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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제 14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마지막 세션 후기: 그래도 퀴어는 나아간다 <우리가 보내온 5년, 우리가 그리는 5년>

by 행성인 2022. 5. 26.

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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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오프라인으로 진행한 성소수자 인권포럼이었다. ‘그래도 퀴어는 나아간다’는 사연 많아 보이는 표제의 마지막 세션 이름은 <우리가 보내온 5년, 우리가 그리는 5년>, 역시나 단어 하나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 5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5년 전 성소수자들은 촛불을 들고 나가 적폐를 몰아내고 세상을 바꾸자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동성애가 싫고 차별금지법 제정할 마음이 없다고 공언했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대답이었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그를 쫓아다니며 국회 앞마당에 무지개 깃발을 펼쳐 항의하고, ‘나의 인권을 반반으로 나눌 수 없다’고 외쳤다. 우습게도 활동가들이 외친 현장은 문재인 후보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는 자리였지만, 항의하는 성소수자들에게 돌아온 응답은 ‘나중에’ 였다. 그렇게 ‘나중에’는 시대정신이 되다시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달라진 것이라면 보수정권으로 돌아온 상황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이 아닐까. 인권 정책에 있어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던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는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식는 기분이다. 그래도 성소수자운동은 나아가 보겠다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쏟아낸 힘에 비해 변화는 더디고, 실망과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그 속에서 운동은 어디서 힘을 찾고 어떻게 길을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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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이호림과 박한희 두 활동가의 발제와 성소수자 운동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타리/나영정, 류민희, 지오 활동가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호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활동가는 <성소수자 인권 관련 사회적 조건과 시민 인식의 흐름>을 주제로 국가통계에 잡히지 않는 성소수자의 현실을 문제 삼았다. 1세계의 담론들은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고 훈육하는 인구정치의 비판적인 관점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인구의 범주로도 파악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위상은 모욕적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문제라고 의식하는 비율은 높아지는 가운데, 성소수자를 이웃이자 직장 동료, 친구와 가족으로 두는 것에 대한 비율은 현저히 낮은 수준을 몇 년 째 유지하는 점이었다. 이는 성소수자 운동이 어떤 언어와 방식으로 대중에게 접근해왔는가를 숙고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그의 화두는 본 세션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으로 자리매김한다.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활동가는 <무지개행동의 5년간 대중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무지개행동의 활동을 정리했다. 다양한 성소수자 운동단위들의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성소수자 운동진영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데 나아가 대표성을 갖는 운동단위이기도 하다. 무지개행동은 국가기관과 담당부처를 대상으로 하는 거버넌스 활동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활동, 대중 캠페인을 진행한다. 일련의 활동은 성소수자의 면면을 드러내고 경험을 모아 요구안과 인권의제를 만들어 사회에 요구하며 운동을 확장해왔다.

 

‘나중에’를 뚫고 ‘지금당장’을 외치며 달려왔지만 여기에도 벽은 있다. 앞서 이호림 활동가의 지적과 더불어 본 발제자 역시 성소수자가 가시화가 되고 의제들이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대중사회에 공감을 이루진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전히 제도적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해온 국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여 그는 발제 마지막에 고착된 상황으로부터 의제를 선택하고 집중하여 돌파구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운동의 자원이 한정적이고 그 효과도 제한적인 상황이라면 가족구성권 운동과 같이 구체적 투쟁 대상과 방향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간 성소수자운동이 혐오와 성적 보수주의 정책에 수세적으로 대응해온 한계를 넘어서서 성소수자 시민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하자는 제안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도모하여 지금의 고착상황을 돌파한다 할지라도 인권운동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가치와 활동에 대한 고민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성소수자운동 안팎에도 인권 사각지대라고 부르는 취약한 지점이 있고, 인권운동은 이 지점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가령 동성혼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거나 동성혼 운동을 주류화한 국가들의 경우 운동을 조직하고 성소수자의 사회적 위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줄곧 트랜스젠더와 에이즈운동을 소외하거나 침묵했던 사례들도 없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삶의 취약한 지점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가족구성권 의제를 집중시킬 수 있는 방향 설정과 전략에 대한 토론 자리가 필요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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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나영정(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의 토론 <지난 5년간의 에이즈 인권운동: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운동을 중심으로>은 HIV/AIDS운동이 성적 취약함에 주목하며 위의 발제들을 보충하는 모습이다. 그는 성소수자운동, 에이즈운동에서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감염인의 섹스를 본격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운동 안에서 언어를 만나고 당사자를 만나 관계를 맺어온 시간들을 상기했다. 성적 보수주의와 혐오논리에 대항할 수 있는 운동의 자신감은,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 폐지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동기부여가 되었다.

 

국가의 통제와 낙인에 저항하면서도 인식개선이 필요한 에이즈 운동은 감염인의 성적 권리 외에도 의료 차별, 노동 차별 등 감염인이 살면서 겪는 차별의 경험을 의제로 만들어왔다. 그 과정에 에이즈운동은 퀴어 커뮤니티 내부 대상의 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HIV감염인 노동자나 요양병원 와상 환자, 약물사용자, 최근에는 이주민/난민과 ‘은둔’으로 불리고 자신들을 부르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커뮤니티 당사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할 때 중요한 활동이기도 하다.

