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및 성 차별에 맞선 퀴어 운동


저의 퀴어 활동과 저의 인생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게 조금 이상해요. 미국에서도 쿼어 활동가가 뭔지 몰랐고 한국 와서 더 명확해진 것도 아닌데 글을 쓰게 됐네요.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인정하지만, 한국 와서 한국어로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단체에 저를 소게하는 게 마냥 신기해요. 편안한 가족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저의 글에 진실이 담겨있고 저의 경험에 담겨있는 진실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을 믿으면서 글을 씁니다. 그래서 저의 글을 읽는 사람들을 아직 안 만났지만 같이 활동하고 더 가까워지겠다는 희망으로 글을 씁니다. 
 


저는 한국에 태어나서 3살 때 미국으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갔어요. 부모님께 왜 이민을 왔는지 불어보는데, 기분 따라 대답이 바뀌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고모와 할머니가 미국에 계셔서 왔다고 그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버지의 경제적인 능력 때문이고 또 어떤 때는 저 때문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네이퍼빌’이라는 시카고의 교외에서 그 후 15년 동안 살게 됐어요. 부모님은 학교 때문에 네이퍼빌로 이사했다고 그래요. 그곳에서는 재산세로 교육예산이 나와요. 부자 동네니까 좋은 학교가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백인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죠. 초등학교 다닐 때는 전체 한국 학생 2명 중에 한명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20명 중에 한명이었어요. 
 


저는 자라면서 백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노력하면 백인처럼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어요. 백인 사람, 백인 문화, 백인 매체에 둘러싸인 환경은 백인이 표준이고 정상이라고 얘기하는 듯 했어요. 물론 백인처럼 되기 위해 영어나 백인 문화를 배울 수는 있지만, 변할 수 없는 면도 있고 또 변하고 싶지 않은 면도 있었어요. 저의 외모, 저의 부모님, 제가 집에서 경험하는 한국 문화가 바로 그러한 면이었죠. 그런 것들이 저를 힘들게 했죠. 다른 애들 부모님은 돈 많은 의사나 변호사인데, 제 부모님은 우리 동네에 살기 위해서 하루 종일 세탁소에서 힘들게 일하셔야 했어요.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저한테 이상하게 생겼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한테서 예쁘다는 소리를 안 들어봐서 그런지 한국에서 예쁘다는 말 듣는 게 낯설고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랐어요. 
 


중학교 때 한 여자애를 좋아했어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는데,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또 다른 여자애들처럼 얄팍하지도 않았고 아름다웠어요. 물론 그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잘 몰랐죠. 내가 레즈비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했죠. 당시 저는 레즈비언들은 다 백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학교에서는 “그거 너무 게이스럽다That's so gay”가 누군가를 가장 바보로 취급하는 표현이었고요. 예상대로 우리 둘은 친구로 지냈고 다른 고등학교 가게 됐어요. 
 


대학교에 가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제가 자라면서 경험했던 게 특별한 게 아니라고 배웠어요. 그런 표현이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것이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한편으로 큰 안도감이 들었어요. 세상이 뭔가 잘 못 됐다고 주장하는 게 헛소리가 아니며 그런 제 경험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나 큰 안심이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런 불평등을 경험했고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분노가 생겼죠. 그때부터 아시아 학생단체
Asian American Resource Center에서 일하면서 학생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 정치성을 찾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죠. 


활동하면서 저는 정치성을 찾았지만, 솔직히 말해 퀴어로서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퀴어’라는 개념은 여성/남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고, ‘성sex’이라는 개념은 인종이라는 개념과 연결 되어 있죠. 그리고 ‘인종’ 문제는 시민, 연령, 능력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데,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면 이런 차별 및 불평등과 다 싸워야하는 거 아닐까요? 여성이고 아시아인이고 퀴어라서 다른 이성애자 아시아인 여성보다 더 억압 받는다는 생각은 안 해요. 퀴어로서 억압을 다르게 경험하는 것뿐이죠. 모든 운동에는 중심이 있고 그 외적인 것들은 소외되는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아시아 남성은 연약하며 무력한 존재로 여겨졌고 반면에 아시안 여성은 고도로 성애화된 이성애적 존재로 여겨졌어요. 이 상황에서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우면서 퀴어 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겠죠. 
 

하지만 제가 퀴어라면 퀴어 운동을 해야 하고 또 퀴어 공동체를 책임져야 된다고 믿어요. 아직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다른 사람과 공동체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운동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김정은 

김정은님은 2009년, LA에 위치해 있는 포모나 대학(Pomona College)을 졸업하고 1년동안 한국 활동을 배우고 국제 연대 활동을 하고 싶어서 작년 7월달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대학생 때는 소수민족 단체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전공은  뇌과학과 Asian American Studies라는 소수민족 공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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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5 21:45 [Edit/Del] [Reply]
    소수자의 역활이 중복되면(장애우이면서 동성애자인경우처럼) 또 다른 관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님의 활동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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