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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신년 기획] 트젠/논바/젠퀴가 말한다

by 행성인 2025. 1. 19.

 

정리: 미디어TF

참여: 하루, 소하, 보니아, 이안, 라스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젠더퀴어는 오래전부터 성별이분법적인 제도와 공간으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몸과 정체성을 갖고 사회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해왔다. 이는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 너머 남녀로 구분되어온 일상의 공간과 제도를 수정하고 재편하는 일을 포함한다.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 개개인에게도 변화를 요청하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겐 익숙하지 않고, 제안이 낯설 수 있지만 종종 불편하고 무례하며 부당하고 반인권적인 입장들을 만난다. 특히나 광장에서 함께 싸우고, SNS에서 이야기를 서로 나누던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종종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다. 

 

몇몇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원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어쩌면 실례를 무릅쓴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들의 입장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를 건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아갈 큰 활동을 위해 저마다 항체를 미리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Q: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정세를 경험하면서,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하루: 최근 집회 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가시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긍정적인 시선을 보탤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하: 아쉽게도 체감되는 변화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법제도 개선되지 않는 한 이를 기대하기 쉽진 않겠지요. 그래도 최근 윤석열 퇴진 촉구 광장에서 많은 퀴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포함해서 다양한 퀴어들이 광장에 모여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사회 인식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광장이라는 공간이 퀴어당사자에게는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생각합니다. 덕분에 많은 혐오 말에도 견딜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보니아: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심해지고 있는 와중에 또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가시화만 대부분 되어있고 트랜스젠더 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대한 가시화는 아직 거리가 멀지 않았나 싶어요.

 

이안: 확실한 건 가시화는 많이 된 것 같아요. 보편적으로 공감하실 내용이지만 예전에는 적확히 표현할 언어가 많이 부족했는데(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페미니즘 의제에 대해 나아가 성별이라는 체계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함께 고민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 변화에 대해 어렵지만 수용하려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는 것 같아요. 트랜스앨라이라고 밝히는 시도도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요. 폭력적으로 거칠게 부딪히는 혐오도 재생산되고 있지만, 이미 혐오자들의 논리가 부족하고 명확히 차별적이라는 것을 주변에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됐어요.

 

라스: 우선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전까지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었던 이들이 이제는 트랜스젠더가 존재하고 동료 시민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대규모 집회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과 함께 트랜스젠더 깃발과 굿즈를 지닌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자유 발언 시에 본인을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로 소개하며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많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시화가 이루어지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연대와 지지 발언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느껴요.
하지만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은 마음이 무거워요. 특히 최근 들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꼈습니다. 인식이 있어야 그에 대한 반응도 있는 것이기에 트랜스젠더 의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생겨난 반작용이라 생각하지만, 계속 쏟아지는 혐오의 말이 당사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상처가 되지 않았을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나 주변인 중에도 잠시 SNS를 쉬고 오겠다거나 지친다는 말을 했고,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Q: 광장에 그만큼 언급되는 건, 그만큼 트랜스 이슈가 부각되고, 당사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광장의 일원으로,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로 행동하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다분히 긍정회로를 돌린 해석이지만요.
트랜스 운동과 사회변화에 트랜스/논바/젠더퀴어 당사자로서 필요한 것과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일상을 만들며 싸우는 동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들려주세요. 

 

하루: 사회적인 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목소리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 많은 앨라이들 역시 필요하지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또한 지속 가능한 선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하: 광장에서 퀴어들이 나서기 이전에는 트랜스젠더 가시화가 대단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알리려 해도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느낌이었죠. 퀴어 인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알리려고 해도 그들에게 닿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장에 퀴어들이 나서면서 많은 대중에게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들을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퀴어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는 여전히 트랜스젠더란 낯선 존재일 테니까요. 아직 트랜스젠더로서 사회에 나서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트랜스젠더 친화적 사회가 될 때까지 오픈리 트랜스젠더로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가시화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잘 살아서 서로에게 롤모델이 되어주어 많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용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니아: 위 답변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교적 덜 가시화된 정체성의 가시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덜 가시화된 정체성인 한 사람으로써도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안: 최근 집회현장에서 자유발언으로 스스로 트랜스 정체성을 밝히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부터가 그 역할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함께 투쟁하며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연대를 요청하는 그 까닭이라고 느꼈고, 집회는 끝나도 우리들의 일상은 계속되기에 당사자들의 발언을 접한 경험이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을 앨라이로, 당사자로 살게 하는 힘을 줄 수 있었다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트랜스젠더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적어도 투쟁 현장에서의 환대가 당사자들에게 무력함과 우울, 분노를 딛는 힘이 되길 바라고 응원을 받아갔으면 했어요.

