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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by 행성인 2025. 1. 19.

 

지오

 

“다른 모든 죄가 파생되는 두 가지 주된 인간적인 죄가 있다. 조급함과 나태함이다. 그들은 조급함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나태함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주된 죄 하나는 조급함일 것이다. 그들은 조급함때문에 추방되었고 조급함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입니다. 요즘 자주 떠오르는 말이에요. 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조급함은 일을 그르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때를 맞추는 일, 지금 운동에도 중요할 것 같아요.

 

기대와 바람이 불확실한 미래를 잠식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추스러야겠습니다. 이번 연휴는 정말 좋은 타이밍인 것 같기도 해요. 내란 사태이후 두 달 가까이 달려왔으니 쉼표를 찍어줄 때도 된 듯합니다. 

 

저는 이번 연휴에 일본에 갑니다. 첫 일본여행인데요. 지금 여행을 가도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니 설렘이 좀 더 크네요. 비우는 과정도 일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믿고 싶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2025년 설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연휴가 지나면 2월이 될텐데요. 윤석열도 퇴진시키고 ‘나중에’도 끝내는 투쟁을 또 힘차게 만들어 가보아요. 새해 복도 함께 쟁취합시다!

 

(일상을 챙기는 일이 중요하다 하면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란 인사가 어쩐지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즈음에 누군가 쟁취라는 단어를 붙여 쓴 걸 보았어요. 그제야 좀 맞춤맞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따라 써보았어요. 쟁취할 것 많은 사람들이 쟁취하며 사는 2025년을 바라면서요)




오소리

 

매년 1월은 여러모로 바쁘게 보냅니다. 행성인 활동으로는, 2월 총회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올 한해 계획을 세웁니다. 평가와 계획이라는 게 단체차원의 것뿐만 아니라 운영위, 각 국, 각 팀 또한 개별적으로 진행해야하다보니 참 정신이 없지요. 거기다 2024년 결산과 2025년 예산까지 신경써야 하는 사무국장으로서는 1월이 31일인게 그저 야속하기만 하죠.

 

그런데 안그래도 바쁜 1월을 윤석열이 더욱 바쁘게 해주네요… 매주 수요일, 토요일마다 있는 집회를 준비하고 깃발을 들고 나가면서도 단체 일을 하다보니 정말 정신없이 바쁘네요 😵 

 

게다가 1월은 개인적으로도 신경쓸 게 많은 달입니다. 일단 기념일이 많아요. 눈코뜰새없이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챙길 건 챙기고 있습니다. 1월 6일은 저희 부부의 12주년 기념일이었는데요. 윤석열 체포 촉구 긴급 행동이 한창이었던 때였죠. 그래서 저희는 한강진으로 같이 가서 집회 데이트를 즐겼답니다. 😁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24일은 남편의 생일인데요. 오늘은 그래도 연차를 쓰고 낮에는 데이트를 즐겼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술 한잔 하며 틈틈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어쩌겠어요. 바쁜 와중에도 일상은 지키면서 살아가야지요. 

 

그나마 이제 설 연휴라 한숨 돌릴 것 같아요. 물론 설 연휴가 끝나고 복귀하면 할 일이 잔뜩 쌓여있겠지만… 쉴 땐 쉬어야지요. 여러분도 여러모로 힘들고 지친 12월~1월을 보내셨을텐데, 설 연휴 동안은 평온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연말, 관동팔경 제1루 죽서루에서. 좋은 기운 받아가세요~!!

 




호림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아주 긴 시간을 통과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 시간이 통으로 삭제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오랜만에 앉아보는 사무실 책상이 낯설 지경이다. 윤석열은 구속되었지만 비일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중의 밀도 높은 경험은 아직 소화되지 못한 채 쌓이고만 있다. 

 

 

 

남웅

 

애리에게, 

 

한강진에서 공식적으로 열린 마지막 집회가 끝날 즈음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나왔어. 1월 6일이었다. 사람들이 3박 4일동안 은박단열비닐을 뒤집어쓰고 노상에서 밤을 샌다는 이야기와 뉴스를 보다가 새벽 4시 언저리에 네 소식을 접했지. 아프지 않았다면 같이 이 자리에 있지는 못해도 많이 기뻐했을 거야.

 

집회가 끝나고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를 하고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만날일 없던 사람들과 어색한 안부를 나눴다. 명색이 너도 행성인 회원이었으니 단체 화환을 둬야하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어. 크라잉넛 이름이 크게 쓰인 화환 옆에 행성인 이름이 나란히 놓이면 근사하겠다고 그림을 그렸지만, CMS 일시정지 햇수를 보고 그게 다 무슨소용인가 싶었어. 막상 세어보니 네가 아팠던 시간이었고. 

 

집에 돌아와서 너랑 같이 남긴 기록들을 찾았어. 20년이 넘도록 알고 만나온 드문 인맥이었다.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커밍아웃을 여기저기 하지도 않던 시절을 지나왔어. 어디서 내 정체성을 알게되면 자유롭게 산다느니, 쓸쓸하겠다느니 하는 귀찮은 반응들, 명색이 미학을 배운다는 사람들은 첫 술자리부터 나더러 남자좋아하는거 아니냐는 책임도 안 질 쓸데 없는 질문을 뭘그렇게 웃으면서 했는지 모르겠다. 세련되지 못한 나는 그런 거 뭐하러 묻냐고 되묻거나 침묵으로 응했어. 너야말로 언제든 눈치챘을 건데, 별다른 내색보다도 동인련이라는 데가 대체 뭐하는 데인지 궁금해했다. 커밍아웃보다 먼저 나온 가입제안이 당황스러웠을거야. 그역시 세련과는 거리가 멀었다. 회비는 부담스럽다면서도 기꺼이 가입해서 조금씩 활동에 참여하는 널 보면서 가진 마음은 고마움이었어. 

