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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토론문] 성소수자 노동자의 직장내 괴롭힘 대응 사례와 노동조합의 역할

by 행성인 2022. 10. 28.
*편집자 주

지난 27일 행성인은 '일터 내 괴롭힘과 성소수자 노동권 토론회 - 성소수자, 나 답게 일할 권리!' 를 진행했습니다. 토론회는 일터의 성소수자가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욕구와 경험을 확인하기 위한 집담회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10월 웹진에는 토론회에 발표한 이호림 활동가의 발제문을 게재합니다. 차후 발제문과 토론문을 엮은 자료집을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제작 배포할 예정입니다.

 

 

엔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일터는 위계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괴롭힘과 성희롱도 끊이지 않는다. 그 공간에서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는 더 작게 들린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또 다른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축시킨다. 여기 대표적인 비정규직 사업장인 쿠팡에서 직장내 괴롭힘에 맞서 싸운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야기를 내보려고 한다.

 

 

 

코로나19가 알려준 로켓배송의 진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20205월 쿠팡물류센터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쿠팡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쿠팡의 자회사, 이하 쿠팡’)는 최초확진자의 대한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지 않고 일을 하도록 했다. 결국 150여명이 넘는 집단 감염자가 나왔고 그중에는 가족까지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대다수는 계약직 혹은 일용직으로 연령과 성별이 다양했다. 누구나 일할 수 있고 하루만 일해도 일당을 받을 수 있는 꿀 알바였다. 그러나 실상은 코로나19에 걸려 자가격리를 당해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피해노동자이 모여 쿠팡발 코로나19 피해노동자 모임을 만들고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쿠팡발 코로나19 피해노동자 지원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작은 코로나19 피해노동자 지원사업이었지만, 파면 팔수록 나오는 쿠팡물류센터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쿠팡에 사과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1년 반 동안 6명의 산재사망을 보았다. 그리고 202166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설립되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현장의 변화는 더디었다. 비정규직이 90% 이상인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은 1년 미만 또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쿠팡은 2021년 기준 65772명을 고용했고 언론을 통해 여성 및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고 홍보했지만, 고용불안과 직장내 괴롭힘성희롱이 난무하는 질 낮은 일자리였다.

 

나는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조직국장으로 쿠팡물류센터지회를 담당하고 있었다. 적어도 주 1~2회를 경기지역에 있는 물류센터를 찾아서 노동조합가입 선전전을 펼쳤다. 그러면서 성소수자노동자들을 여러명 만났다. 셔틀버스를 타야하는 상황에서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내가 만난 성소수자들은 노조 가입을 꺼렸다. 자신이 드러날 수 있다는 걱정때문이었다. 당장 노조가입이 어렵다면 익명으로 가입하는 네이버 밴드라도 가입하라고 안내했다. 혹시나 일하다 불이익을 당하거나 다치면 꼭 노동조합으로 연락을 달라는 말도 남겼다.

 

 

쿠팡에서 쏟아진 직장내 괴롭힘성희롱, 성소수자노동자의 상담

 

쿠팡에 노조가 생겼다는 소식이 퍼졌지만, 불안정한 고용조건과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에 조합원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 삼당과 신고는 끊이지 않았고 법적대응을 하고 싶다는 조합원도 나왔다. 2021년 겨울, 창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A씨는 2110월에 쿠팡물류센터에 입사하여 2주 만에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고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A씨가 말하는 사건의 요지를 이러했다.

 

'A씨는 입사 초부터 관리자 B씨에게 외모비하 등 폭언을 당했고 회사에 직장내괴롭힘 사실을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없었음. 본사에 사건을 신고하고 나서야 조사가 진행되었고 조사과정에서 가해자와 단 둘이 면담을 하게 되었음.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는줄 알았던 면담자리에서 A씨는 B씨에게 내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다. 내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많다는 말을 들었고 바로 항의하였음. A씨는 2차 피해를 주장했지만 회사는 피해자 보호조치도 2차 피해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음.' 내부 조사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일부 인정됐지만 가해자는 서면 경고에 그쳤다.

