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TDoV 기획] 밑 빠진 독과 두꺼비

by 행성인 2025. 3. 25.

 

마늘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 TDOV) 입니다. 행성인 웹진에서는 '앨라이'를 키워드로 회원들의 에세이를 담았습니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이하여 부탁받은 글쓰기를 해보려 한다. 자주 쓰지 못했던 글이지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나의 삶을 바탕으로 앨라이에 대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 보려고 한다. 트랜스젠더와 앨라이의 마땅히 정의하는 내용들은 많아 생략하겠다. 호기심이 든다면 직접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알고 들은 퀴어들의 서사가 왜 그렇게 비슷한지 모르겠으나, 나의 서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상도 출신의 자수성가한 부모, 양가 집안의 장남,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나열만 해도 숨이 막히는 삶이 아닌가.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까? 아니면 이어진 퍽퍽한 삶의 연속이었을까. 보수적인 부모님은 나에게 장남의 권위를 쥐여주며 행동하길 바랐고, 학교는 여성스러운 남자애로 평가되며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집을 뛰쳐나와 갈 곳이라고는 학교와 학원이었던 나에게는 어느 곳 하나도 안전하지 않았다. 집과 학교에서 이어진 모욕과 혐오의 생태는 나를 위축시켰다.

 

현실은 암담하고 의욕은 언제나 부족했다. 삶에 의욕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채워도, 줄줄 새기나 하는 밑 빠진 독 같았다. 쥐고 태어난 의욕이 부족해서였을까, 혹은 나의 생존 욕구가 부족해서였을까, 나의 독은 금세 비워졌다. 그리고 비워진 독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모서리가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현실과 인연을 모두 끊어내라고, 그렇게 끊어내면 편해질 거라고. 혼란은 잠잠해질 것이고 끝은 평안이라고 속삭였다. 이겨낼 논리도 나를 향해 밀고 굴러오는 독을 이겨낼 재간도 없었다. 나는 순리에 못 이기듯, 그저 밀려난 마지막 잎새였을지 모른다. 세찬 바람이 불고 까마득히 멀어 보이는 바닥이 함께한 순간, 잎새는 무서웠다. 없던 고소 공포증이 갑작스레 나를 붙잡았다. 무서워 도망친 곳에서 공포가 나를 구원한 순간, 내 삶은 공포로 가득했다. 아닌가, 공포만이 내 곁을 지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도망친 곳에 평화는 없었고, 맴도는 혐오에 도망쳐 나를 지킬 방법은 공포에 질려 온몸을 꽁꽁 웅크리는 것. 날아와 박힌 가시를 뽑지도 않은 채 고슴도치가 되는 것이었다. 고슴도치는 작은 종종걸음으로 공포만 피해 다녔다.

 

공포에 도망치듯 대학을 갔고, 그곳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자유와 책임이 따르는 어른의 세계, 혐오의 존재와 공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가 있었다. 함께 입학한 동기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다정하였다. 내가 게이라고 밝혔을 때 그렇구나!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함께 남자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나의 첫 커밍아웃이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렇구나가 주는 인정의 의미와 함께 곁을 떠나지 않는 그들이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나의 삶을 궁금해하고 응원하는 그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의 나를 지켰다.

 

전래동화 '콩쥐팥쥐'에서 깨진 독과 두꺼비를 그렸다. by 마늘.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자, 연애도 해보고자 대학의 성소수자 단체를 찾아 들어갔다. 내가 나로 존재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의 경험이었다. 나의 행동이 여성스럽게이해되지 않고 나의 행동이었다. 혐오를 마주하는 순간에 함께하였고, 무너지는 순간이 오지 않도록 함께 이야기하고 싸웠다. 나를 되돌아보고 관찰하고 관심 가지도록 하였다.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공간이었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볼 시간을 내어주었다. 내가 게이였다가 퀘스쳐너리였다가 젠더퀴어에서 어느 순간엔 트랜스젠더가 되는 과정까지 그 모든 순간의 정체화를 응원했다. 나의 변화는 이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탐색이었고 자아실현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미처 찾지 못했을 나의 자아와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함께했다. 내 삶의 전반을 함께 공감하고 감수성을 공유하는 친구를 찾았다. 그들은 온전하게 존재하는 나를 찾는 과정을 지켜주었다.

 

그 무렵 나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가족과의 관계는 파국의 끝으로 치달았다. 나의 역사를 가장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장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했다. 모아둔 화장품과 구두를 내다 버렸고, 내 삶의 전반을 모르는 체하며 지냈다. 가족과의 관계가 불편해 20대 초반부터 집을 나와 직장을 다녔다. 성별 정정도 되지 않았고, 당장의 몸을 가지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콜센터였다. 콜센터 면접을 보고 1차에 합격하였고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었다. ‘평범한 남성처럼 보이지 않는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기피하던 괴짜였다. 생계가 달린 일에 최선을 다했고, 동기 및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하였다. 가족과의 불화나 삶에서의 고독이 나와 맞아 친해진 2명의 동료가 있었다. 그들에게 커밍아웃했고 그들은 나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다. 나와 함께 3인방이 되어 함께 먹고 자고 놀러 다녔다. 나에게 화장하는 법과 옷 입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속옷 가게에 가서 속옷도 함께 골랐다. 젊은 헌팅 포차 같은 곳에 가서 함께 헌팅도 해보고 남성과 대화하는 방법, 남자를 걸러내는 법 등등 소위 말하는 여성 집단의 문화를 내게 알려주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마주하고 그들은 나에게 미지의 영역을 알려주는 전도자였다.