 

라스: 온라인에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발언이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은 분명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혐오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요. 집회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온라인 공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거대한 무지개 행렬과 연대하는 이들의 당당한 모습 속에서 혐오자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온라인 상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가짜 뉴스와 날선 혐오 발화가 지속되는 장면을 보면서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나에게 이러한 오프라인 현장의 모습은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 중 부정적인 것을 더 쉽게 기억하고 떠올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각종 혐오 발언과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정치적인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는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과, 우리와 함께하는 수많은 연대 단체, 개인들의 모습이었어요. 혐오의 말들에 질식할 것 같이 괴롭다는 느낌을 받을 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보면 분명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혐오의 물살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 뿐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성소수자, 트랜스젠더퀴어의 해방은 이제 멈출 수 없는 흐름이에요.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긴 싸움이 되겠지만 우리는 서로와 함께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나아갈 거예요.

 

 

 

Q: 사람들이 비난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대면해봅시다. 몇몇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하루: 법적 성별 정정을 한 트랜스페미닌의 경우 정정을 했음에도 화장실 이용 자체가 무서워 꺼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화장실이라는 공간은 남성의 출입으로 인 해 불안감이 항상 도사리는 곳은 맞지만, 해당 공간을 이 용하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나의 법적 성별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경우도 생길 가능성을 항상 고려하다 보니 공중화장실을 자주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정 젠더에 한정하여 이용 가능한 공공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더욱 문제시 되길 바랍니다.

 

소하: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입니다. 그리고 법적 성별 정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자 화장실에 다닙니다. 저를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여성패싱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머리 스타일을 숏컷으로 잘랐습니다. 안 그래도 여자냐 남자냐 묻는 말을 종종 받는 저에게는 곤란한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여성임을 어필하기 위해서 머리를 최대한 길러서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해도 화장실에 갈 때 눈치를 보는 상황인데, 머리카락이 짧아지니 더더욱이 눈치가 보입니다. 만약에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이 “남자가 왜 여자 화장실에 왔냐?”라고 물으면 저는 당당하지 못하게 “여자예요.”라고 답하게 될 것입니다. 당당할 수 없는 근거는 성확정 수술을 하지 못하여 음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법적 성별이 남성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성별 이분법적인 사람을 상대로 여성임을 설득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최대한 남의 눈길을 피해서 빠르게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제가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누군가가 저를 오해하여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오해로 인해 제가 부도덕한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자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해서 불법이 아닙니다. 범죄를 목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도 아니며, 화장실에서 어떠한 부도덕한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의 가는 목적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디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를 거두고 남들과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혐오를 멈추어주세요.

 

보니아: 당신은 화장실에 누가 들어오든 그렇게 크게 신경 쓴 적이 있나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여장을 하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시스젠더 남성들도 있습니다만, 정작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습니다. 범죄와 생활을 구분해주세요.

 

이안: 성중립적이고 성해방적인 공간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굳이 이분법으로 분리된 화장실, 범죄에 대한 불안과 안전상의 문제를 이유로 서로를 검열하는 것이 당연시된 사적인 공간이라고 정리함으로써 아이러니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불편한 이유는 그 공간의 시설편의가 충분치 않고 치안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지 성별분리사용이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라스: 트랜스젠더들은 이미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모로 성별을 구분해서 문제없이 “통과”해야지만 이용할 수 있는 성별 분리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도 허다합니다. 내가 어떤 성별로 보일지 걱정하고, 혹여나 트랜스젠더임이 알려지면서 각종 혐오 발언, 폭력을 겪게 되지는 않을지 두려움을 느낍니다.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죠. 화장실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간이고, 누구나 당연하게, 안전하고 존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하니까요. 아직 한국은 누구나 안전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적 기반이 만들어져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 뿐만 아니라 장애 유무, 연령, 성별 정체성 등에 관련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트랜스젠더를 향한 불편감은 성별 이분법적인 젠더 관념과 결합되어 나타납니다.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며 지정된 성별을 벗어난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낯설고 이질적으로 여겨집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 화장실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마찬가지에요.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장남자, 가짜 여자,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라는 타자화와 혐오가 막연한 두려움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그저 화장실을 이용할 뿐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려고 트랜스젠더가 되지 않아요. 더 나은, 더 편안하고 안전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불법 촬영, 성폭력 등 젠더 기반 폭력을 없애고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과 트랜스젠더들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가야만 하는 일입니다.

