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 이야기

'운동이 밥 먹여 주냐?'

by 행성인 2022. 9. 30.

 

남웅(행성인 미디어TF)

 

 

 

 

'운동이 밥 먹여 주냐?'

 

활동하면서 가끔 마주하는 이 문장은 농담같지만 막상 듣고나면 은근히 바늘처럼 한구석을 찌른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이 당신을 먹여살리지는 않는다' 는 변형기출 문장으로 속이 살짝 긁히기도 했다.

 

이런 류의 고민은 성소수자에게 어느정도 익숙하다. 커밍아웃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의존해온 가족과 집단에서 단절되고 고립되는 상황을 맞을 때, 적어도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바꾸자고 메세지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 집회와 캠페인을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가는 곧장 대답하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읽어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은 운동을 통해 어떤 효능을 얻는가. 아니, 경제활동은 도외시하면서 운동에 매진하는 것은 아닌가. 대의와 타인의 삶을 위해 당신의 안전과 자원을 소모하는 것은 아닌가.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다. 투여한 역량에 비해 이렇다할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냉소의 문장은 힘을 얻는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는 데 동감하더라도 자립과 사회운동을 대치시키는데에는 저항감이 생긴다. 생계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은 운동을 사회적인 것으로만 국한하며 개인을 소외시켜온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공회전 시키는 것은 아닌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단체 입장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자고 주장하면서 개인의 안정과 안전은 소외시키지 않고 있는지 숙고하게 된다. 그럼에도 당신의 자립부터 챙기라는 메세지는 개인의 삶을 경제적으로만 설정해놓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삶의 최소한의 요소만을 단정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삐딱하게 살펴봐도 운동이 밥 먹여 주냐는 질문이 무뎌지는 건 아니지만. 

 

함께 운동을 만들어온 많은 동료들은 같은 질문에 직면해왔다. 개인의 지복을 위해 운동을 떠나는 이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은 생업을 하면서 시간과 자원을 쪼개 운동에 동참하고 후원한다. 또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변화의 감각을 익히고 힘을 얻어 제 일터 안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일상을 바꾸기도 한다. 거꾸로 자신의 직능을 발휘해 운동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동료들도 있다.

 

그 중에서 적지 않은 동료들은 생계보다 제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조직하는데 역량을 투여한다. 생계와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은 자신의 활동은 노동일 수 없는지, 활동의 보상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의 질문을 끊임없이 공동체에 던진다. 운동과 경제력, 운동과 생업 사이 저울은 매번 평형을 이루기 어렵다. 매순간 가치판단과 협상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많은 경우 한쪽으로 기울기 쉽고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에 대해 참고할 이야기를 김정희원님의 책 『공정 이후의 세계』에서 어느정도 얻을 수 있었다. 공정담론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책은 공정을 오독하는 태도가 배제하는 불평등과 위계를 지적한다. 협소하게 취사선택된 공정 담론은 경쟁의 체제를 본질화함으로써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를, 인정과 재분배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책 후반부에 저자는 '자기 돌봄'을 언급한다. 불평등과 위계 속에서 나를 채찍질하고 번아웃되는 상황이 너무도 익숙해진 사회에서 자기돌봄은 최소한 나의 안전을 살피는 기본적인 실천이다. 이는 공정담론에 갇혀 경쟁체제에 종속되는 사회뿐 아니라,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 내부에서도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참여하는 사회운동이 일상에 개입하고 어느정도 역량과 시간을 투여할 때, 나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놓아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는 '정의로운 조직'을 제안한다. 나를 돌볼 수 있기 위해 운동사회와 단체는 어떤 지원과 지지 프로세스를 가질 것인가. 적은 자원 안에서도 대의적 투쟁과 개인의 일상을 조율하고 판단할 여건을 마련하고, 함께 고민할 동료를 곁에 두는 것과 더불어 단체 안에서 성과를 배분하고 역할과 자원을 나눌 수 있는 구조를 계속해서 변화시켜나가는 활동은 조직이 변화하는데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운동이 밥먹여주냐'는 명제는 운동 단체와 주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계와 이념, 자립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를 손쉽게 분리한다. 이 심술궃은 문제를 어떻게 쪼개나갈 수 있을까? 자립에 있어 개인이 고유하게 부담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이해하면서도, 자립이 온전히 당신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감각을 키우기 위해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운동의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운동을 재생산하고 지속하기 위해 개인의 존엄과 경제적 생존을 연결하는 문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돌봄의 고민과 실천은 이미 운동 내부의 과제로 자리잡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