 어머니께 드렸거든요. 용돈을 타서 생활했는데,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늘 노동을 했지만 제게는 결과물이 보람으로 오지 않았고, 항상 숙제처럼 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우울감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져서 트위터에서도 그런 걸 안 쓰게 됐어요. 대신 소중한 관계에 대해 감탄사를 내뱉는 공간으로 쓰고 있어요. 제가 보고 싶다고 해서 그걸 30분마다 카톡으로 보낼 순 없잖아요. 그럴 때 SNS에 올려요. 블로그는 계속 따라가는 문제들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아카이빙하는 용도로 쓰고 있어요.

 

: 책이 끝나는 시점이 코로나19 상황과 겹쳐요. 코로나 이후에 본인의 활동이나 고민의 지점에 변화가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 20204월로 책이 끝나는데, 그때만 해도 한 지역의 종교 단체 사태로 확 터지고, 책을 낸 건 7월이어서 이태원 클럽 사태까지 지나고 나서, 나영정님이 해설에 그 부분도 담아주셨어요. 저는 올해 초 코로나19가 퍼진다고 했을 때 사우나 가는 것에 크게 조심하지 않았어요. 앞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들어갔고, 가면 특별히 영향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있었어요. 마스크를 쓰고 항문섹스하는 풍경을 보면서 그래 마스크를 쓰면 괜찮은가? 코로나의 전파경로는 항문이나 체액은 아닌 건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럴을 하지 않으면 항문 삽입으로, 정액으로 전파가 안 되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예전에는 나 혼자 아프면 끝나는 거였는데. 이거는 회사를 폐쇄해야 하고, 저와 관계 맺는 여러 사람들의 일정이 어그러지는 것에 대한 조심성이 생겼어요. 그래서 찜방을 잘 안 가고 있고, 재유행을 맞으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최대한 지키려고 하고요. 1:1 관계 위주로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가급적 저의 컨디션을 보면서 주의하고 있어요.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음엔 어떻게 섹스를 해야 할까,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고민이에요. HIV처럼 코로나19도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토크쇼 인증샷

 

: 섹스가 나 좋자고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을 지나고 있네요. 그럼 청중과 질문이나 감상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볼까요?

 

갈릭 : 알라딘, YES24 리뷰들을 읽어보니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의 경우에는 읽는 방식이 다르더라고요. 텍스트에 깃든 저자의 절망과 외로움을 많이 읽어내었고, 타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이 촉발시킨 측면이 있었어요. 저도 찜방 경험과 외로움, 경기도에 살아서 서울에 나왔는데 집에 돌아갈 수 없어서 도시를 헤매는 느낌, 피곤하고 배고프고 돈이 없고 일정이 꼬이는 걸 보며 제 20대를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나에게 익숙한 지점이고, 관계를 맺기 전에 지레 고민하면서 소화해버리는 것들까지도 익숙해서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성애자 독자들은 다른 맥락에서 그렇게 본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이걸 계속 기록했다는 게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전개시키고자 하는 이야기를 자기의 글 안에서 전개시키고. 2020년으로 오면 나름대로 고민의 지점이 가닿게 되는 게 보여서 그런 것도 좋았어요. 어떻게 이걸 써내려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글에서 보면 뭔가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다고 느꼈거나 도저히 시간과 에너지가 없던 시간도 있는데 그럼 그걸 언제 썼다는 것인지. 2014, 15년에 피곤하고 일이 계속 생겨서 쓸 수 없다고 느꼈는데 그럼 과연 언제 쓴 것이지? 이런 질문도 들었습니다.

 

: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넌지시 밝힌 독자들의 글을 보면서 궁금했던 건 게이들의 감상이었어요. 책 홍보를 외로움에 중점을 두고 하긴 했지만, 외로움을 강조하는 건 이 책을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한 방법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내 가치관으로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이 사람이 소수자로서 너무나 외롭기 때문이야, 라는 독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저항감을 줄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롭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저보다 훨씬 큰 고통 속에 있어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요.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제가 이런 행동을 좋아해서 한다는 거예요. 지금의 저는 외롭지 않은데도 이런 행동을 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그 감정과는 상관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게이 남성의 외로움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너무 좋잖아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건 외롭기 때문이야, 라고 하고. 하지만 저희 어머니도 혼자 자식을 키우면서 노인이 되어가지만 그 외로움을 나름의 방법으로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계 맺기가 어렵고, 매 순간 행복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외로움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거는 한 시기를 묶은 기록이어서 그 한정한 시간 안에서 의미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글을 계속 써서 습관처럼 되어 있어요. 뭘 해도 내가 이 경험을 글로 쓸 거니까 혹은 썼으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한때는 그게 문학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등단해서 이 사람의 왜곡된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승인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었어요. 근데 점차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과 타인의 승인은 상관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편집자로 일하면서 어떤 책이 출판되는가, 어떤 책이 서점에 유통되고 도서관에 꽂혀 있는가를 보면서 고민이 계속 커졌어요. 제 생각에는 이 이야기가 중요하고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데 그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제가 봤을 때는 이게 훨씬 중요한데. 그런 맥락에서 제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실체에 대해서 의존하는 마음을 거두게 되었어요. 그래서 기록을 승인받기만을 기다리면서 모아두는 게 아니라, 이쯤에서 정리를 한번 해야겠다 마음먹고 내놓았어요.

