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이 바뀐지도 벌써 두달여가 되어갑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의 경고음을 들으며, 미세먼지에도 잘 꺼내지 않던 마스크를 꺼내 쓰고 원하든 원치 않든 하루종일 관련 소식을 접한 날들 말이죠. 해마다 2-3월이면 떠들썩하게 모여 반가워하고 치열하게 논쟁했던 총회들은 줄줄이 미뤄지거나 대체되었고, 행성인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로서 경험하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주던 작지만 소중한 만남의 자리들 조차, 이제는 주저되고 거리를 두어야 할 상황이 되었지요. 

언젠가부터 언론에서는 사람들의 소진을 걱정하기 시작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게 시작되기도 전에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로서 온전히 살아내는 것도 늘 도전이지만, 사회에서 나와 같은 이들에게 쏟아진 거부와 배제를 지켜보는 마음은 또 어땠던지. 의도치 않은 감염에 가해자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그와 같은 사람들을 묶어 바이러스와 동일시하는 모습에 우리는 무엇을 겹쳐보았던지. 높아진 스트레스를 추스릴 새도 없이 생존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건만 어딘가에선 왜 오늘도 혐오는 나를 비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지. 비록 우리가 성소수자로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재난 상황에서 취약한 이들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자신 뿐 아니라 소중한 벗들의 안녕을 걱정하게 합니다. 

하지만 광장에 모일 수도 오붓한 자리를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온라인에서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염려와 응원의 마음을 담아 행성인 노동권팀은 어디에나 있지만 또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이며 노동자인 각자가 마주하는 지금의 이야기를 청해보았습니다. 

 



다니주누의 끄적임

 

다니주누(영화 스태프, 판섹슈얼)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를 하게 된 다니주누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번도 알리지 않은 것 같아요. 그저 부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정도로만 소개가 되었는데 이번엔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원래 스무살 때부터 영화계 스태프로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군대를 가게 되고 예기치 못한 일로 영화가 아닌 다른 일로 빠지다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다시 영화가 하고 싶어져 무턱대고 서울로 올라온 게 네 달이 넘었어요. 올라온다고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처음엔 직업교육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남는 시간동안 배민라이더스를 잠깐 했어요. 그러다 1월 중순에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는데 “코로나 19” 이슈가 생겼네요...ㅠㅠ
 
다행히 저는 코로나 이슈로 영화 촬영이 중단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촬영을 시작하지 않은 현장에서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촬영이 무기한 연기되고 한 영화의 촬영이 끝나고 잠깐 쉬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많네요.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시국에도 영화를 찍는 현장이 있구나” 라며 부러움이 섞인 말을 자주 듣곤 해요.
 
근데 더 무서운건 따로 있었어요. 요즘 영화관 상황 아시나요? 2월 이후로 개봉한 영화가 없다시피 한데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신규 영화 개봉은 무기한 연기... 이렇게 개봉이 밀리면 새로운 영화 촬영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저는 지금 일을 해서 다행이지만 이번 작업은 5월 중순이면 계약이 종료되는데 이후에 저는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할지 너무 막막하기만 해요.

 



"건강하신가요?" - 친구나 일터의 동료를 만나면 '건강하신가요?'가 기본 인사가 되어버린 현재

 

현(강사, 게이)

 

여행이 너무 가고 싶지만 갈수가 없어 건조하는 빨래통을 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낮 수업 강사로 일을 하고 있는 현입니다. 일주일에 4일은 장애인 학교에서 일하고 하루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1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일을 쉬고 있는 상황이네요. 특수고용직이라 국가지원에 해당이 안되는 해당자라서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다행히 일하는 곳의 재단에서 지원을 해주셔서 간간히 버티면서 일을 나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면서 저는 올해 2분기 워킹홀리데이 신청 계획을 미루고 너무 좋아하는 여행도 잠시 접어두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하거나, '내가 지금 잘하는건가?' 하는 자책감도 밀려오고 심난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네요. 자책감을 떨쳐버리려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애인과도 자주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일을 하지만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들고, 같이 거주하는 어머니는 괜찮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요즘 많이 말씀하세요.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하루입니다.

노동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의 권리, 행성인 노동권 팀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네요!



작은 방

 

진 (행동하는 성소수자 노동자, 레즈비언)

 


#1. 


지난 월요일 출근 직후 사내 메신저에서 동료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2년 간의 계약직 생활을 마치고 다음 달 무기계약 전환을 앞둔 상태에서 계약만료를 통보받았다는 겁니다. 상시적으로 해오던 업무였고 그래서 인력담당 부서도 계약연장을 당연히 이어지는 ‘남은 절차’로 여겨 왔기 때문에 관련하여 어떤 ‘조짐’도 없었다고 합니다.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 전 회사 가까이로 이사를 했고 그러기 위해 빚을 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서 일자리를 잃게 된 그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이 흔들리는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다고 토로했습니다.
회사는 계약만료 기간 등 법적인 절차에 따라 통보했다고 합니다. 동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그에게 지금 어떤 위로가 가능할까요?  
코로나19라는 낯선 이름은 우리 삶과 터전에 빠르게 진입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태’ 앞에 늘 그렇듯 세상은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고통 분담은 역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도달하나봅니다.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이 가장 빨리, 손쉽게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사람, ‘인건비’였습니다.

2020년 봄, 코로나19라는 낯설고 커다란 상자가 모든 이의 방에 똑같이 놓였습니다. 누군가의 방은 넓고 커서 다른 곳으로 잠깐 옮겨둘 수 있지만 작은 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덩어리가 되었고 ‘어떤 이’는 결국 그 방에서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무급 휴가와 휴직 강요가 속출하는 중에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사회운동이 정부를 향해 고용안정대책을 마련하고 해고금지를 선언하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난 속에서 ‘작은 방’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재난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한 ‘방’이 필요합니다.

 


#2. 


회사는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사무실의 인구밀도를 줄이는 차원에서 재택근무에 돌입했습니다. 재택근무의 목적에는 아이들이나 돌볼 가족에 대한 가이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볼 의무와 책임이 있는 가족이지요.
간혹 직원들 중에 비혼 상태인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양보하라는 말을 합니다. 재난의 상황에서 어린 자녀나 취약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유로 배려가 필요한 직원들의 고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처럼 ‘보이지 않는 가족’을 둔 이들에게 “너는 혼자잖아, 혼자 사니까 재택근무는 필요 없지?”라고 쉽게 하는 말들은 참 서운합니다. 일하는 사람들 끼리 적대하게 하는 것도 같고요. 이뿐인가요? 4인 가족 기준으로 지급이 산정되는 재난지원금은 어떻구요?
세상에는 결혼이나 혈연을 통해 형성된 ‘눈에 보이는 가족’ 이외의 가족을 둔 이들도 참 많은데요. 재난은 평등하게 덮치는데, 그에 따른 대응은 또 이렇게 불평등하게 적용됩니다.

 



[코로나19와 성소수자-노동자] 벗들의 이야기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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