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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토론회 4회차 후기] HIV감염인 직장 동료, 익숙하진 않아도 평범한 생각

by 행성인 2021. 12. 8.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토론회 – 일터의 성소수자들, 노동권을 말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합니다. 당연히 성소수자도 노동합니다. 그러나 일터에서 성소수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성소수자가 혐오와 차별을 피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을 뿐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미세먼지와 같은 혐오와 차별을 마주합니다. 차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일터를 꿈꿉니다. 그래서 이제는 노동자로서 성소수자 노동권을 말하려고 합니다.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토론회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차별인지 짚고, 일터 차별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성소수자 노동권의 현실과 과제를 정리하는 자리입니다.
 
HIV감염인도 직업을 가지고 노동자로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상상하기가 왜 이리 어려웠을까요? 4회차 토론회에서는 HIV감염인을 일터에서 배제하는 기업의 차별논리를 살펴보며 HIV감염인의 노동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감염인 노동권 활동을 펼치는 HIV/AIDS인권활동가들의 고민을 들으며, '감염과 비감염인이 함께 하는 일터'를 위해 필요한 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by 갈릭

 

 

성소수자 노동권을 말하는 행성인의 연속토론회, 마지막 시간은 HIV 감염인의 노동권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 2018년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가 소책자를 제작한 바 있고,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의 소주 님이 몇 차례 발표를 했었다. 이번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감염인이 노동하기 어려운 현실”만큼이나 “일하는 감염인”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미 많은 감염인 동료들이 일터에서 노동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감염인 노동자’라는 형상을 잘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일터에서의 권리보장을 위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우리의 상상력을 새로 채우는 것일 테다. 마침 올해 네트워크에서 ‘노동권팀’이 만들어져 흩어져있던 이슈들을 모으고 체계적 대응을 모색해왔기에 1년 간의 고민을 나눠주시길 부탁드렸다.  

소주 활동가는 감염인의 노동권을 제한하거나 그럴 소지가 있는 법과 제도를 정리해주었다. 명시적으로는 군인, 항공기조종사, 유흥업 및 성산업 종사자를 제외하고 모든 직종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염병’이라는 포괄적 범위 안에 HIV가 포함되거나, 기회감염에 따른 발병 상태인 AIDS로만 기술되면서 모호한 부분이 발생한다. HIV 감염은 발병을 의미하지 않으며, 치료를 통해 건강유지가 가능한 상황이 법 조항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감염인이 일하고 있고, 일할 수 있는 상태이며, 일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제도적 공간을 넓혀간다면, 감염을 이유로 진로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호함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권 대응 사례를 발표한 권미란 활동가는 이전과 달리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국가인권위와 당사자단체가 개입해 고용주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제도상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사업주가 HIV 검사 결과를 요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기 때문에, 직장인 건강검진의 경우 보건복지부와 관할 보건소를 경유해 대처가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원과 대중의 불안을 이유로 감염인을 일터에서 배제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고, 사후 조정이 성립되더라도 당사자의 일터 복귀는 요원하다. 모호한 규정과 노사 간 합의, 직종에 따른 제도 운영상의 차이가 겹겹이 포진해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 고용주는 질병 낙인을 동원해 감염인을 압박하고, 당장 감염 사실이 알려진 이상 당사자가 버티기 어렵기 때문에 사안을 가시화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발표 이후 토론이 진행되면서 ‘감염인과 함께 일하는 일터’에 대한 상상이 강조되었다. 해외 사례를 찾아서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고, 직업과 직종에 따른 업무적합성을 검토해 제한의 근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직장에서 감염인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요구할 것이며, 감염인이 자신의 의료정보가 알려질 부담없이 일하기 위해 건강검진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도 논의되었다. 

“건강은 유동적 상태”라는 점에서 “‘아픈 사람’이 일터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하는 질문도 중요했다. 아프면 치료하고 회복한 이후에 일터에 복귀할 수는 없을까?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의 건강 회복에 따른 일터 복귀를 명시(제138조 2항)하고 있듯이, 몸의 다양한 상태를 고려해 일할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AIDS 환자는 치료를 마치면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고, 회사는 바이러스 미검출 여부를 따져 묻는 대신 고용을 지속하며 노동조건을 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픈 사람의 노동권”은 HIV 감염의 다양한 경험을 고려하고 ‘일할 권리’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계속 탐색해나갈 과제였다. 

지난 2010년대에 HIV감염인은 해마다 천 명 안팎의 규모로 늘어났다. 의료급여 수급자 비율이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인으로 살아가면서 감염인들의 노동 경험도 다양해졌을 것이다. 감염인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많은 질의응답이 이루어지지만, 이전과 달리 현실의 관문을 통과하여 일터에 진입하거나 회사에 대응한 사례들이 들리고 있다. 최근에는 일방적인 보직변경에 항의해 자료를 모으고 회사를 설득해 본인의 적성에 맞는 업무로 복귀한 사례도 있었다. 현실의 구체적 조건을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현장에서 노동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질문해가는 동료와 선후배들을 만나는 것도 ‘일하는 감염인’을 상상하는 데 유용할 터였다. 

이렇게 현재의 제약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나니, 앞으로의 운동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감염인 커뮤니티의 안과 밖에서 더 많이 외치고 감각을 바꿔나가자는 제안이 있었다. HIV 친화적인 직장을 만들고, 감염인 동료를 상상하자는 제안과 요구를 시작할 때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감염인 노동자들의 동료가 되기를 요청드린다. 아마 소중한 의료적 개인정보를 미리 말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또한 없길 바라지만), 혹시나 알게 되더라도 변함없는 직장 동료로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사실 누가 감염인인지 잘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부터가 감염인의 직장 동료가 되고 싶어졌다. 아, 이미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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