여유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잖아요. 2014년에서 2020년까지라고 한다면 정말 많은 시간이 있어요. 늘 삶이 힘든 것만은 아니고요. 빡빡한 삶이 지속되는 건 아니고. 글을 쓸 수 없다는 느낌은 정확히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느낌,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반추하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제가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고, 그런 무력감을 쓸 수 없다고 표현한 것 같아요.

 

빌리 : 프렙 관련해 SNS를 사용해 누구에게 말을 어떻게 전달할지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지난 프렙 시범사업이 홍보가 정말 안 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버섯님이라면 누구에게 어떤 언어로 아웃리치를 하면 좋았을까 생각을 가지셨을지 궁금해요.

 

: 사실 이반시티에 배너광고를 하지도 않았죠. 메인 팝업으로만 홍보했어도 홍보가 안 되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여러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겠죠? 제가 단체 소속으로 활동하기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도 의약품 접근권 투쟁 같은 맥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프렙의 경우도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누면 좋겠지만, 활동가들이 과거에 제약회사와 갈등을 경험했고, 그게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극적인 면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아쉽긴 해요. 단체 소속으로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데 부담이 있어요. 그래서 개인 SNS에 올리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링크를 보내는 방식으로 홍보를 하거나, SNS에 키워드로 검색을 할 수 있게 프렙, 트루바다, 게이, 노콘안싸 이런 말들을 넣어서 홍보를 하지만 어려움이 있죠.

저라면 이반시티에 팝업 광고를 띄우겠어요. “안에 싸도 돼요?”도 팝업에 띄웠잖아요. 그렇게 사람들한테 가닿는, 소구하는 언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프렙이 전제하는 게 노콘이라서 도덕적 비난을 직면하기 꺼려하는 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빌리 : 보건학적 이슈가 있을 때, 특히 소수자 집단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 정부, 의료인, 시민사회(운동)의 삼위일체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정부와 의료계만 논의하다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몰릴 거라는 추측만으로, 시민사회단체가 일군 역사나 전문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업이 시작하고 나서 주변에 있는 HIV활동가들이 알게 된 다음 퍼진 느낌이 있어요. 왜 사전에 이야기되지 않았는지 궁금하고, 이반시티 배너도 안 되었잖아요. 코로나 국면에서 성소수자대책본부를 하면서 관계를 맺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보긴 하는데,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 정부나 의료계가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정책에 들어가다 보니,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계속 있었어요. 예를 들면 해당 제약사와 프렙 접근성을 위한 미팅을 갖는다든지, 게이 커뮤니티나 MSM을 대변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면 어떨까 하고요. 이렇게 정부와 의료계에서도 MSM이나 커뮤니티와 접점을 찾으려고 하겠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고, 연락이 오더라도 제약회사라서 꺼려진다는 입장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노콘을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이것은 콘돔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콘돔을 쓰지 않더라도 HIV감염을 예방할 수 있고 이게 심지어 콘돔 사용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선택지를 넓혀주는 방향으로 접근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개인적 욕심으로는 해당 회사라든지 다른 곳에 연락을 취해서 이러한 의견과 생각이 있으니 한 번 만나서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부터 의사를 묻는 것에서 출발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 그간 에이즈 운동이 제약회사와 싸워온 역사가 길고, 제약회사가 제안하는 협력이 결국 자기기만을 전제하는 부분도 있다고 판단하면서 더 경계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주도권을 갖고 협상할 것인가도 관건일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제약회사에서 유혹을 해오고 있는데 운동은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가 과제가 되겠죠.

