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소수자와 노동

[성소수자 노동] 선생님, 단결해요!

by 행성인 2025. 4. 19.

평과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사진 출처: Unsplash, Markus Winkler(https://unsplash.com/ko/@markuswinkler)

 

 

많은 교사들이 싫어할 말로 시작해 보겠다.

교사는 노동자다.

하지만 교사들은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법에 의해 제한당한다. 학생들에게 노동권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했던 교사인 나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었다.

첫 학교에 출근하던 어느날 느꼈던 감정을 “정상성의 냄새”라 칭하겠다. 학생이던 내가 느꼈던 것보다 더 강한 정상성의 냄새를 느꼈다. 학생이던 시절에는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더 다양할 수 있었지만 학교 안에서 교사로서의 나는 비슷한 학력과 비슷한 형태의 청소년기 및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됐다.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며 나는 분명 정상성이 아닌 것을 선택해도 된다는 사실을 느꼈을텐데 다시 정상성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감각을 느꼈다. 다양한 연령대의 동료 교사들이 선의로 하는 말들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어떤 학생들은 내 외모를 보고 이것저것 판단하고 싶어 했다. 첫 출근 후 어느 학생들이 나에 관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외모에 대한 말이었다. 꾸미지 않은 것을 보니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고, 이 교과 교사는 다 그렇냐고… 
학생들은 나나 자신들의 사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성연애나 이성결혼을 주제로 많이 꺼낸다. 여고나 남고에서는 연애 못하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자신들같이 공학에 다녀야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또 내가 어떤 반지만 끼고 있어도 결혼반지냐고 물으면서 내 남편(나는 여성으로 패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학생들 가운데 전형적인 무성애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학생A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학생에 대해 전형적인 무성애자의 모습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내가 무성애 관련 활동을 많이 했고 그 활동으로 만난 무성애자 중 상당수가 공유하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관련된 암시가 될 수 있는 언행을 하기도 했다.

A는 학기 초에는 굉장히 유쾌한 학생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학교를 힘겨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A를 볼 때마다 내가 처음 정체화하던 시기가 생각났다. 특히나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도 무성애라는 정체성을 설명해야 했던 내가 느꼈던 외로움이 함께 떠올랐다.

이미 빛 바랜 외로움이지만 그것과 관련된 감정은 여전히 많은 데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나는 씁쓸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동료 교사가 결혼을 하며 경조사 휴가를 쓰던 시점에 그걸 느꼈다. 가족 돌봄 휴가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포함하여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더 알아갈수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걸 누릴 수 있을까?”

어쩌다가 이익 관계가 맞는 법적 남성과 만나 혼인신고를 한다면 누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원가정과 독립적으로 구성된 관계를 이유로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은 역시 단체행동을 통해 쟁취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향했다가 단체행동권을 법으로 제한당한다는 현실만 떠올랐다.

실은 법이 나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아니든 단체행동을 해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 실제로 얼마냐 해봤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역시 더 많은 노동자가 단결할 때 더 쉬이 얻어낼 수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자신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과 단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