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토론회 3차 

 

처음으로 축제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201898일이었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퀴어축제가 열렸는데 당시 재수생이었던 나는 경상도 시골에서 인천까지 먼 거리를 이동했다.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축제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초라하게 끝났다.

혐오세력의 거친 탄압에 의해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봐야 할까.

퀴어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라해도 역시 퍼레이드인데, 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경찰이 밀어내면서 4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동인천역에서 인천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혐오세력에게 둘러싸여 깃발을 내린 채로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며 걸어야 했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접한 퀴어축제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은 과도한 노출의 참가자들’, ‘생식기를 형상화한 빵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당연히 그게 전부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의미로 그게 전부가 아닐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뿐.

빼앗기고 짓밟힌 무지개 깃발들, 휠체어를 탄 참가자를 위협하는 사람들.

인간이 일면식도 없는 다른 인간을 그렇게 혐오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축제는 어떤 면에서 제사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세상을 떠난 활동가들을 추모하기도 하니까.

 

옛날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이 지금 이와 비슷한 걸까.

우리가 누구에게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비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신에게 비는 걸까, 신에 가까운 권력을 가진 높으신 분들에게 비는 걸까.

이렇게 해괴한 생각을 하는 건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아직도 요원해서겠지.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고 2년째 축제가 잠정 중단되었다. 정확히는 온라인으로만 열렸다고 해야겠지만.

그러는 동안에 나는 군 복무를 마쳤고, 세상을 떠난 부사관과 음악교사의 소식을 들었다.

 

다시 축제가 열릴 수 있을까.

그들과 아무 관계 없는 나조차 그 이름 하나하나 시린 마음으로 기억한다.

타올랐던 불꽃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되었고 정의가 도래하지 않은 세상에서도 우리는 앞으로 가야만 한다.

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오지 않은 미래를 믿는 수많은 활동가들을 그저 멀리서만 응원했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집자 주]
 
지난 916일 목요일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주관하고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토론회 ] ’트랜스로 건강하게, ''답게 노동하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패널이었던 호림님과 이드님이 트랜스젠더 노동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준비해주셔서 열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이드님께서 우리 곁을 떠난 트랜스젠더 활동가를 비롯해 여러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수리님이 이드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던 감정에 대한 글을 쓰셨다며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도 수리님의 글을 읽으며 제 1회 인천퀴어퍼레이드와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고 시렸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터에서 평온하게 노동할 수 있도록 힘차게 소리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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