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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밀크Milk>(2008)

by 행성인 2010. 3. 29.

 - 하비밀크의 시간들, 혹은 댄 화이트의 부재한 시간들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으로 불렸던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하비밀크의 일대기는 이미 오래전에 롭 엡스타인 감독의 <하비밀크의 시간들>(1984)이라는 뛰어난 다큐멘터리로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 영상미에 몰두하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굳이 자신의 행보를 잠시 철회하면서까지 밀크의 삶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억압받던 동성애자들이 어떻게 승리를 쟁취했는가’라는 물음 주변을 맴도는 독해로부터 탈주하고자 한다. 즉 억압받는 소수자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려는 의도의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동성애자 인권 증진의 역사에 중요한 한 지점을 기록물로 남겨 그들만을 위한 향수 영화로 소비되기를 거부한다. 하비 밀크 역시 게이들의 인권 증진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이라는 단편적인 면에 국한시킬 수 없다. 나는 영화가 ‘동성애’라는 코드를 넘어 동시대에 호소하는 대안적 시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영화 속 게이들의 정치적 역량에 주목하자. 밀크가 게이들에게 부여한 첫 번째 권력은 소비자로서의 권력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반동성애적인 맥주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적인 불매 운동은 트럭회사가 게이 직원을 모집하는 흡족한 결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친동성애적인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막강한 지지 세력으로서의 게이들에 대한 잠재력을 일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견지해야할 적극적 자세란 무엇인가를 배운다.

 

밀크, Milk, 2008 구스 반 산트 감독, 스틸컷 _ 씨네21



또한 영화는 게이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하비 밀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연인 잭이 자살한 것도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비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등한시한 밀크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료 시의원인 댄 화이트가 밀크를 암살한 것도 게이에 대한 혐오 때문이 아니라 밀크가 가진, 월등한 정치적 능력과 대중적 지지에 대한 질투와 그로 인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밀크의 죽음은 조금씩 다층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광신적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펼치는 아나타는 뉴스클립을 이용하여 실제 인물 그대로 재현된 반면에, 조쉬 브롤린이 분한 댄 화이트가 보여주는 미세한 감정과 행동의 변화는 다소 몽환적으로 연출된다. 모두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의 연기에 감탄하지만, 조쉬 브롤린의 연기 역시 그에 버금간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적어도 영화 안에서만큼은 밀크가 다수의 지지를 받는 승자이고 댄 화이트는 가족 울타리의 변주 안에 갇혀 사는 소수자이다. 밀크가 화이트는 우리와 같다고 말하며 그에게 연민을 내비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소수자성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밀크, Milk, 2008 구스 반 산트 감독, 스틸컷 _ 씨네21




결국 밀크가 화이트에게 살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소수자성을 제대로 감싸 주지 못한 채 앞으로만 질주했기 때문이다. 밀크에게 기계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 옛 연인 스콧의 경고 아닌 경고는 암시적이었다.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들은 다수성과 소수성의 무한한 자리바꿈을 하며 존재한다. 우리가 화이트의 ‘부재한’ 시간들에 주목해야할 연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픽션이라는 재현양식으로 사건을 재전유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도 이곳에서 드러난다.

 
너무나 정치적인 게이들과 하비 밀크,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댄 화이트 간의 대립은 동성애자를 늘 피해자로 응시해 온 시각을 거두면서, 동시에 늘 사회의 주류로 군림해 온 이성애자들의 피해의식을 환기시킨다. 이렇듯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역사 속의 성 소수자들을 재조명하며 그들에게서 대안적 가치관을 발굴해내려는 영화들이 줄지어 제작되었다.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2009), 리처드 렉스톤 감독의 <잉글리쉬맨 인 뉴욕An Englishman In New York>(2009), 존 레쿼와 글렌 피카라 감독의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I Love You Phillip Morris>(2009) 등의 전기 영화들이 그 결과물들이다. 앞으로 이런 영화들이 국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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