 

 

Q: 트랜스젠더를 법적으로 인정하면 목욕탕에서도 같이 알몸을 보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루: 애초에 트랜스젠더들은 공공이용시설 출입 자체를 꺼릴 뿐더러, 트랜스젠더가 출입하기에 안전한 시설일 경우 해당 시설을 같이 이용하는 젠더 계층도 같이 더욱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이슈와 같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것보다 모두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공간이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를 더 많이 다루었으면 합니다.

 

소하: 네. 아닙니다. 서로 불편해할게 뻔해서 공공 탈의시설 안 갑니다. 성기 수술을 안 한 몸으로 절대 공공 탈의 시설 안 갈 겁니다. 남자 쪽이든 여자 쪽이든 안 갈 거예요. 남자 탈의 시설은 제가 불편합니다. 더 이상 저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여자 탈의 시설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이 너무너무 싫습니다. 성기의 모습을 보고 남성으로 오해받을 겁니다. 저도 불편하지만, 오해하는 분들도 매우 불편하겠죠. 이해합니다.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모른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 마디 더하자면 공공 탈의시설 대신에 개인 탈의시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효율성을 이유로 타인의 알몸을 억지로 봐야 하는 시대는 좀 구시대적 아닌가요?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타인에게 알몸을 보이지 않을 권리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안: 공중목욕탕은 원래 그런 곳입니다… (어쩌라는거죠? 싫으면 욕조있는 숙소를 대실해서 씻으세요?) 트랜스젠더가 쉬이 이용하기 어려운 공간 중 한 곳은 목욕탕과 비슷한 이유로 헬스장입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실천아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탈의실, 세신실 등을 이용하기 어렵죠. 하지만 알몸의 상태를 드러내기 원치 않는 것은 최근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부분이므로 1인 탈의/세신실이 신설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공중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너무 뚫어지게 보시면 안됩니다.

 

