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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 에세이] 행성인의 문을 연 낯선 사람

by 행성인 2022. 10. 28.

수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제가 행성인의 오프라인 행사에 처음 참여했던 건 올해 6월이었습니다. 그땐 '활동가 지망생'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어요. 회원모임에서도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때는 활동가라는 이름에 지금보단 훨씬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아요. 제 성적지향과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으로 저를 이끌었다고 생각했고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한 몸 바칠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젊음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경기 남부에서 한 강 이북까지 편도 1시간 50분 거리를 오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제 열정에 비하면 그런 시간적 제약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어요. 이야기 마당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회원모임에서 활동가들의 강연을 듣는 것은 유익하고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친한 선배가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활동가라고 말했지만 '지망생'이라는 단어를 꼭 붙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활동가라고 칭할만한 어 떤 능력도 없기도 하고 지망생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풋풋한 초록빛의 느낌이 좋았으니까.

 

직접 상임활동가에게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만난 적이 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좀 들이받은 게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금방이라도 '밑에서 배우고 싶으니 조수로 받아달라'고 할 것처럼 찾아가서는 다소 과한 열정을 담은 자기PR을 했네요. 물론 그분께서는 적당히 찬물을 끼얹어 주셨습니다. "열정은 좋은데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보자" 라고 말이지요. 알바와 행성인 활동을 병행하며 나름의 계획을 알차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소 김이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그 이후에 활동에 대한 관심이 좀 식어서 그분의 우려가 매우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의 텐션을 길게 유지하지 못했던 거죠. '내 혈관 속에 날뛰는 뉴 웨이브, 내 거대한 패션' 이란 노래가사가 내 얘기인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웹진에 에세이를 한 편 게재했지만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마감에 쫓겨 급하게 썼던 아쉬움만 남아 있어요.

 

서울퀴어문화축제 이후에 단체방 알림은 꺼두고 간간이 올라오는 소식들만 확인하며 현생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초여름에 뵀던 상임활동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곧 후원주점을 여는데 스태프로 와서 일해줄 수 있냐고요. 후원주점에 대한 소식과 스태프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못 본 건 아니지만 행성인에 아는 분들이 많지도 않고 이런저런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도 아닌 데다 무엇보다 서울까지 가기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요, 딱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연락을 주셨는데 거절을 할 수 없으니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해서 저는 후원주점에 참여했고 일하기로 되어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켰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이전에 알던 분들과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집이 멀어서 일찍 일어나야 했던 아쉬움이 더 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자리가 생겼을 때 선뜻 제안해준 활동가분들의 관심 덕에 시간이 될 때마다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잡는 건 전적으로 제 몫이라고 생각했기에 놓칠 수는 없었어요. 후원주점 이후로 한 달 사이에 노동권팀 월례모임, 행성인 의무교육, 대구퀴어문화축제, 인천퀴어문화축제까지 참여했습니다. 의무교육에서 했던 상황극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LGBT용어가 너무 많아져서 피곤하다는 경력이 오래된 활동가와 그에 불쾌감을 느낀 신입 활동가의 갈등,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주제였는데 제 무심했던 생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좋은 견해를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구퀴어축제에서는 트럭 위에도 올라가 보았는데요, 정말 제 성향과 안 맞지만... 왠지 두 번 못 할 경험일 것 같아서 그냥 올라가 봤어요. 기분 좋았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깃발을 들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깃발을 든 것 자체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깃발을 듦으로써 진정으로 미래를 향해 가는 퀴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게 벌써 몇 년에 걸쳐서 묵은 소원이 되었네요. 보통 깃발은 단체에서 들어 올리는데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저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죠. 해서 부스에 계셨던 상임활동가분께 미리 요청을 드리고 인천의 행진에서 행성인 기수가 되었습니다.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너무 오래전부터 원했던 것이라 그런지 깃발이 나고 내가 깃발인 것처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걸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행성인 활동 1년 차가 흘러갔습니다. 올해는 아직 두 달 남았고 다른 행사도 더 남았지만 저는 이 시점에서 행동하는 성소수자로서 제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체크포인트에 도달했습니다. 1년 차는 새로운 만남과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방향을 잡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자기소개 시간에 '행성인의 뉴비'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할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활동가 지망생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는 활동가에 가까워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제게 어울리는 수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행성인을 찾아온 낯선 이의 마음가짐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동그랗게 뜬 눈', '쫑긋 세운 귀', '박수칠 손', '합을 맞춰 나아갈 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시간이 지나면 활동가로서의 경험과 지식도 갖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내내 마음속에 담아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아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인데요. 행성인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분들의 다양한 면을 보는데 빈말로라도 100%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개개인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 취향과 가치관, 다른 수많은 다양성을 저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전체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저는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제게 성소수자 운동이란 제가 그리는 젊음의 한 페이지임과 동시에 결혼이 하고 싶은 저 스스로도 무척이나 이루고 싶은 바람입니다. 재수, 삼수에 군대로 이어지는 긴 기다림을 넘어 마주한 곳이 행성인이고 저는 그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행성인의 많은 활동가분들과 함께 해서 영광입니다. 제 좌우명이 '젊은 그대, 밝은 미래를. 고개 들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