 

4년 전, 큰 이식수술을 앞둔 얘기와 함께 병상 셀카를 받았다. 그전까지 아프다는 얘길 들으면 나도 아프다는 답으로 넘어갔는데, 그게 다 무색하고 실없었다. 호스를 코에 연결한 사진을 전하면서 에크모를 달았다는 얘기를 할때서야 얘가 지금 무슨얘길 하는건가 철렁했어. 아트선재센터에서 대만 퀴어 작가 천제런의 전시를 보고 있던 차였다. 마지막 카톡을 나눈 풍경이 선명하게 기억나. 잔인한 청나라 고문 장면이나, 경제위기 이후 노동자들이 제 신체를 돈에 견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트라우마적인 역사의 기록을 영상으로 재현하면서도 그 위기를 기어이 자신들의 몸으로 감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전시였어.  

 

수술 끝나고 한동안 많이 아팠던 것 같아. 언니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네 상황을 공유해준 덕에 안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어. 재활하고 다시 아프다가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안도했다. 코로나가 닥친 이후에는 마음으로 회복을 바랐지.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언니분은 내 이름을 듣고 아주 반가워했는데, 대체 무슨 얘길 그렇게 했던거니… 

 

발인한 날 저녁에는 한파가 닥쳤고, 저녁에 을지로 한빛광장에서 집회가 열렸어.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혼자 흥얼거린 멜로디가 크라잉넛의 '명동콜링'이라는 걸 알았어. 찾아보니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크라잉넛을 좋아했다고...넌 반가워했을까? 그사람은 재수시절에 드럭을 종종 갔다는 이야기를 하더군. 연주실력이 형편없는 펑크밴드가 시간이 지나면서 재주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예의 세련된 척 득의양양한 태도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끝까지 보기 쉽지 않지만, 누구라도 가서 즐기는 것이 클럽의 미덕이니까. 

 

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무기 프로젝트’의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를 보러 갔다. 트랜스 업소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이들의 생애를 기존의 기록이나 연구보다 당사자들을 배우삼아 무대에 올리는 방식의 공연이었어. 그저 나이 들어가는 이태원 트랜스젠더라는 뻔한 키워드로 조명하기보다도 오랫동안 사람을 대해온 노동자로, 처세와 기예를 겸비한 이에 대한 존중이 보였다. 수십 년동안 살아온 장소와 노동과 만나온 사람들이 당신들의 몸과 언어를 만들고 정체성을 열어가는 과정에 한데 얽혀왔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밤의 이태원 업소가 어떻게 대중예술의 무대와 연결 되는지, 당시 손님들은 어떻게 지금의 관객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도 그려보았지. 밝은 데서 끼를 발산하는 연예인과 어둠 속의 기생은 어떤 친밀함이 있었을까. 곱게 차려입고 앞자리에 앉아 무대를 보며 들썩이던 가수 김ㅇㅇ을 무대와 번갈아 보면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밤의 이태원이 같은 시간 한강진으로 연결되는 장면들을 생각했어. 용산은 젠더땅이고, 드레스나 키세스나 반짝이는 건 마찬가지니까. 배우들은 이 시국에 우리만 웃는 공연이 미안하다고 했어. 무대와 광장은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답을 마음으로 해드렸지. 트랜스젠더들이 여느때보다 많았다던 한강진 집회에는 또 트랜스고 퀴어냐는 야유가 있었다고 해. 너라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화내지 않았을까. 무대의 선배들은 더 꼬장꼬장하고 활기차게 욕했을 거야.

 

배우들은 오래 전 함께 일했고 이제 세상에 없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읊었어. 그 장면을 위해 이 공연이 있었다는 생각을 마음대로 했다. 그중에 한 사람, 희진씨는 그렇게나 후배들이랑 업소 직원들을 괴롭히고 못되게 굴었다고 해. 지금은 이요나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그사람의 생애 후반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더라. 너라면 탈동성애랑 반동성애가 뭐가 다른가를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못된 언니’도 기억하고 마는 게 공동체의 아카이브는 아닐까 생각했어. 

 

너랑은 나이먹어도 서로 예쁘다는 빈말이라도 하고 지낼 것 같았는데, 아쉬워도 하늘에서 곱게 늙어가는 나를 봐주렴. 우리보다 젊은 친구들은 이시국 집회에서 행진 플레이리스트를 고를때 크라잉넛보다 유다빈밴드의 '좋지 아니한가' 를 찾더라. 네게는 천인공노할 소식이지만 나는 그옆에서 박장대소 했겠지, 차라리 좋은 노래 누가 부르든 어떻냐고 으쓱하고 말았을까. 펑크걸 치고 유난을 떨지 않는 애라고 펑크샵 주인이 얘기했어. 항상 어디를 바쁘게 돌아다니더라는 건 네 언니의 기억이고. 22년 전 농활에 같이 간 누군가는 네가 조용한데 붙임성 좋고 호기심 많았다고 했지. 크라잉넛 박윤식은 공연장에 네 쾌차를 바라면서 양귀비를 불러주고, 한경록은 따로 영상까지 남기면서 네 생일 축하 노랠 해줬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몇줄의 문장으로 네 기억을 나누는 일이다. 장지가 있으면 좋겠지만, 가족들은 네 유골을 수정으로 만들어 보관한다고 들었어. 처음엔 마냥 신기했는데, 죽음을 사유화하는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어쩌겠니, 반짝였던 너를 마음에 품어야지. 다행히 행성인에는 함께 했던 짧은 경험 덕분에 너를 기억하는 동료들이 있어. 4월에는 네 사진도 추모 테이블에 놓을까 해. 17년 광장에서처럼, 이번에도 우리는 같이 싸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