라스: 같이 알몸을 보면 안될 이유는 있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묻고 싶습니다. 대체로는 아마 범죄에 대한 두려움, 낯선 신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인정되면 트랜스젠더가 목욕탕에 들어올 거라는 말은 이미 틀린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미 법적 성별 정정은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당연히 그 중에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트랜스젠더도 있으니까요. 사실 목욕탕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법적 성별을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판단을 내리고 그에 맞다고 여겨지는 공간으로 보내질 뿐이죠.
하지만 사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트랜스젠더들이 누구나 마음 편히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된 사회가 아닙니다. 목욕탕은 철저하게 여성과 남성으로 성별이 분리된 공간이에요. 입구를 통과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알몸을 드러내야 하고요. 나의 신체를 전부 드러내면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성별의 몸에 들어맞지 않는 몸을 가진 “비수술” 트랜스젠더가 과연 아무렇지 않게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트랜스젠더들은 이러한 구조적 환경 속에서 스스로 위축되고 배제되는 경험을 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이미 존재하며 존재를 없앨 수 없습니다. 트랜스젠더를 낯설고 이상한 존재로 타자화하기 전에, 트랜스젠더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사회적, 법적인 현실을 함께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Q: 숙명여대의 트랜스젠더 입학취소 사건도 있었지만, 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성폭력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 논리의 큰 틀인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하루: 이미 많은 수의 법적 여성 트랜스젠더들은 여대를 다니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 트랜스젠더가 있음을 시스젠더 여성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은 그 논리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소하: 현대 사회에서 여대가 유의미한 이유는 첫째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낮은 상황에서 여성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로 여성들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교육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다른 성별에는 어떻습니까? 일반 여성보다 더 낮은 사회적 지위와 더 위험한 교육 환경이 있습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여대가 존재한다면 트랜스젠더에게도 열려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트랜스젠더는 여성을 위협하고 인권의 파이를 뺏는 존재가 아닙니다. 현실은 일반 여성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닙니다. 많은 성소수자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페미니스트라면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많은 성소수자와 함께 여대에 입학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안: 저는 지정성별 여성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여대졸업생입니다. 분명 동기 중에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도, 젠더퀴어도 있었겠지만 트랜스젠더가 범죄를 저지르고 학우들의 안전을 침범한 사례는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네요. 저 역시 한 번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없고요. 무슨 상상을 하는 걸까요. 여성이 여자대학을 가는 것에 의문을 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고픈 이야기는, 여성이 여성으로서 범죄 피해 대상이 될까 불합리하게 갖는 불안은 그가 ‘시스젠더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한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처럼 보이고, 여성적이고, 여성이고,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대상이 될 수 있음에 불안해하고 실제로 그것을 이유로 타깃이 됩니다. 여성됨의 조건은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성은 생식기나 호르몬을 제외하고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스스로의 성에 이질감을 가질 수 있고, 의문을 갖는 것도 모두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왜 성별이 존재하며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우리는 아직 다 알지 못합니다. 터프들이 제시하는 여성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시스젠더 여성도 존재합니다. 그들은 단일한 여성을 원하지만 애초에 성이란 단일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 방대한 것들에 대해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부정하는 것은 완벽히 잘못됐음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라스: 화장실, 목욕탕, 학교 모두 사실 근본적으로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트랜스젠더는 범죄를 저지르려고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트랜스젠더는 “여장남자”나 “변태”가 아닙니다. 그저 나의 성별 정체성대로, 나로서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트랜스젠더가 아닌 시스젠더들이 그러한 것처럼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오는 것을 반대한다 한들 이미 여러 트랜스젠더들은 여대에 다니고 있어요. 트랜스여성 뿐만이 아니라 트랜스남성, 논바이너리들까지 다양합니다. 이들이 존재하기에 “여자대학을 다니는 트랜스젠더퀴어의 젠더 수행과 여성공간의 역동”이라는 논문도 발표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여대에 트랜스젠더들이 다니고 있는 마당에, 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온다고 해서 기존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주장은 실질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여자대학의 설립 의의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싶어요. 여자대학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여대는 젠더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고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지 않는 교육 환경을 만들고자 한 의지의 상징입니다. 트랜스젠더퀴어가 여대에 다니는 것은 이러한 설립 의의를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일이겠죠. 트랜스젠더퀴어는 기존의 성별 이분법과 고정불변하는 젠더 개념에 저항하는 주체이며,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소수자들입니다. 트랜스젠더퀴어 학생의 입학과 학업은 여대가 가진 의미를 이어나가며, 젠더 해방과 평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Q: 올림픽이나 프로리그와 같은 국가/지역 대항전의 경우, 선수의 성별이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 경기의 경우에는 단순한 이슈 너머 트랜스젠더 여성이 승률이 높지 않냐는 이견도 있어요. 한때 이슈가 되었던 국내 트랜스젠더 선수는 남녀 외에 따로 성별부문을 만들어서 진행해야 한다고도 말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하루: 트랜스페미닌의 경우 시스젠더 여성 선수와 비교했을 때 더 엄격한 호르몬 규제를 받으므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비교하였을 때 시스젠더 여성 선수에 비해 현격히 그 수치가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호르몬 수치로 선수들에게 규제할 경우 시스젠더 여성 또한 테스토스테론이 자연적으로 많이 분비되는 선수들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므로, 이러한 규제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트랜스젠더 부문을 따로 만들어 경기를 진행할 경우, 트랜스젠더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젠더 규범을 따르는 사회에 편입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분리하여 제 3의 존재로 인식하게 할 것입니다.

 

소하: 현대 스포츠는 지나치게 성별 이분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소소한 종목 하나하나 여남 구분을 칼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스포츠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다르게 발달한다는 근거로 여남 종목을 구분하곤 하는데요. 물론 근력을 고도로 발전시켜서 사용해야 하는 운동 종목에는 그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 맞을지도 모르고요.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력 외에도 많은 신체 능력이 스포츠에 사용됩니다. 이 중에 많은 신체 능력은 여남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여남 구분하여 경기를 치르는 이유는 단순히 관행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런 부분들을 스포츠 정신이라는 이름하에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분하여 비등한 경기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체스나 e스포츠에서 많이 사용되는 레이팅 매치를 권하고 싶습니다. 전적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비슷한 사람들과 매치하여 비등비등한 선수끼리 경기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게 대중이 스포츠 경기에서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비등비등한 선수끼리 최선의 경기를 하여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 말이에요.

