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프렙 (Korean PrEP)

Posted at 2019. 11. 10. 16:06// Posted in HIV/AIDS
기획의 글:
‘HIV/AIDS 예방약’이라고 부르는 ‘HIV 노출 전 예방요법'(PrEP; Pre-exposure prophylaxis)은 현재 한국에서도 상용화를 앞두고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HIV/AIDS인권운동은 프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고민을 이어왔는데, 그에 앞서 프렙이 한국사회 HIV/AIDS와 게이 커뮤니티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모였습니다. 이에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10월 5일 <월간에이즈: 프렙-토크쇼>를 진행했습니다. 행사에는 패널 외에도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웹진에 담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논의와 실천들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간단숙2

 

본인은 2019년 3월 PrEP 예방법으로 알려진 트루바다 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처음 해당 약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프렙 예방법과 트루바다라는 약제가 개발이 되어 해외에서는 비감염자들에게 처방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한국에서도 트루바다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곤 했기 때문에 당연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해당 제약회사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고위험 감염군 대상 1년간 약을 무료로 제공하는 내용이었으며 병원을 통해 검사 및 진행 상황 확인이 필요했기에 본명 및 주민등록번호로 병원 접수가 필요했다. 유선상으로 사전 신청 및 방문과 담당 의료진의 면담 과정에서도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불편한 시선과 태도나 언행은 한 번도 느낀 적은 없었다. 하루에 한 알. 정해진 시간대에 하루 한 알씩 챙겨 먹으면 된다는 것이 전담 의사 선생님이 권유해준 복용법이었다.


프렙을 실제로 접하기 전까지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콘돔 사용을 크게 강조했지만 스스로 베어백(bare-back,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섹스를 말함) 취향이 컸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었다. 그래서 난 열심히 먹었다. 자연스럽게 일정한 시간에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조성하고 의식해서 또 어떤 날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약을 털어내고 있었다. 약을 복용하고 점점 기존에 갖고 있던 불안함은 사라지면서 그전보다 더욱 열심히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 퇴근 후나 주말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내키면 남자를 만났고 관계에 있어서 내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불안감은 자신감이 되어 만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점점 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내 적극적인 권유에도 끝까지 콘돔을 끼고 삽입을 해달라고 고집하던 청년이 있었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집착 수준은 아닌 아쉬운 정도이기에 처음 시작은 콘돔을 착용하고 관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곧 흥분하기 시작한 청년은 관계 중 콘돔을 빼 달라고 요청했으며 원하는 대로 콘돔 없이 관계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같이 천장을 바라보며 몸을 포갠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사실 청년은 얼마 전까지도 양성 상태인 파트너와 콘돔 없이 수차례 관계를 가진 상태였으며 현재 본인은 그 이후 한번도 검사를 해보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섹스를 하기 전에 나는 콘돔 없이 삽입하는 것이 괜찮다고 여러 번 확신을 준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덤덤하게 내 약물 복용 상태에 대해 설명해줬고 이해를 시켜줬다. 그때 당시에는 아직 지원 프로그램 신청을 받고 있을 시기였기에 관련 정보에 대한 링크도 오픈 카톡으로 공유해 줬다. 그 청년은 일시적으로 강한 관심을 보였다가 이내 본인이 양성이 확정되었을 경우를 상상한 뒤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그가 내게 이야기 하기를 지금처럼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감염의 위험 속에서 절정에 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었을 때 너무 우울할 것 같다고 표현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길 앞에서 중도의 혼란을 흐느끼며 삶의 위태로움을 살갗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프렙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 청년의 언행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그저 건강한 삶을 권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었을까. 그 청년이 누워있는 모텔방을 나와 어둠 속에서 간판 조명으로 반짝이는 길을 걸어 나와 오픈 톡방을 나간 화면을 바라보며 이 청년이 본인이 원하는 사람들과 더 자유롭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길 하는 바람을 빌어보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익명으로 성관계를 갖는 게이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서로가 음성이라는 확신을 갖고 서로를 대한다. 확인되지 않은 확신은 내가 누군가에게 음성 여부를 물었을 때 역으로 "너는?"이라는 반격을 받으며 깊은 곳 잠잠했던 혐오를 일깨운다. 모두가 중요한 문제는 망각하고 신명 나게 섹스나 하자고 굳게 닫힌 입으로, 잔뜩 성난 고추와 활짝 벌린 엉덩이로 말한다. 이러한 분위기의 요인으로 한국에서는 캐주얼한 게이 커뮤니티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현시대의 게이들이 안이하게 HIV/AIDS 이슈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사랑스럽고 선량한 게이가 너무나 불운하게도 감염으로 인해 이 세상을 떠난 적이 없다.


애초에 질병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내 주변에는 내가 아는 나이 든 게이는 없는데 한국 사회에선 비롯 동성애자라는 것은 하나같이 더럽고 불결하게 살다가 병에 걸리고 늙어 죽어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게이들의 숙명인 것처럼 보여준다. 어린 나는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불결한 삶의 시작이라고 느끼게 된다. 종태원(종로+이태원)의 데뷔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 시작의 은어일 것이며 그런 방식으로 스스로의 게이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게이들은 대부분의 비슷한 근본 없는 혐오를 갖고 있다.


본인들도 게이들이 모여서 술 먹고 재잘거리는 곳에 와서 같은 삶을 사는 게이들의 삶을 비판한다. 다수의 게이들은 사회의 혐오 프레임에 갇혀 본인과 타 게이들의 옳고 그름을 저울질하며 여생을 산다. 그러나 비슷한 삶을 살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섹스를 하는 게이들, 나를 더 내려놓고 콘돔 없이 섹스를 하는 게이들은 이미 본인은 사회가 만든 동성애자의 이미지와 본인을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내려놓는지 모른다. 이 지점은 무료 약제 지원을 수개월간 신청을 받았음에도 얼마 되지 않는 수량이 마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문란함이라고 일컬어지는 길을 본인이 걷기 시작하며 같이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될 질병까지 "걸리면 어쩔 수 없고" 식의 자세로 말이다. 질병과 개인의 삶의 방식은 구별해서 관리가 필요한 것임이 분명함에도 삶의 방식 안에 질병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인식을 차츰차츰 거두어 내고 적합한 환경을 구성해 주어야 할 것이고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더라도 그 선택이 내 심신의 건강을 희생해야 하는 방법이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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