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한동안 SNS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고 뉴스가 공유되었던 에이즈예방약, PrEP은 이제 국내에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상용화를 앞둔 상황이다. 외국 소식으로나마 접했던 상상 속 에이즈예방약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우리는 가이드라인을 읽으며 예방약의 정보를 파악하고, 가격 책정과 보험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성소수자 및 HIV/AIDS 인권운동 안에서는 프렙을 둘러싸고 긴장이 없지 않았다. 효과가 입증되었고 약제 도입을 논의하지만, 오랜 시간 질병에 스며든 부정적 인식과 낙인을 소거해줄 구원투수로 의존하기엔 찝찝함이 있다는 것도 고백해야겠다. 예방약이 낙인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까 하는 물음과, 그럼에도 예방약이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관심 사이 잔기류가 있던 것이다. 프렙 이후, 인권운동은 어떻게 구호를 새로 짜고 운동을 만들 수 있을까.
의료기술은 단선적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 에이즈 예방약 외에도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꾸준히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 수치가 제로에 수렴한다는 연구가 수년간 이어져왔다. 하지만 쉽지 않은 학술 언어는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수다한 언어들로 의학적 성과를 설명해야하는 피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 Undectable=Untransmittable(이하 U=U) 캠페인은 명징하고 간결하다. 물론 새로운 언어의 감각은 질병예방과 질병당사자의 건강을 위해 수차례 반복되었던 임상실험과 연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HIV/AIDS에 대한 의학적 노력은 감염인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지만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프렙과 U=U캠페인은 이들이 목적으로 하는 대상이 동일하지 않다. 프렙이 질병취약그룹으로서 MSM 게이 커뮤니티에 예방효과를 보장하며 관계의 신뢰를(더러는 쾌락을) 보장한다면, U=U캠페인은 감염인을 향하고 이들의 사회적 참여와 대중의 인식전환을 겨냥한다. 예방효과를 높이고 전파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에 둘은 대립하기보다 상호보완하며 질병의 확산을 막고 부정적 인식을 상쇄한다. 차후 우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과 같이 질병에 낙인을 찍고 당사자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정책들을 변화시킬 논리들로 두 소재를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HIV/AIDS에 대한 의학적 성과들은 단지 감염인의 바이러스수치를 줄이고 감염을 예방한다는 객관적 언술에 그치지 않는다. 의약품 기술이 발전하고 보급이 용이해지는 것은 질병당사자들과 취약집단의 몸을 재편하고, 이들을 혐오로 몰아세우는 논리를 깰 수 있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의료기술 발전은 질병의 낙인으로부터 단절되고 삭제되는 관계를 모색하고 신뢰를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싹틔우며, 나아가 감염인에 덧씌워진 오랜 편견과 혐오에 맞설 논리를 제공한다.
놓지 말아야할 것은 의료 성과를 바탕으로 감염인의 삶을 수면 위로 올리고 필요한 정책을 요구하며 관계가능성을 만드는 역할이 지금의 인권운동에 주어졌다는 점이다. U=U 캠페인은 HIV/AIDS에 대한 의학적 성과가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분위기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바탕으로 창안되고 실천된다. 수십 개국에 캠페인이 확산되고 대중적 호응을 불러 모으는 상황은 의학적 성과로부터 대중운동으로 도약한 과정을 살필 것을 요청한다. ‘약만 잘 먹으면 관리 가능한 질병’이라는 추상적인 명제가 오랜 시간동안 질병당사자가 겪은 삶의 구체적 경험들을 압축시켜 입을 막아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해왔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감염인의 삶을 발굴하고 몸의 규준을 재편할 때이다. 해외의 몇몇 게이미팅앱은 이미 프로필에 PrEP뿐 아니라 약을 먹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음을 체크하는 항목까지 들어간다. 성관계시 감염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 처벌하는 전파매개행위금지가 법으로 제정된 상황에 바이러스 전파력이 없는 감염인의 시대가 나란히 놓인 아이러니를 반영하는 현상이겠지만, 이는 대중사회의 질병인식도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U=U 캠페인은 질병당사자들이 제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밑거름 삼는다. 제시된 성명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서 지역적 맥락에 맞춰 내용을 첨삭할 수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성명을 함께 읽고 한국적 맥락을 고려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성명은 HIV감염인들과 성소수자커뮤니티에서 지속적으로 공유될 것이며, 그 과정에 교육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성명을 같이 읽음으로써 몸에 부여된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편견에 맞설 이슈를 만들고 대중운동의 동력을 모을수 있지 않을까. 예방법 개정을 준비하는 지금 시점에 우리는 U=U를 어떻게 풀어 대중에게 전달하고 환기할 수 있을까. HIV/AIDS 인권운동은 의료와 정책을 업데이트하고 교차시키며 커뮤니티 안에서 담론을 키워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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