 

발제는 최근 특허권과 높은 단가로 의약품을 판매해온 초국적 제약회사가 최근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후원하고 치료제와 예방약을 홍보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기업이 제공하는 협소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성소수자에게 보장하는 소비자 주권 너머, 타인의 취약함을 살피고 돌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논리가 필요한가. 타리는 '침습'의 가치를 강조하며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부터 시민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업을 그저 적대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동은 무엇을 요구하고 시장에 개입할 것인가. 이는 앞으로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지오(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는 성소수자운동이 현재 가장 집중하는 차별금지법운동을 돌아보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재출범 이후 5년간의 활동 돌아보기>에서 그는 무지개행동의 종걸 활동가를 예로 들며 그가 시민사회 운동의 대표성을 갖는 개인의 면모를 보이는 것 자체로도 성소수자운동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사람을 모으고 경험을 엮어내면서 차별의 구조를 통찰하는 활동을 동반해왔다. 하지만 제정운동 내부에도 사소하게나마 긴장이 없지는 않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함께해온 이들은 이 법이 성소수자 의제로 좁혀지거나 사회적 소수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으로 수렴해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며 차별금지법이 모두를 위한 법임을 환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서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가장 중요한 주체의 일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이는 정체성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정체성의 언어와 역할을 가져야 하는 태도를 환기시킨다. (지금은 차라리 누가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고. '맞아요.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에요. 그게 문제인가요?') 

 

사회운동은 운동 주체들의 역량에만 의존할 수 없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가장 큰 문턱은 혐오세력도 보수정치도 아닌 다름아닌 민주당이었다. 설령 당장 제정될 가능성이 멀어지더라도 우리에게는 운동이 이만큼 성장하고 확장해왔음을 정리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졌지만 잘 싸웠다’의 정신승리 너머 싸우는 과정에 무엇을 남겼고 변화시켰는지를 평가하는 작업 말이다. 성소수자 운동은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 토론자는 류민희(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가구넷 활동가) 활동가가 진행했다. <우리 권리를 실현하는 99가지 방법: 동성혼 운동과 가구넷의 사례>에서 그는 운동의 전략들을 정리한다. 여기에는 개별적인 차별과 인권침해 대응부터 대중캠페인, 전략적 소송과 입법에 이르는 어드보커시 방법론을 망라한다.

 

다른 내용보다도 인상적인 부분은 토론자가 ‘인권버블’이라고 표현하는 지점이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SNS를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동료를 만들고 소통을 한다. 이는 나와 비슷한 방향의 사람들의 군집을 관계의 울타리로 만드는 패턴을 반복하는데, 그것이 운동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연결의 감각은 운동에 임하는데 힘이 되지만, 때로는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진단과 경계가 필요하다.

 

가족구성권과 혼인평등을 주장하는 운동은 그만큼 대중의 여론을 확인하고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거리에 나아가 생판 모르는 타인을 만나 의견을 묻는 작업은 낯익지만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성소수자운동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운동의 방향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그저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문법을 이해하며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시도하는 것은 성소수자 운동이 거듭해온 과제일 터. 반대자와 지지자 사이에 걸쳐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성원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운동을 해나가며 긴 시간 풀어내야할 과제로 남는다.

 

 

4

마지막 세션이 끝나자마자 두 발제자와 토론자, 사회자인 본인을 비롯해 포럼을 진행한 활동가들 상당수는 강남역에서 열리는 민주당 집중유세장에 차별금지법 그림자시위를 위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시간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5년여의 시간동안 성소수자 운동은 자신들의 의제를 구체화하고, 성소수자라는 울타리 너머 다른 사회운동들과 연대를 해나가며 변화의 큰 그림을 그려낼 역량을 키웠다. 여기에는 전국적으로 집중해온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아는 만큼 불행하다'고 했던가. 운동의 역량이 성장하고 언어가 풍부해졌을지라도 제도적 성과가 수년째 답보하는 상황은 운동의 피로도를 높인다. 지금 성소수자 운동이 임계점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잠시 떠올렸지만, 생각해보면 성소수자 운동은 제도의 답보상태가 계속되면서 임계점을 갱신해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 본 세션은 성소수자 운동에 몇몇 과제를 남겼다. 의제의 언어가 풍부해지고 차별금지법 찬성여론이 다수가 된 지금, 여전히 사회는 성소수자를 동료이자 이웃으로 보기를 꺼려 한다. 이 상황은 운동이 그저 논리적 당위성과 명분만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위로는 국가기구를 상대하고 차별사건을 대응할 수 있는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면, 아래로는 운동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커뮤니티 의제들을 발굴하고 지금을 살아가고 살아왔지만 드러날 수 없던 이들을 만나야 한다. 성소수자 운동의 언어뿐 아니라 운동이 앞으로 만나야 하는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 역시 과제로 남는다.

 

그런 점에 지금 성소수자 운동 환경이 어떠한가에 대한 내부 진단과 평가가 필요할 텐데, 그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포럼에서는 패널 발제와 토론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청중들과 토론을 진행하지 못했는데, 이 또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성소수자 운동의 강점과 약점,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멀지 않을 때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만남을 열고 활동에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14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다시보기 및 자료집 링크 안내]

성소수자 인권포럼 기획단은 포럼 영상기록과 자료집을 공유하고 있다.

🌈 유튜브 다시보기 : https://youtu.be/BO30V0UPF54

🌈 자료집 : https://lgbtqact.org/14queerfor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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