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2년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감소하여 OECD국가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30일 레즈비언 김규진, 김세연 부부가 딸 라니(태명)를 출산했다는 뉴스를 보고 기뻤습니다. 퀴어가족으로서 라니(태명)가 태어남은 참으로 경사 중에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구 감소로 머리 아픈 대한민국은 이들 레즈비언 모모(母母)의 출산을 축하하고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엄마와 아기는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국가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를 한 가지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동성결혼 법제화는 동성커플 배우자의 권리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의 육아에도 매우 절박하다는 사실을요. 도대체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흘러야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가족의 절박함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감기와 설사
갑자기 아이가 콧물을 흘리고 미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종합 감기약을 먹였더니 부작용인지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녀석이 몇 일간 설사로 인해 응아 부위가 헐어서 쓰라리자 울고 보채기를 반복했습니다. 다행이 고열로 높아지지 않았고 설사도 멈췄습니다.
남편 왈, 어린 시절 이런 피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머니는 약초 가루를 헐은 피부에 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웃들도 이 약초나 베이비 파우더를 뿌려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남편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우선 아픈 부위를 물과 비누로 깨끗이 씻기고 물기를 말려 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베이비 파우더는 아이의 폐 건강에 유해하다는 보고가 있었고, 약초도 어떤 성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찰스 아빠는 자신만의 신치료법(?)으로 전분 가루를 뿌려주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의 스트레스가 동반 상승해서 부모의 갈등을 넘어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부 갈등이 생겼을 때 스스로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림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찌해야쓰까나? 앞으로 이런 갑론을박이 때때로 터질 것만 같으니.
길 고양이 삼순이-아나
예전 수리가오에 살 때 고양이를 처음으로 키웠습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우리 마을에서 많이 나오는 코코넛을 따서 이름을 지었지요. 이곳 발렌시아로 이사를 오면서 데려올 수 없어 지금은 조카가 키우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 한 녀석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경계심이 너무도 많아 우리 가족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고양이 밥을 주었는데 맛이 있었는지 요즘은 매일 같이 우리 집에 소풍 오듯이 마실을 오갔습니다. 시내 나가는 길에 내가 이 녀석을 위한 밥그릇을 사와 밥을 담아 놓았더니 점차 우리 집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털 색깔이 흰색, 검정색 그리고 연갈색을 갖고 있는 이 녀석에게 “삼순이-아나”라고 불렀습니다(‘아나’란 말은 전라도 말로 물건을 주면서 받으라는 의미). “삼순아-아나”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고 나에게 다가와서 내 다리에 자신의 몸을 비벼 댑니다.
하루는 (세발 오토바이) 따릉이에 벌러덩 누워 낮잠을 자고 있더라구요. 그리고는 마침내 우리 집 안 거실까지 들어와 놀다가 가더니, 어제 밤에는 안방 침대 밑에서 잠을 잤습니다. 삼순이-아나야, 자주 놀러 오려무나.
도토리 키재기
외국에 살면서 겪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물품을 구매하는 일 입니다. 라면과 국수 그리고 고추장과 된장 같은 식재료는 한국 마트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 서점은 마닐라와 세부 같은 대도시에만 있어 책을 구입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가 말을 조금씩 하면서 영어 알파벳과 숫자 포스터를 구입하려고 시내를 다 뒤졌지만 끝내 사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또한 마트나 문구점에서 아이 키재기 스티커를 파는 곳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그려보았습니다.
저는 나의 키 175cm 정도까지 자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거실 벽에 센티미터를 180cm까지 줄자를 그리고 알록달록 색칠을 했습니다. 물론 이 다음에 숏다리가 되어도 괜찮고 말고요.
아이의 건강관리카드를 꺼내 키와 몸무게를 줄자 옆에 기록했습니다. 인보는 병원에서 몸무게 2.5kg, 키 51cm로 아주 조막만하게 태어났어요. 6개월이 되자 7.2kg/66cm가 되었고 17개월에는 11.9kg/85cm로 컸습니다. 그리고 두 살 하고도 3개월이 되니 13.6kg/94cm으로 쑥쑥 자라났더라구요. 병아리처럼 우리 품에 안겨 삐약삐약 하더니 정말 많이 컸어요.
아이의 성장을 출생 시와 비교해보니 키는 두배 가까이 컸고 몸무게는 5배가 늘었더라구요. 요즘 이 녀석을 안아보면 묵직합니다. 이 녀석의 양팔 길이도 넓어져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을 잡아채는데 선수가 되었습니다. 식탁에 놓았던 아빠의 약통을 더 놓은 곳으로 옮겨 놓아야 했습니다. 예전에 아빠의 약을 다행히도 하루 분만 까먹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종종 아이 키를 키우기 위한 영양제 광고를 봅니다. 이곳 필리핀에서도 이런 광고를 많이 하고 부모들이 많이 먹입니다. 남편도 이웃 사촌들이 아이 영양제를 먹이는데 (그들이 권하기도 하고) 우리도 먹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양제의 효과성은 검증된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골고루 먹이기, 신체적 운동을 통해 어린이 비만을 예방하고 커나가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아직까지 먹이지 않고 있습니다.
필리핀 음식 문화는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은 걸림돌이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달고 짜게 먹습니다. 그리고 채식 보다는 육식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야채 값이 무척 비싸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은 더욱더 야채를 섭취하기가 어렵지요.
언젠가 한번은 이른 아침부터 온 가족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을 먹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치킨에 밥을 곁들여 먹는 치밥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치밥에 먹고, 달디 단 콜라와 사이다는 빠질 수 없는 메뉴 입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우리 집의 규칙은 이런 음식을 오직 특별한 날이나 이웃의 초대를 받았을 때로 먹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나는 한달에 한번 꼴로 김치를 담는데 김치담은날은 보쌈이나 삼겹살을 굽습니다. 그리고 갈비찜과 같은 고기 요리를 할 때도 콜라를 준비합니다. 모국에서 먹었던 삼겹살에 콜라 한잔, 넘 맛있거든요. 아 그런데 요즘은 (남편이 속상하게 만들 때마다 변신하는) 큰아들이 철이 들었을까나, 콜라가 싫다고 손사래를 치네요. 해가 서쪽에서 뜰 일 입니다.
이제 모국은 가을로 접어들었네요. 회원님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여름에 지친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기를, 그리고 추석 명절 즐겁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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