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소수자 노동자 ②] 저는 병원에서 노동하는 레즈비언 노동자입니다

2021. 12. 28. 17:42성소수자와 노동

어디에나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일터에도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성소수자 동료가 있는지 묻는다면 대부분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혐오와 차별을 피해 일터에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막연한 상상 속에 가려진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기록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번 연속 기고는 현재를 살아가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현장을 바꾸고서야 비로서 나의 삶이 바뀌었듯 모두를 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함께 나서야 일터도, 우리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 연속 기고를 통해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곁에 함께하는 동료가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루카, Yz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슈미는 20대 레즈비언이며, 병원에서 일하는 N년차 의료기사다. 직장에서 노동조합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순간 1 : 마지막까지 손잡아주는 직업

 

“제가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손잡아주는 직업’이라는 말이 있어요.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사실 육체적, 인지적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저를 만나요. 가족을 못 알아보거나 앉아있는 것조차 어렵거나 계속 욕하는 사람, 심지어 손에 똥을 묻혀 오는 사람도 있죠.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서는 장점을 말해주지 않고 현재 상황을 얘기해줘요. 그런데 저는 그와 주변의 가족들에게 지금 어떻게 발전하고 있고, 장점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요. 이게 저에겐 만족의 포인트인 것 같아요.”

 

병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병원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된지 오래다. 의료라는 서비스를 매개로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거대한 산업.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지속을 경험하며 우리는 병원이 누구나 아프다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다시 알게 되었다. 그런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손잡아주는 직업’으로 일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의 삶은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다. 환자를 수익으로 생각하는 병원은 인지능력이 있는 환자가 배변 실수를 해도 치료를 계속 하라는 지시를 한다고 한다.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 치욕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환자의 존엄은 안중에도 없는 병원. 병실로 보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환자를 붙잡고 치료를 끝마쳐야 하는 병원에서 대다수의 병원 직원은 지시에 따르며 침묵하는 방식으로 일을 끝마치게 될 테다.

 

하지만 슈미는 목소리를 내는 편을 택했다고 한다. “당신을 그저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순간 2 : 마음에 스파크가 튀다

 

“만나는 사람 있어?”

 

일상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일터는 늘 ‘일상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직장 상사나 동료와 생애주기에 맞춰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부동산, 노후 준비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내가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어필하고 있지 않은가.

 

슈미도 그 순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십대 초반에는 남자친구의 유무와 구체적인 형상에 대해, 이십대 중반에는 ‘꺾였다’는 말과 함께 결혼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남자친구 만들기 대작전’의 필요성에 대해. 그때마다 슈미의 마음에는 ‘스파크’가 튀었다고 한다. 결-남-출(결혼-남자친구-출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력한 스파크. 그 스파크는 자연스레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로 이어지는 동력이 되었다. 슈미가 몇 년 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 이유다.

 

‘스파크’는 변화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도록 돕는 촉매제와 같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은 채 행동의 장으로 나서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마음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드는 그 ‘스파크’를,  처음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직장 상사와 동료 앞에 설 때 그 기분과 같은 감정을.  

 

슈미에게는 페미니즘을 향해 가는 길에도, 노동조합에 함께 하는 여정에도, 일터에서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과정에도 늘 ‘스파크’가 있었다. 슈미는 그 스파크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대신 싸우다가 욕도 많이 먹어봤다는 슈미는 한동안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성소수자 노동자로 일터에 존재하며 변화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순간 3 : 노동자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되기

 

“처음에는 일터를 떠나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노동하는 병원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병원도 다르지 않다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어서 남아있는 걸 선택했다. (...) 한동안 나는 외로웠다. 숨쉬기도 힘들어서 눈치 보며 숨을 쉬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나고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었다. 존재 자체로 든든했다. 조금씩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슈미가 일하는 직장에는 최근 노동조합이 생겼다. ‘사실 나만 힘들고 불편한 게 아니었구나’를 확인한 노동자들이 모여 살아남기 위해 울타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슈미도 노동조합 결성에 동참하며 힘을 모았고, 지금도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터를 떠나기로 다짐했던 바로 그 무렵, 병원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슈미를 연대와 행동의 장으로 날아갈 수 있게 도운 셈이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용기를 내어 찾아간 노동조합 행사에서 슈미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또 많이 만났다고 한다. 일터에서 노동자를 넘어 성소수자 노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 역시 노동조합을 만나고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보인다. 슈미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물론 명암이 확실하다. 지금은 어두운 면이 조금 더 짙어 보인다. 열의를 가지고 임했던 업무에서 쉽게 배제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 하지만 슈미는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본인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슈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조합에서 평등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맡으면서 말이다.

 

‘노동자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되기’라는 표현을 보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슈미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고 훨씬 명료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발자국의 용기를 내고, 무엇보다 함께 일터에 오래 존재하자는 이야기. 그 용기가 분명 일터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믿음. 커밍아웃 여부에 상관없이 일하는 성소수자로 존재하는 씨앗과 같은 우리가 있다면 언제든 변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성소수자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씨앗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언젠가 잎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든든한 땅과 나무, 하늘과 냇가를 동지로 둘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직장 상사와 동료가 그 동지를 자임한다면, 잎과 꽃과 열매는 더욱 빨리 맺어지고 필 것이다. 동지가 되는 방법 또한 여럿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어줄 수도, 끓는 마음으로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테다. 무엇이든 좋겠다. 당신이 마지막까지 손을 잡아주는 마음으로 일터와 일상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 이 글은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세계] 에도 공동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