 

이안: 트랜스젠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가장 많이 호명되고 공격받는 집단은 아무래도 트랜스여성(MTF라고도 하는)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모두가 같은 몸을 갖지 않습니다. 아주 넓은 스펙트럼이지요. 실제로 젠더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의 신체는 스펙트럼입니다. 당연히 길이, 무게, 밀도, 질병, 장애, 구성도 다릅니다. 
그외에 신체능력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많은 반박의견이 있는데, 그건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만 이것이 어떻게 대중에게, 혐오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해야할 것 같습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신체만을 기준으로 많은 부분을 판단하고 정의하는 것은 지양해야한다고 선언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스포츠 부문에서 성별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실제 선수들과 진중하게 논의하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라스: 스포츠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말을 얹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왜 기존의 스포츠가 성별로 분리되었는지부터 의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가 있기에 성별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다양한 신체와 성별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더 많이 가시화되고 경기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라는 것이 정말 고정불변하고 확고한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인터섹스, 의료적 트랜지션을 겪거나 겪지 않은 트랜스젠더, 시스젠더라도 호르몬 불균형이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리고 모든 종목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한 때 e스포츠를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e스포츠 게임 경기에는 여성 부문, 남성 부분이 따로 없었고 성별에 따라 분리되지 않았어요.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는 e스포츠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능력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럼에도 리그에는 남성 선수가 여성 선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여성 리그가 따로 창설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e스포츠에도 성별 차이가 있다, 여성은 반사 신경과 동체 시력이 남성보다 낮아서 그렇다는 둥의 발언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국가별로 신체 능력이 타고나기를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도 스포츠에서 성적 차이가 나는 것처럼, 문화와 인프라의 차이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여성, 남성 호모 소셜의 문화의 차이, 서로가 접하는 환경의 차이가 크지 않았을까요? e스포츠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이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남자는 축구하고 여자는 앉아서 쉬라는 학교 체육 시간이나, 유지되지 못하는 여자 운동부는 어떨까요? 트랜스젠더 선수와 시스젠더 선수의 경기력이 차이가 난다고, 그것이 “생물학적인 성별”에 의한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승률이 시스젠더 여성의 승률보다 높다는 건 근거가 없고,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성과 남성 외에 트랜스젠더 부문을 신설해야한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고, 트랜스젠더 남성은 남성입니다. 논바이너리는 사실은 여자고 남자인 것이 아니라 논바이너리입니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에서 1월 4일 윤석열 퇴진집회 당시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에서 기획한 '트랜스존'에 참여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웹자보 이미지

 

 

Q: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 같다가도, SNS에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면서 트랜스젠더를 부정하고 조롱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봅니다. 이들은 기존의 혐오세력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트랜스젠더를 핑계삼으며 차별금지법과 성별정정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최근 동덕여대 등 이슈나, 성소수자가 논쟁으로 오를때면 트랜스젠더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인상을 줍니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 그냥 무시하면 될까요? 경험도 좋고 진단이나 분석, 제안 등 형식에 구애가 없으니 편하게 남겨주세요.

 

하루: 그들의 행동을 무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보다는 그들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혐오 반대의 메시지를 전하여 가시화시킬 필요성을 더 많이 느낍니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앨라이(Ally)의 참여가 필요하며, 온라인에서도 중요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특히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인 시각을 내비치는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잘못된 것임을 말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트랜스젠더 혐오에 앞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왜 잘 못 되었는지, 이를 담는 발화가 얼마나 유해한지 지속적으로 전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소하: 페미니스트는 인권을 두루 살피고 약자를 위하여 부조리한 사회와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약자 혐오를 일삼는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혐오자들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거둘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혐오자들은 거짓 뉴스 선동 좀 그만 당/하세요. 현대 사회는 정보화시대로 넘어온 지 한참 되었습니다. 몇 분만 투자하면 뉴스의 출처, 신빙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시대예요. 그런데도 의도적인 게으름으로 가짜뉴스에 선동당하다니요. 이건 고의적인 악행입니다. 반성하면 좋겠습니다. 정말 이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혐오자들이 트랜스젠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래도 저는 혐오자들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혐오자들도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니아: 주로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페미니스트, 일명 터프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뭔가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혐오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들의 언행을 보면 그 생각이 맞고, 오히려 잘 알고 혐오하는 것 같기도 합니요. 후자인 경우는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전자의 경우 한 번쯤 그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안: 사실 대부분의 동료들이 ‘쟤네 또 시작이다‘로 한숨쉬며 넘기고 있지만, 그럼에도 논쟁을 끝맺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복되는 폭력적인 말들에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투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들은 가시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파열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분명 그 속에서 무력과 분노, 불안과 우울을 ‘당연히‘ 겪어야만 하는 당사자들이 있고 그들을 지키지 못해 슬퍼하는 앨라이들이 있지요. 그 어느때보다 우리라는 이름과 공간으로 돌봄과 이것이 끝내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필요한 시기인 듯 합니다. 
실제로 저도 최근 동지를 잃고 스스로조차 설명못할 큰 공포와 침울함에 빠졌었다고 이제는 고백할 수 있는데요, 주변의 의지할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마 여전히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누구든 힘든 시기에 고독할수록 더 자주 크게 무너집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차별당하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은 더 당당하게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과 위로를 받아가셨으면 합니다(웃음).