 

지회에서는 당시 조직내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인 나에게 피해자대리인 역할을 요청했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성소수자 차별에 대응한 경험이 적었다. 성소수자조합원의 입장을 노동조합에 전달하는 과정부터 어려웠다.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아웃팅이 주는 위화감을 설명했고, 직장내괴롭힘 2차 피해라고 규정해 산재신청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요구는 회사의 사과와 피해자 보호조치였다. 그러기 위해선 직장내괴롭힘 입증이 필요했다.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원에 피해자 병원 기록을 보내 분석을 요청했지만 장시간 진료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변화를 입증하기는 어려웠다. 피해자는 쿠팡 입사 전부터 불안정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노조에서는 쿠팡에 A씨의 조합가입 사실과 요구안을 공문으로 보냈다. A씨가 매일같이 전화해도 묵묵부답이던 쿠팡은 노조 공문을 받고 나서야 유급휴가 제안을 했다. 노조에서는 발 빠르게 기자회견과 창원지역 연대체 구성을 준비하였다. 22110일 창원 고용노동부 앞에서 직장내괴롭힘 진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지역에 조합원이 없었던 지회는 지역연대체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신 다른 센터 직장내 괴롭힘성희롱 사례와 함께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 앞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52일에 하였다. 쿠팡 인천4센터, 고양센터, 동탄센터, 안성센터, 장지센터 등에서도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이 발생했다.

 

 

직장내괴롭힘 대응과 산재 신청과정에서의 어려움

 

기자회견, 언론 인터뷰를 하며 A씨는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직장내괴롭힘으로 인한 산재신청도 준비하였다. 그러나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은 419진정인의 직장 내 괴롭힘 등 진정에 대해 조사한 결과, 쿠팡이 해당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조사 결과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창원지청은 쿠팡의 후속 조치도 적정했다고 보고 해당 진정을 행정 종결(위반 없음) 처분 내렸다. 입증조건이 맞지 않아 산재도 불승인되었다. 노동조합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직장내괴롭힘 가해자/피해자의 일대일 면담과정에서 나온 아웃팅 발언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위계적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직장내 괴롭힘성희롱 처리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와 인식의 공백을 확인했다. 쿠팡이 법적의무교육으로 실시하는 성희롱예방교육에는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모기업이 쿠팡 USA에는 국제기업 답게 아웃팅등 성소수자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내용은 있지만, 시청각자료만으로 현장노동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쿠팡은 회사나 그 누구도 A씨의 성정체성에 대해 공개한 바 없다고 반박했지만 아웃팅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기업은 성소수자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거짓말

 

쿠팡을 비롯한 기업들은 말한다 우리는 성소수자 차별을 한 적이 없다고그러나 그들은 채용부터 인사관리, 복리후생 제도, 근무환경에서 끊임없이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성소수자노동자들이 드러내지 못해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있다.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국내 기업은 가부장적 조직문화가 지배적이다. 그 속에서 성소수자는 존재 자체로 기업문화에 반하는 존재로 지탄받아 낙인찍혀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쉽다. 성소수자 노동자는 본인의 성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거나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돼 단순한 항의조차 못한다.

 

물론 성소수자노동자가 겪는 차별이 법적 직장내 괴롭힘성희롱 정황과 항상 동일시되진 않는다. 일터에는 다양한 차별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직장내 괴롭힘성희롱사건에서도 피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성소수자 차별은 법적 매뉴얼에도 회사 규정에도 심지어 노동조합이 만든 단체협약에도 제대로 담겨있지 않다. 공공운수노조 모범단협안에는 차별금지 조항이 있지만 적용한 사업장이 많지 않다.

 

직장내 괴롭힘은 일터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다.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는 것은 정부나 기업이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제 직장내괴롭힘 제도와 기업의 처리절차에 성소수자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없도록 점검해야 할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