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퀴어가 어둠을 헤치고”라는 슬로건을 내건 16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그 시작을 알린 2월 17일 오전 10시에 진행되었던 트랜스젠더 연구 발표 현장 스케치를 적어본다.
첫 발표 <인식적 폭력: 반트랜스 폭력을 사유하는 대항 역사>는 여성, 젠더, 섹슈얼리티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김가은 님이 맡았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 국가에서는 그동안 반트랜스 폭력 분석의 초점을 주로 물리적 폭력에 맞췄다면 한국 사회의 트랜스젠더가 겪는 현실 속 폭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밝히며 "인식적 폭력"이라는 이론적 틀을 가져왔다. 이를 숙명여대 트랜스 여성 입학 포기 사건과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건에 적용하여 분석을 했다.
지식 생산과 전파 과정에서 행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가리키는 인식적 폭력이라는 개념이 한국 트랜스젠더의 현실에서 중요한 이유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지워버리려는 혐오 논리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위협받는 “생물학적 여성 범주”에 대한 보호를 주장하는 “인간은 비둘기가 될 수 없다,”와 “여성은 여성이다”와 같은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 계열의 논리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고 혐오 논리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침식되는 경험을 겪게 한다.
토론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의 루인 님이 맡았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트랜스젠더퀴어의 몸이 사실 이미 혐오 논리를 통해 형상화된 몸은 아닐지라는 문제제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트랜스젠더퀴어의 몸을 특정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방식은 - 예컨대 충분히 “여성답지 못한” 트랜스 여성을 비둘기로 상징되는 “아름답지 못한 비인간”으로 상정하는 것- 혐오의 전략으로 활용되어 더 다양한 형태의 트랜스젠더퀴어의 모습을 그릴 수 없게 하고 그런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미디어에서 과대표되는 트랜스 여성들이 과하게 “여성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려 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해낸다는 혐오논리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시스젠더 여성도 역시 매일매일 여성성을 체현하고 여성적임의 고착화에 기여하는데 왜 그 화살이 항상 트랜스여성에게만 향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서영님의 토론도 공감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사회가 기대하는 나의 지정 젠더 이미지에 휩쓸리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정상규범을 재생산해내는 구조와 규범적이지 않은 몸을 비정상적이라고 차별하는 다수의 개인들이다. 직장에서 화장하지 않는 모 시스젠더 여성에게는 눈치를 주면서도 화장을 “과하게” 하는 트랜스 여성을 비난하는 현실이 불편하다.
다음으로 <공중화장실의 젠더 생산: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사회학을 전공하는 이서영님의 발표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현재 트랜스젠더 개인이 일상적으로 불편을 마주하는 지점인 젠더중립화장실, 또는 모두의 화장실 부재 논의와 맞닿아 있는 연구라 매우 중요하고 시의성 있는 내용을 다뤘다. 특히 시스젠더 여성의 성범죄 위협이라는 명목 하에 트랜스젠더퀴어의 배뇨권이 배척되는 식의 주장을 화장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재현되는 시스젠더중심성, 이성애중심성, 그리고 남성중심성과 엮어서 분석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화장실을 둘러싼 논쟁에서 성별 이분법으로 분류되지 않는 퀴어한 몸은 곧 “위험하거나 불결한” 것으로 의미화되고 안전과 프라이버시의 문제를 시스젠더와 이성애자에게만 한정하게 된다. 이러한 “지배적 안전서사” 속에서 남성의 이성애적 성욕은 분출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여자화장실 이용자의 몸은 그 욕망에 대상화되는 몸으로 이해된다. 성범죄로부터 지켜져야 할 안전한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생각되는 여자화장실에는 이런 서사가 숨어 있다. 이 배타적인 안전성의 감각은 나아가 동성애적 성욕 역시 비가시화하며 여성을 성적(으로 위협적인) 주체로 여기지 않는 인식까지 가져온다.