 

갈릭 :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이뤄온 성취들과 함께 그것이 던지는 고민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성소수자 시민권 운동에 제동을 거는 책처럼 느껴졌어요. 성적 권리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기에 좋은 텍스트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전 책을 냈을 때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하고, 그러면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하셨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와 관련된 고민을 전개하거나 대화를 해나갈 텐데, 전작을 가지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기회들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앞으로는 어떤 대화들을 해나가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 작년에 출간한 책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 <동성캉캉> 전시에 서문을 써달라고 해서 갔다가 전시로 참여하게 됐어요. 다들 사진, 설치, 회화 등으로 참여하는데 전시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저는 없어서 벽에 글을 A4로 붙이겠다고 했더니 반응이 좋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죠. 그 무렵 다니던 회사의 디자이너가 책 만드는 작업을 도와준다고 해서 그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야지보다는 당시에 정리한 게 2016년까지밖에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저한테는 그 뒤 이야기가 있었고, 완성된 형태는 아니고 정리중인 과정에 잠깐 선보인 거라서 그 상태로는 오해되거나 맥락을 충분히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번에 나온 책 분량이 좀 많다고 하는데 저는 이 정도 분량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걸 읽고 안 읽고를 떠나서, 저 책을 읽고 반응할 사람에게는 얘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작년의 책을 본다면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라고 반응할 수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을 보면 그래도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삶을 추체험하면서 제가 도달한 고민까지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 <동성캉캉>은 당시에 일이 많아서 오프닝을 제외하면 전시장에도 못 나가보고 지인이 갑작스레 작고하셔서 장례를 치르느라 책을 더 못 찍었어요. 혼자서 만들고 혼자 판매하다보니 수익이 많이 남는데 많은 일을 해야 하더라고요. 그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 외에 딱히 만나는 자리는 없었네요.

전작의 경우에는 과거 외로움의 조건을 읽고 나에게 연락이 왔던 것처럼, 게이들이 이걸 읽고 나에게 박타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좋겠다는 사심이 컸어요. (웃음) 근데 의도치 않게 저와 관계를 맺는 주변 작가분들이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일반 독자들한테 많이 가게 되었죠. 애초 계획과는 달리 제가 모르는 일반 독자분들이 많이 사 읽은 거예요. 처음에는 너무 잘 읽겠다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잘 읽겠다는 말 주워 담고 싶다고. (웃음) 이번에 나온 책은 게이에 한정지은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된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빈곤, 장애, 여성 등 다른 소수자의 경험을 통해 제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처럼 이것도 저와 전혀 다른 층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닿아서 그분에게 어떤 힌트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만난 적 없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삶에서 접점들을 제가 모르게 만들어가고 있기를 바라게 되는 책이에요.

 

: 이후에 다른 계획이 있어요? 다음 스텝이나 이런 작업을 해보자는 외부의 제안도 있을 것 같아요.

 

: 제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책만 봤을 때 이상한 사람이고 소름끼치는 사람이 아니라, 제가 직장에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밥값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기회들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야기할 기회들이 점점 생기는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할 텐데 예외적인 상황이어서.

다음 계획은 제가 출판 편집자로 일하다보니 내고 싶은 책, 만들고 싶은 책이 있거든요.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고 싶어요. 제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이런 성소수자의 이야기도 나오는구나, 하고. 그래서 혹시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저에게 연락을 줘서 책으로 출판할 수 있을지 타진해보고 조율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번에 책을 냈으니까 또 몇 년 동안은 글을 쌓을 거거든요. 그동안 제 일을 하면서 다른 책들을 또 만들고 싶어요.

 

: 본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직능을 활동과 잘 엮어서 물꼬를 터 나간다는 생각이 드네요.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어떠셨는지 마무리 멘트 부탁드립니다.

 

: 오늘 사실 오고 싶지가 않았어요. 일단 좀 부끄럽고,(웃음) 스스로는 책을 잘 썼다고 생각하고 냈지만, 북토크든 좌담이든 나가면 나는 그래도 오늘 이야기를 곧잘 한 것 같아, 라고 생각하다가도 평가는 읽고 듣는 사람의 몫이잖아요. 책을 내고 스스로 반응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 그런 감정을 차분히 누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 이 자리도 이야기를 잘 못할 것 같고 부담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HIV/AIDS인권팀 텔방에 갈릭님이 홍보문구를 올리는 걸 보니까 뭔가 짠하더라고요. 이 사람은 뭘까.(웃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왔고, 와서 되게 힘을 받고 가는 자리가 되었어요. 요즘은 다시 소중이와 관계를 맺으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됐어요. 저의 감정이나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호모들을 만나니까 너무 좋고. 코로나 시대에 호모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생각하게 돼요. 좋네요.

 

: 오늘 행사는 부득이하게 HIV/AIDS인권팀원으로 한정해서 줌으로 진행했는데요, 안전을 보장하고 심적으로 편안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글로 잘 풀어서 사람들에게 보이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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