 

내 변화가 자리 잡고 이후 나는 가족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했다. 묵어있던 오랜 관계이기도 했고, 나의 삶을 내가 지탱하지 못할 만큼의 큰 금전적 부담이 생겼다. 비급여로 호르몬 치료를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상황에 놓인 나는 남동생에게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엄마를 함께 설득해달라 요청하였다. 남동생은 나의 상황을 신중하게 듣고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안전하고 행복한지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엄마를 함께 설득했다. 엄마에게 먼저 넌지시 동생이 나의 상황을 먼저 알렸고 나도 곧이어 나의 진심을 전달하였다. 엄마는 우선 당장의 금전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제시하고서는 1주일간 연락이 되지 않았다. 1주일 이후에 연락이 온 엄마는 나에게 수술이 필요하다면 수술하자’, ‘잘하는 병원이 있으면 알아봐라.’라고 말하며 그간의 상황을 말했다. 엄마는 1주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서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다큐와 글들을 찾아보고 내 삶이 불행하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랐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낳았으니, AS까지는 책임지겠다라고 하며 나를 응원했다. 아빠는 나의 수술을 걱정하고 반대하였지만, 엄마의 강한 설득 끝에 수술하러 가는 길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도 함께 마중 나와주었다. 부모님은 나의 탄생과 죽음 사이 새로운 나의 탄생을 또다시 함께해주었다.

 

나의 삶을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거절의 역사였다. 알고 지내며 호감을 표현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의 정체성을 밝히면 거절과 헤어짐을 이야기하였다. 누군가를 강렬하게 열망하고 사랑하는 순간에 거짓 없는 모습으로 함께하고자 한 고백은, 마음이 커다란 순간에 가장 멀어질 사이가 되는 선택이었다. 이런 순간에 놓일 때마다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품었고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고 솔직해지기 어려워졌다. 사랑만 하면 거짓의 인간이 되는 나를 혐오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도통 배울 길이 없었다. 사랑을 시작하고 마음이 커지면 그와 반대로 자존감은 바닥을 기어갔다. 문득 찾아온 애인에게 사귀고 나서 꾸준히 찾아오는 나의 불안과 자기 혐오를 밝히며 커밍아웃했다.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지만 울고 있는 나였다. 애인은 나에게 그런 이유로는 헤어지지 않아.’ 그리고 설령 헤어지더라도 너가 트랜스젠더라는 건 허락없이 말하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그는 내 생에 처음 찾아온, 평안을 주는 연인이 되어 지금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의 유년기를 살펴보고, 삶의 끝자락이 죽음과 맞닿았던 순간부터 지금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보니 내 곁을 지키는 존재들이 많았다. 삶의 의욕이 망가져 부서진 채로 삶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찼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들에 그저 자리를 지키고 떠나지 않은 채 평소와 같이 나를 대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에게 물어도 그들은 앨라이가 무엇인지, 앨라이의 행동이나 마음가짐 같은 것은 이야기하기 어려워할지 모른다. 다만 트랜스젠더를 마주한 순간에 그들이 한 행동은 한 트랜스젠더를 살도록 하였다.

 

엄청나게 어려운 말들이나 양식으로 앨라이를, 나는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에게 앨라이는 밑 빠진 독 아래에 앉은 두꺼비라 할 수 있다. 콩쥐 팥쥐에 나오는 두꺼비. 삶의 의욕을 채워 넣는 항아리에 많은 구멍을 지키며, 의욕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는 두꺼비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망가져 버린 항아리를 스스로 채워 넣을 기력조차 없어진 누군가의 밑 빠진 독 옆에 앉아 더 망가지지 않도록, 더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는 존재이다. 내 곁을 지켰던 많은 앨라이가, 내 삶에는 있었다.

 

대학 동기가 고백한 고민에 삶을 경청하고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친구들, 정체성을 탐구하며 바뀌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또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도록 응원해 준 친구들, 직장에서 알게 된 동료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곁을 떠나지 않는 동료, 언제나 자식의 든든한 뒷배가 되려 하는 부모의 마음, 사랑하는 연인의 어려움을 포용하기. 이러한 것들은 결코 쉽지 않지만 또 어렵거나 무거운 말들로 대체되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다. 누구나 경험하고 싶어 하고 경험할 수 있는 관계의 도리나 기본에 대한 것들이 어쩌면 앨라이의 삶의 실천 같다. 그 실천이 한 트랜스젠더를 살게 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벼랑 끝, 밑 빠진 독에서 새어 나갈 삶에 대한 의욕, 꽃말은 죽음이다. 죽음과 함께 걷던 내 삶에서 곁을 지킨 것은 죽음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조차 알지 못해 되짚어 알아챈 두꺼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