 

라스: SNS에서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을 흔히 접합니다. 이에 개개인이 대응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똑같은 논지의 혐오 발화(트랜스젠더는 여성 공간을 빼앗는다, 여성 혐오적이다, 존재할 수 없다거나 비아냥거리는 등)를 계속해서 보고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 또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대항하면 좋을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나는 혐오자 개개인과 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혐오 발언을 듣는 제 3자와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곤 합니다. 혐오 발언에 지친 당사자와 앨라이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게, 그리고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이제 막 알아가는 이들에게 혐오가 아닌 연대를 전하기 위해서 말이죠.
혐오 발언에 노출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잠시 쉬고, 트랜스 당사자 및 앨라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이건 문제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혐오로부터 나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성인이나 띵동, 조각보, 트랜스해방전선 등 트랜스 의제에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단체들에서 활동을 참여해보는 것도 트랜스프렌들리한 분위기 속에서 안정감을 되찾고, 혐오에 짓눌리지 않고 대항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Q: 세상의 변화를 원하지만 아직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젠더퀴어는 낯선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 우리는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는 존재해 왔고, 비록 그 형태와 수가 달랐을지언정 갑자기 등장한 존재가 아니며 이는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았으면 합니다.
자연 상태를 논하며 젠더 이분법적 사회가 절대적 올바름을 반영하는 이상적인 사회라 믿는 것이 어떠한 폭력 의 층위를 반영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본인이 다른 소수자들과 비교하였을 때 자신이 어떠한 점에서 그들보다 더 큰 혜택과 특권을 누리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시작점이 될 것입니 다.

인류는 모르는 것에 대해 탐구하면서 한 발짝씩 더 발전했기에, 낯선 존재인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보다 나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소하: 트랜스젠더라는 존재가 아주 낯설지요? 저도 트랜스젠더로 살아간 지 5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제가 낯섭니다. 저도 차별하는 사회가 아주 낯설다고요. 그러니까 서로 비긴 거로 합시다. 저도 가끔은 트랜스젠더를 낯선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기도 해요. 당연히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 것으로 생각하고 전문 퀴어용어를 섞어가면서 말하기도 해요. 그러다가 뒤늦게 깨달아요. “아차, 내가 못 알아들을 단어를 써버렸네.” 하구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트랜스젠더가 낯설어도 괜찮아요. 트랜스젠더가 주변에 있을 것이라고 나중에라도 깨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배려하도록 해요!

 

이안: 트랜스젠더들은 많은 무형적/물리적 공간에서 크고 작은 제약을 받으며 접근성을 침해당합니다. 더 넓고 안전장치가 설치된 탈의/세신실은 유아차나 아동이 있는 가족, 활동지원사가 동행하는 장애인에게도 편안하죠. 소수자/약자를 기준으로 마련되는 공간은 곧 모든 사람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공간입니다. 우리는 공공을 함께 고민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때와 장소와 몸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느리고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스스로 여건이 되는 만큼만 해도됩니다. 내가 모르는 존재들도 분명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어딘가에선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주세요. 알아야 합니다. 

 

라스: 트랜스젠더퀴어를 아직 낯설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와 연대하고 함께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하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으며 단지 수많은 특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도 생각하고, 말하고, 투쟁하고, 친구도 사귀고 웃고 떠들고 화내고 울기도 하고, 맞는 말도 하고 틀린 말도 하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당신 근처에 있거나 혹은 어쩌면 당신일수도 있는 그런 그냥 사람들이라는 걸, 너무 놀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생각보다 별로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걸 알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