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소수자와 노동

[퀴어X투쟁] ‘동지’들께 드리는 편지- 한국산연지회 이야기마당 후기

by 행성인 2022. 6. 28.

심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안녕하세요, 심지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 그러니까 6월 15일에 우리는 한국산연지회 농성장에서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이야기마당을 열고, 두 영화 <내가 싸우듯이>와 <평등길1110>을 상영했어요. 그 후기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마침 조합원들의 전면 단식 소식을 전해들었네요. 그 소식을 접하고 보니 왠지 이 후기는 편지여야 할 것 같더라고요. 산연 ‘동지’들에게 쓰는 편지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에 앞서 ‘동지’들에게 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이기도 하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의 신입 회원이기도 해요. 활동가이자, 노동자이자, 성소수자라고 말해봐도 되겠죠. 활동과 그 밖의 삶을 분리하는 듯 마는 듯 애매하게 지내는 요즘,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구인 광고>를 내놓듯 ‘동성혼 소송’을 함께 할 파트너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냥 연애하기도 마냥 쉽지는 않은데 동성혼 소송을 함께 할 파트너라니… 구하기 꽤 어려울 것 같지 않나요. 네… 별로 궁금하시진 않으시겠지만 왠지 모르게 제 소개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더 구구절절해지기 전에 본론으로 넘어가볼까요. (…)    

 

처음에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한국산연지회 농성장에서 함께 이야기마당을 해보자고 하셔서 살짝 겁을 먹었는데요. 저는 한국산연지회 ‘동지’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몇 번의 검색을 통해 어떤 투쟁을 하는 분들인지 조금 접할 수 있었지만, 예를 들어 여러분이 바다 건너 일본 시민들의 연대까지 이끌어낸 멋진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 대해 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그런 생각하셨죠? “저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서 뭘 알아가지고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할까”, 그런 생각들이요. 그럼에도 한편으론 기쁘셨으리라 생각도 해요. 어쨌든 농성장에 누가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저도 조금은 느껴봤거든요. 때로는 그 누가 ‘낯선 사람’일수록 더욱 반갑다는 것도요.

 

서로를 잘 모르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감히 여러분을 ‘동지’라고 불러봅니다. 농성장을 찾아간 성소수자와 그 친구들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인지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인지조차 몰랐다는 여러분을, 감히 나의 ‘동지’라고 불러봅니다. 성소수자 활동가 종걸에게 김진숙 지도위원이 ‘선배’이듯이, 여러분 역시 저의 ‘선배’이겠지요. 저 역시 ‘조끼 입은 사람들’을 약간 무서워하던 때도 있었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언젠가부터 제게는 ‘편견’이 생겼거든요. 싸워야 하는 사람들, 싸울 수밖에는 없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그런 편견이 생겼거든요. “끝까지 싸워본 사람만이 이 사회가 어떤지 알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는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워왔고, 그래서인지 저는 이왕이면 항상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고 싶어요.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나빠지는 것도 같고, 그래서 저는 더 이상 무언가를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여러분의, 우리의 간절함만은 믿어보고 싶어요. 행성인 상임활동가 호림의 말대로 “싸워본 사람들이 싸우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 게 아닐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 곡기를 끊는 마음까지는 아직 잘 몰라요. 다만 숨을 가다듬고, 조금씩 가늠해볼 뿐입니다. “걷다 보면 도착점이 있을 거라 믿어야 한다”는 해진 동지의 말을 기억합니다. 언젠가 여러분과 축배를 들 수도 있을까요.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 할게요. 종종 몸도 마음도 함께 할게요.  부디 어느 저녁 오간 이야기들이 여러분께도 “짜릿한 연대의 기억”으로 남기를 빌어봅니다. 

 

심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