최근 성별인정법안 관련 뉴스 기사와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은 여전히 트랜스젠더를 공중화장실, 공중목욕탕 등 (특히 여성) 공간의 잠재적 침입자이자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성범죄 예방을 명목으로 트랜스 혐오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공중 화장실에서 성범죄에 대한 “여성의 불안”은 무엇일까? 그 여성은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인가? 공중 화장실에서 성별 이분법적 분리 유지는 성폭력 예방에 기여하는가? 공중 화장실은 매순간 젠더를 수행해야 하고 배설과 섹슈얼리티가 복잡하게 얽힌 공간이다. 인간의 형태를 한 “남성” 아이콘, 치마를 입은 “여성” 아이콘, “잘못된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확인하고 고민없이 발을 내딛는 사람들과 마려움을 참거나 “패싱”되기 위한 불안감을 안고 발을 내딛는 사람들. 이 젠더화된 공간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언제까지 숨어들기를 전략으로 삼아야 할지.
해당 토론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조수미 님이 맡았다. 트랜스젠더의 직접 경험이 담겨 있다는 점과 차별적 경험과 더불어 행위자의 전략까지 다룬 점을 연구의 좋았던 점으로 꼽은 말씀이 공감되었다. 또한 시스젠더 여성들이 두려움이나 수치심 같은 감각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제시해준 이야기도 주변 페미니스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론적으로는 트랜스젠더의 배뇨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는 원인을 개인의 혐오의식으로만 환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일반 시민들이 겪는 불편” 때문에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은 언제까지 침해당해야 할까.
이후 <트랜스 의료 담론이 만들어내는 고통과 행복 서사>를 제목으로 여성학협동과정을 전공하는 윤세진 님의 발표가 이어졌다. 대중적인 트랜스 서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던 “잘못된 몸” 서사는 지정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젠더 사이 느껴지는 신체적 위화감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이는 트랜스의 경험을 “생식기 중심의 본질주의”로 환원한다는 비판도 받아왔지만, 의료 사법 체계 내에서 의료적 조치와 정체성 설명을 위해 꾸준히 사용해왔다. 의료적 조치와 지원을 원하는 트랜스젠더도 분명 존재하고 그들에게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사회 의제이다. 그러나 트랜스 의료 담론은 의료적 조치 이전의 트랜스젠더의 상태를 고통의 상태, 조치 이후의 상태를 행복과 치유의 상태로 상정하여 고통을 내재화하고 트랜스젠더 삶의 경험을 축소할 위험이 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고통에서 행복으로의 단편적 전환점으로 설명하는 “잘못된 몸” 서사를 넘어 트랜스 건강은 젠더 위계와 구조적 폭력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토론은 보건학 전공 주승섭 님이 맡았다. 발제와 관련지어 성별 위화감을 고통으로 명명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 위화감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 정말로 결핍의 감정인지, 사회에 의해 결핍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토론이 인상 깊었다. 불행은 트랜스젠더의 삶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런 불행을 생산해내는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관점은 중요하다. 더불어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회복탄력성과 그들에게 힘이 되는 부분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트랜스 담론 속 고통과 행복 서사 관련 여러 연구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맥락에 맞춘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말에도 동감했다.
이후 플로어에서 질문을 받아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퀴어 내지 트랜스젠더 이론은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지식이 생산되어 왔는데 이를 한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한국을 주변화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연구자의 꿈을 가지면서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던 의제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퀴어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모국어로 표현될 수 없는 일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봤을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루인 님의 답변은 생각 외라서 기억에 남는다. 루인 님은 우리는 지식생산의 지역성과 위계에 대해 언제나 고민할 수 밖에 없지만 동시에 퀴어 이론을 비롯한 많은 이론과 정보가 긴 역사 속에서 혼종된 존재로서 구성된 시간이 길기 때문에 서구 이론과 한국의 사건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 갇히게 된다면 오히려 더 연구에 한계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서구권의 퀴어 이론과 한국의 퀴어 이슈에 대해 고민해본 연륜이 묻어나는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맥락이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받아서는 안되겠지만 이미 존재하는 퀴어 이론의 맥락을 배척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테니.
2시간을 조금 넘어서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발표 중간중간에 계속 새로운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추가로 뒤에 의자를 여러 개 놓아야 할 정도로 세션을 듣는 사람들이 많았다. 트랜스젠더 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서 매우 반가운 심정이었다. 방대한 양의 연구를 20분 발표로 축약하는데 어려움이 컸을 거라 예상되고 이를 더 선택적으로 요약하는 과정에서 이 글에서 포괄적인 연구의 쟁점 쟁점들을 적확히 짚어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트랜스 연구들의 현황을 알 수 있어서 중요한 기회였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트랜스 운동권에도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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