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미디어TF)
종종 트위터 뒷계정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사사로운 욕구가 중구난방으로 전시되면서 눈이 돌아가기 십상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이 제 욕구를 표현하고 해소하는지, 트위터를 통해 어떻게 파트너를 만나고 협상의 체크리스트를 채우는지, 그렇게 만남과 관계를 영상이든 이미지든 기록하고 편집하여 제 계정에 전시하는지, 신체적 매력 외에도 플레이의 강도를 버티고 협상력과 관계의 능력들을 계정의 역량으로 삼으며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홍보하는가를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해외의 계정들도 살피곤 하는데, 다른 문화권과 더불어 상이한 지리적, 제도적 맥락에 위치하다보니 플레이 외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작동하는가를 좀 더 쉽게 발견한다. 그렇게 팔로잉 계정을 늘리다가 최근 미국 지역 계정들의 피드를 따라가면서 몇몇 상황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계 논바이너리 배우 새미 신스(@SammySinsss) 는 7월 14일 개인 계정에 성명을 냈다. 게이 포르노 배우 챔프 로빈슨(@ChampRobinsonX)의 사이트 비전플릭스X(@visionxflix)에 아시안 배우가 촬영한 영상 카테고리의 이름을 ‘정액 만두(Cum Dumplings)’로 지은데 대한 항의 내용이었다.
내용인 즉 ‘정액 만두’라는 비유 자체가 혐오를 전제하고 있으며, ‘만두’에 아시안을 은유하는 것은 오랜 인종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섬네일 이미지는 미국에 있는 테이크아웃 중국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폰트에 바닥에 누워 있는 아시안 배우가 허리를 꺾어 엉덩이를 들고 흑인 남성의 물건을 받는 장면이 편집되어 있다. 설령 바터밍을 좋아하고 순종적인 역할을 즐길지라도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이지, 아시안 배우 카테고리를 그렇게 은유한 것은 인종차별의 연장이라는 것이 성명의 주장이다.
성명은 홈페이지에서 해당 카테고리의 주제를 내릴 것과 더불어 챔프 로빈슨의 공식적 사과를 요구한다. 그의 성명은 현재 219회의 리트윗을 통해 많은 아시안 게이와 남성 섹스워커, 포르노 배우의 지지를 받았다. 미국 포르노산업에서 아시안 게이/퀴어 남성 배우의 입지를 순종적이고 비남성적 바텀으로 프레이밍 해온 문화야 낯설 것이 없지만, 여기에도 항의해온 시도들과 자체적으로 대안적 포르노 지형을 만들기 위한 문화 역시 적지 않게 시도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항의가 이어지자 7월 22일 챔프 로빈슨은 자신의 계정에 VISIONX의 입장문을 게재했다. 작은 포르노 홈페이지에서 모든 인종의 모델들에 사랑과 존경을 담아왔음을 밝히는 성명은 해당 시리즈가 위험을 방치했음을 인정하고 아시아 퀴어 커뮤니티에 사과를 전한다. 입장문은 문제적인 씬들을 삭제하거나 다시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만, ‘정액 만두’라는 카테고리 이름과 폰트는 홈페이지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인종주의는 사회적 위계를 표상하는 구조적 문제이지만, 현실에서는 사사로운 페티시적 소재로, 소위 ‘인종플(race play)’로 소구되기도 한다. 문제제기의 요소가 다분하지만, 이를 쉽게 구조적인 문제로 재단하고 판단하기에는 곤란한 지점들이 있다.
가령 7월 12일 자퀠 디 오베디언트(JaQuell the Obedient, @natyralorder83) 은 2007년 공식적으로 처음 진행한 게이 인종플레이를 기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그는 기꺼이 플레이에 참여한 흑인 배우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감사를 전한다. 이전에 없던 헌사는 그들의 헌신 덕분에 자신들의 페티시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한다.
포스팅한 글에는 당시 사진기록들이 정리되어 있다. 남부연맹 깃발 중에서도 개량된 테네시군 깃발을 뒤에 걸고 노예시장을 연출하고 플레이하는 장면이다. 쇠사슬을 목에 두른채 무대에 오른 흑인 배우들의 알몸을 보안관 모자를 쓴 백인 남자들이 검사하고 구경하며 흥정하는 장면은 옛날 서부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의 ‘비도덕한’ 욕망과 행위를 ‘플레이’로 언급하며 공론장에 올릴 수 있기까지 흑인 배우들과의 합의가 중요했음을 강조하는 건 당연했을 터.
한편으로 우리는 챔프 로빈슨이 흑인배우임을 고려하여 그가 인종 페티시에 쉽게 노출되고 체화되었음을 가늠하면서 의심의 여지 없이 다른 인종의 배우들 또한 인종주의적 은유로 대상화했던 것은 아닌가를 숙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해하기에는 어딘지 탐탁지 않다. 성적 뉘앙스를 강하게 환기시키는 은유의 표현들은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 문제제기를 받지만, 때로 은유의 가벼움은 농담처럼 생산되고 유통 또한 쉽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과 별개로 인종이 성적 페티시 대상으로 치부되어온 가운데 커뮤니티의 습속과 언어가 생산되고 문화와 담론들이 구축되는 상황에서, 일련의 논쟁은 어떻게 판을 키워갈 수 있을까. 인종이 페티시가 되고 정체성이 되는 현장 속에 이번 사안은 아시안 퀴어 섹스워커 당사자들 내부에도 얼마든지 이견과 논쟁이 따르리란 전망이 가능하다. 이들은 어떻게 언어를 만들어 발언력을 높일 수 있을까. 섹스를 둘러싼 미적-정치적 불화와 적대를 마주하며, 아시안 게이-퀴어 커뮤니티가 어떻게 자신의 협상력과 발언권을 키워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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