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행성인 미디어TF)
육우당의 이름
행성인은 19년동안 육우당의 이름을 부르며 추모했다. 현석이라는 이름보다 육우당을 쓰는 것은 비단 개인으로서 그의 자리 외에도 우리를 떠난 이들을 한데 묶어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육우당’이라는 이름은 우리 곁을 떠난 다른 이들까지 포함하는 우산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한 명의 개인이기도 하다. 육우당은 여섯 친구를 가리키는 아호의 의미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이를 개인과 아주 분리할 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육우당이 남긴 기록들에는 성소수자 혐오와 보수 기독교, 청소년보호법 등의 당시 사회적 이슈들이 포개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은 육우당을 기억하면서 떠나보내고, 떠나보내면서(혹은 떠나보내기 위해) 기억한다. 육우당의 기일이 있는 4월은 행성인에게 추모 기간으로 이어져오고, 같은 시간 무지개예수를 중심으로 추모예배도 해를 더한다. 시간을 더하면서 육우당의 무게는 조금씩 덜어가는 모습이다. 올해 행성인 추모행사 '추모와 기억의 시간' 웹자보에는 육우당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에 희생된 벗들을 추모하는 기도회'의 경우 육우당보다 기도회의 이름 자체가 부각되었다. 어쩌면 육우당은 상징적 무게를 덜어가면서도 그림자처럼 남아 끝까지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만들지 모른다. 차라리 그를 기억하는 건 그저 단수로서 개인을 기억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와 더불어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육우당은 그로부터 이어온 활동들을 기억하고, 활동에서 만났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운동의 경험을 경유하는 동안 나의 청소년 퀴어 시절 또한 다른 언어로 쓰일지 모른다.
무지개 봄꽃- 행성인의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
육우당이 떠나고 동인련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슈를 지나칠 수 없었다. 당시 활동했던 이들은 청소년보호법 투쟁과 별개로 상담사업과 교사 워크샵을 진행했다. 이반검열이 한참이던 2007, 2008년을 즈음해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하나 둘씩 단체를 찾았고, 2009년 청소년자긍심팀을 시작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10년에 걸쳐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을 만드는 동안 많은 이들이 단체를 찾았고 캠프와 교육, 소풍과 캠페인을 만들었다.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여 캠페인을 만들고 교육을 하는 한편에서는 육우당 문학상과 같은 문예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였고 시조시인을 꿈꾸던 육우당의 기록들에 영감을 얻어 인권과 영성을 생각하는 이들의 목회와 예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위기지원센터 띵동은 육우당과 또다른 청소년 성소수자 키디다를 기억하며 활동을 넓혀왔다. 꼭 육우당이 아니어도 무지개행동에서는 이반스쿨팀을 꾸려 국제사회의 청소년 성소수자 가이드를 번역하고 학교에 편지를 보내는 작업을 하며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기도 했다. 애도는 기억하기 위한 자리 위에 생면부지의 타인을 출몰시키고 서로를 연루짓게 한다.
육우당 19주기를 맞아 미디어TF에서는 ‘다시 만난 무지개 봄꽃’을 진행했다. ‘무지개 봄꽃’은 육우당 추모주간이면 매년 진행한 청소년 성소수자 캠페인 이름이다. 육우당 뿐 아니라 90년대에 세상을 떠나 그의 얼굴을 본 이가 많지 않던 오세인을 비롯하여 다른 동료들까지 기리는 자리다. 매년 마로니에공원과 홍대 등지에서 우리는 이들의 유품을 전시했고 사람들에게 청소년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렸다. 한쪽에서는 청소년 퀴어 친구들이 삼삼오오 나들이 나온 아이와 부모에게 퀴즈를 내고 응원의 한마디를 받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걸그룹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는 일하는 사람만 일한다고 심술을 부렸지만 지금은 그리운 기억들로 남는다.
청소년 퀴어 활동으로 시작한 창현과 사과를 초대손님으로 불렀지만 이 자리에는 행성인에서 청소년퀴어 활동을 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과 함께 단체가 성장해온 궤적을 돌아보는 자리는 동창회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누군가는 상담을 공부하며 자신과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을 청소년 상담을 꿈꾸고, 누군가는 청소년 운동지형을 공부한다. 장애 운동을 하고 디자인과 공예를 공부하는 이들은 행성인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의 경험이 자신을 지키며 사회활동을 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행성인이 없었다면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할 수 없었을 거라는 회고는 단체든 개인이든 서로 공부하고 배우며 같이 성장하고 나이를 먹어 감을 새삼 체감케 한다. 문득 당시 함께 활동했지만 지금은 만나기 어려운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무지개 봄꽃을 다시 피우기 위해
개인적인 인상을 하나 남기면 지금 성소수자 운동에서는 이런 명랑함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의 시야가 좁은 탓이겠지만, 지금 성소수자 운동에서 청소년 퀴어의 경우 당사자 주도로 운동이 만들어지기 보다는 당사자 활동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둔다. 2020년 청소년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야학이 진행되었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청소년 사업팀을 꾸려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인권옹호활동 및 캠페인을 지원하는 '목소리를 내자' 사업과 세상과 이어지는 글쓰기 프로젝트 '퀴어-잇다'를 진행한다.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많은 지원사업들이 있다.
지원사업에 초점이 맞춰지는 배경에는 한국의 성소수자 공간이 온라인이 아니고서야 여전히 밤의 성인들에게 국한된 장소라는 한계가 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현실이 분명하게 자리한다. 카페와 홈페이지로 묶였던 커뮤니티가 개인 SNS로 옮겨오면서 오히려 만남이 어려워진 배경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지만 30년이 가까워지는 시간동안 성소수자 운동도 뼈가 굵고 나이를 먹는 실질적인 여건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난 무지개 봄꽃'에서는 지난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의 경험을 나누고, 그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어떤 청소년 의제가 떠오르고 운동이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폈다. 청소년 퀴어 당사자들이 캠페인과 활동을 만들어온 행성인이 있다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는 이반스쿨팀을 꾸려 해외자료를 번역하고 교육감선거에 개입하며 지역 어린이청소년 및 학생조례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당사자와 접점이 어려운 여건에 운동을 발굴하고 의제로 키워나가는 과정에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청소년 퀴어 운동의 답답함이 가시지는 않았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모임은 어떤 부분이 답답했던가를 분명히 알게된 것이 소기의 성과라면 성과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서로 격조했던 청소년 자긍심팀,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팀의 활동가들이 오랜만에 만난 자리는 한동안 기억에 머무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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