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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에이즈 감염인의 숨은 인권을 찾아주세요!

by 행성인 2009. 12. 30.

 

11월2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캠페인을 나가게 됐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기념하여 에이즈 문화제 및 서명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사실 다른 약속이 있었는데 펑크가 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참여하게 되었다. 커밍아웃 이후로 오랜만에 뵙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식구들과 청소년 친구들을 보니 반가웠다. 현장은 한창 준비 중이었고 오고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에이즈 감염인의 숨은 인권을 찾아주세요!’라는 하얀색 피켓과 다트 판이 눈길을 끌었다. 차가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똘똘 뭉쳐 캠페인 스타트를 끊었다.

 

나는 이곳에 세계 에이즈의 날에 대한 홍보와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서명 캠페인을 하러 왔다. 5월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캠페인 때와는 다르게 읽을거리를 나눠주기가 쉽지가 않았다. 날씨가 추워서였을까, 손을 내밀 때마다 사람들이 외면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작았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2010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 거리 캠페인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인데 이것 좀 읽어 봐 주세요!”

대학로에 피켓을 들고 다 큰 성인들이 아닌 청소년 친구들이 큰 목소리로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부탁하러 왔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아해했을 것이다. 때문에 사회에서 차별로 힘들어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었을 것이고, 이번 에이즈 문화제를 통해서 차별 받고 있는 HIV/AIDS 감염인 인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12월은 솔로들에게 아주 잔인한 달. 알콩달콩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휴도... 혼자라는 것이 더욱 도드라지는 12월 첫날부터 세계 에이즈의 날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해가 지나가고 새롭게 맞이하는 에이즈의 날과 에이즈 문화제로 다시 한 번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라는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된 것 같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서명해주세요’라는 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춰서는 이유에는 또 다른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트 게임. 마이크를 든 진행자의 맛깔 나는 입담 덕분에 게임 판은 쉴 세 없이 돌아갔다. 다트를 던져 경품을 받고, 서명까지 해주는 일석이조의 게임. 맨 입으로 서명을 해달라기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가 힘들었다. 그 경품에는 에이즈 감염과 성병을 막기 위한 콘돔과 차가운 바람도 이거 하나면 딱 이다 싶은 핫 팩! 그리고 달콤한 사탕, 이렇게 세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고, 게임에서 빠지지 않는 ‘꽝’은 경품 없이 서명을 해주는 것이다.

 

“게임 하시고, 콘돔도 받고 서명도 해주세요!”

라는 말에 어린 꼬마 친구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서명 때문이 아니라 콘돔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그 것 덕분에 서명 목록은 어느덧 반을 채워갔다.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보호 캠페인 때의 일이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대학로 한 바퀴를 돌아 ‘우리의 인권을 보호해주세요’라며 홍보를 하고 싶었지만 아웃팅 문제로 그러지 못했는데 이번 캠페인에서는 피켓을 들고 가만히 서있자니, 또 추운 날씨 때문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수도 적어져서 아무런 홍보가 되질 않을 것 같아 함께 들고 있던 친구와 한 바퀴 돌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역시 너무도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장소를 옮겨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왜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나싶더라니 공원답게 다들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빠르게 책상을 준비하고, 그 위에는 선물들과 서명서, 옆으로는 다트 게임을 준비하고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또 한 번 진행자의 입담 덕분에 공원 앞에서 진행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어린 꼬마들이 모였을 때 ‘에이즈는 이런 거 에요’라고 설명을 해주었고, 학생들이며 성인들이 모였을 때는 다트 게임과 함께 에이즈 문화제의 홍보와 서명을 부탁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대학로 근처 학교에서 학생들이 모두 몰려온 것처럼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정말 많았다. 공원 앞에서처럼 분명 ‘콘돔’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역시나 예상이 맞았는지 콘돔이며 핫 팩 등 선물이 모두 떨어졌다. 열렬한 참여율로 어느덧 서명 목록도 꽉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캠페인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두 가지 게임 중에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미로 게임은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O 또는 X로 에이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게임도 하는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트에게 밀리고 말았다. 피켓을 함께 들고 있던 친구와 나는 공원으로 들어오는 길 양쪽에 서서 공원 안에서 진행되고 있던 캠페인을 홍보했다.

 

2010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 거리 캠페인




“에이즈 감염인의 숨은 인권을 찾아주세요!”

추위에도 지지 않는 친구의 우렁찬 목소리. 반면, 나는 부끄러워서 찍소리도 못했다. 버스 창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다트 게임뿐만 아니라 우리도 서명 홍보에 대해서는 한 몫 챙긴 셈이다. 시간은 벌써 저녁 먹는 시간이 되 가고 있었고, 에이즈 문화제 서명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에이즈 캠페인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HIV’라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용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냥 'AIDS'가 아니라 통틀어 ‘HIV/AIDS'라는 것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날씨 탓을 하고 싶다. 여름이었더라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고가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보호 캠페인 때처럼 에이즈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더 알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열심히 하셨고요, 수고하셨습니다!!




무비스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