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 TDOV) 입니다. 행성인 웹진에서는 '앨라이'를 키워드로 회원들의 에세이를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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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을 떠다니는 어수선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려고 정리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쓰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말랑하고 예쁘고 밋밋한 글이면 될 텐데 굳이 이런 걸 공개해야 할까. 사실, 방금 다 쓴 글을 전부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고 있다. 공복에 커피를 마신 듯 쓰리던 속이 조금 편해졌다.
‘중단자(desister)’라는 말이 있다. 트랜스젠더 관련 맥락에서 쓰일 때는 한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지만, 의료적 트랜지션(호르몬 치료, 성확정 수술 등)을 거치지 않고 정체화를 중단한 사람을 가리킨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했다가 중단한 사람은 ‘탈전환자(detransitioner)’라고 한다. 나는 시스 헤테로 남성이고, 오래전에 트랜스 여성으로 정체화했던 중단자다.
바로 앞 문장을 세 번 정도 다시 읽었다. 저기,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음, 내가 봐도 정말 재미없을 것 같다. 나도 나 말고 중단자나 탈전환자의 이야기를 거의 접한 적이 없다. 누가 이런 이야기에 관심 있을까 싶어 조금 찾아봤다. 웹에서 중단자나 탈전환자는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중단/탈전환 후 자신이 겪던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 이하 ‘디스포리아’)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건강한 시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축하합니다!), 그리고 중단/탈전환 후 은밀하게 디스포리아를 안고 끙끙대다 결국 나이 든 후 언젠가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할 정체화하지 않은 잠재적 트랜스젠더.
나는 둘 모두 아니다. 우선, 나는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내 신체가 낯설다.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내릴 수 없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매 순간 기력을 소모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진 모든 ‘남성적’ 특징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뭐가 남성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고 과정을 거친 감각이 아니라서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 열거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령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눈썹뼈를 깎는 상상을 한다. 뭐에 홀린 듯 쇄골 축소술과 승모근 보톡스 따위를 찾아보고 비용과 후기와 부작용을 샅샅이 읽고 나서 간신히 단념한 적도 있다. 커다란 내 손발이 끔찍하고… 이쯤 하자.
동시에, 나는 지금 내 상태가 매우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디스포리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다시 돌아보면, 건장한 30대 중반 아저씨가 품기에는 대체로 비루하고 한가한 욕망들이다. 이 말에 분명히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강조하자면,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여성이 아니다. 그리고 내 디스포리아는 (적어도 지금) 내 삶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하지 않다.
기나긴 자아 성찰 과정을 낱낱이 적을 생각은 없다. 다소 진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떤 경험은 살짝 즐겁기는 했다. 언젠가 어머니의 가죽 장갑을 끼고 앞자리 남자애와 손깍지를 만들었을 때 그 아이 볼에 살며시 떠오른 홍조. 어쩌면 조금 더 기묘한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같이 교실에서 옷을 벗던 친구가 반사적으로 내뱉은 외마디 사과, 그리고 은밀한 안도. 한때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 나는 변성기 전 내 소프라노 목소리를 좋아했다. 트랜스 여성 정체화를 완전히 포기하고 나서도, 나는 디스포리아를 줄이기 위해 성대 단축술을 받을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 수술이 내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아 주지 못함을 알면서도.
멀리서 광명이 비쳐오는 가운데 벌어진 극적인 개심 같은 것은 없었다. 처음에는 현실이 문제였고, 나중에는 스스로 여성임을 진지하게 믿을 수 없었다. 2010년대 초에는 디스포리아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막연하게 남성이 아니면 여성, 이라고 생각했었다. 생각이 바뀌는 데는 페미니즘 독서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것은 내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여성이라고 인지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몸에 들러붙은 이 끈적한 감각의 정체는 정말 무엇일까? 여기서 나는 설명을 중단해야 할 듯하다. 무언가 말을 할수록 뱉은 말은 메아리로 흩어지고, 어떤 단어는 혀끝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만다. 언어는 공적이다. 적절한 반응에 묶여 소통에 쓰일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진정으로 사적인 어떤 말들은, 어떤 감정들은, 언어 바깥에 있다. 결국 나는 타인의 감각을 모른다고, 나는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인정해야 한다. 아마도 디스포리아라는 명칭조차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이다. 1
2010년대 중반 무렵 논바이너리와 젠더퀴어 개념을 접했다. 어느 정도는 내게 들어맞는 말들처럼 보였다. 사람의 젠더가 반드시 여성과 남성 중 하나가 아닐 수 있다고, 젠더가 없을 수도 있고, 가변적일 수도 있다고.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세심하고 정갈한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가벼운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우물쭈물하다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분적으로는, 당시 내가 처음으로 헤테로 장기 연애에 들어선 참이었고, 간신히 유지하던 위태로운 ‘정상’ 관계를 건드릴 소지가 있는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약간이나마 퀴어했던 과거와 점점 더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정상성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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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한다. 만약 가장 디스포리아가 심했던 10대 후반에 내가 호르몬제 ‘직구’ 방법을 알았더라면,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항안드로겐제와 에스트라디올 보충제를 입수해 복용을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변화 또는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디트’(디트랜지션(detransition)의 준말로, 국내 트랜스 커뮤니티에서 쓰인다)했을까. 만약 장기 투약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상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끊긴다.
트랜스젠더, 나아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발을 들이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떤 트랜스젠더 당사자 활동가가 브런치에 남긴 수기였다. “나는 내 글을 읽어주는 모든 분들이 다 트랜스젠더 앨라이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 트랜스젠더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싶고, 트랜스젠더가 받는 억압을 줄여나가고 싶다면 그 누구든 트랜스젠더 앨라이가 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그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글을 모두 읽고 나서 며칠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내가 앨라이가 되기를 바랐다. 이것만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2
행동이 앞선 걸까. 솔직히, 나는 아직 그를 포함한 트랜스젠더를 이해하지 못한다. 건조한 사실이다. 내가 타인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일에 절망적으로 서투르고, 심지어 나조차도 잘 모르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서다. 그러나 누군가와 연대하는 데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항상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와 나란히 설 수 있다면, 그래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본 것을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이해 비슷한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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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의 단편 「화양극장」에는 두 여자(등장인물의 성별 표기는 성해나 작가의 원작을 따랐다)가 등장한다. 청년 여성 ‘경’은 임용 고사에 연거푸 떨어지고 낙심한 채 고향 상주로 내려와 있다. 무기력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텅 빈 동네 단관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경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노년 여성 ‘이목’과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목과 대화를 나누며 이목에 대해 차츰 알아가게 된다. 영화를 남달리 사랑하는 그가 왕년에 스턴트 배우였다는 것. 오래된 동성 연인 ‘연수’가 있지만 지금 그는 남성과 결혼했고 외국에 산다는 것. 조만간 연수가 귀국할 예정이라는 것. 당장 그들의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에게 이목은 연수가 돌아오면 함께 팥죽을 끓여 먹자고 제안한다.
“이목씨의 삶과 사랑을 경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짐작해보려 애썼다. 이목씨가 기꺼이 그래주었듯, 자신도 그의 편이 되고 싶다고. 영사막을 투과한 무수한 빛들이 숏이 되어 사라지는 동안 경은 상상했다. 이목씨와 연수씨가 한 식탁에 앉아 둥글게 새알심을 빚는 장면, 그들 사이에 끼어 함께 그릇을 세팅하고 수저를 놓는 장면, 뭉근한 불에 팥죽은 끓어가고 은근한 온기가 흐르고, 달고 부드러운 죽을 먹으며 세 사람이 농담을 나누고 같은 지점에서 웃는 장면을.” 3

소설 속에서 이 장면은 현실이 되지 못하지만, 이 지점에서 경은 이목의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 곁에서 함께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극장이 폐업하기 전, 경과 이목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목은 연수와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명 배우 최무룡의 스턴트 일을 하던 이목이 크게 다쳤을 때, 아무도 찾지 않던 이목의 병상에 혼자 다가온, 최무룡보다 양자경을 더 좋아하던 학생 팬이 바로 연수였다. 이목은 말한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그 말을 들으며 경은 이목이 조금 전에 던진 물음을 놓고 고민한다. “경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 ‘성별 불쾌감’이라는 용어는 2013년에 나온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5판(DSM-5)에서 처음 의학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전에 쓰이던 진단명은 ‘성 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였다. [본문으로]
- 이연수, 〈73장: 트랜스 앨라이 되기〉, 나의 트랜지션 일기, 2024년 9월 28일 수정, https://brunch.co.kr/@trans-pride/77. [본문으로]
- 성해나, 『빛을 걷으면 빛』, 문학동네, 2022, pp. 79-8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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