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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by 행성인 2025. 5. 22.

 

지오

 

5월 연휴에 셀프 모노륨 장판 깔기에 도전했습니다. 바닥 습기로 장판에 곰팡이가 올라오는 문제가 있었어요. 재계약을 하면서 누수가 의심되어 집주인에게 말하니 당장 바닥공사를 하기에는 문제가 커지니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더라고요. 겨울을 지나며 곰팡이는 점점 올라오고 집주인은 제대로 수리해줄 것 같지 않고 앞으로 1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야한다면 그때까지라도 좀 깨끗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체가 아닌 덧방시공을 선택했습니다.(기존 장판 위에 새 장판을 까는 것) 그러면 아래 습이 더 차오를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추천할 방법은 아니라지만 다음 계약때까지 임시방편이라도 조치를 취해야 하니까요. 교체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 계약까지만 깨끗하게 지내보자는 심산인지라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셀프 시공을 선택하게 된 것이죠. 물론 스스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뭐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힘들었어요. 왜 전문가가 필요한지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과정은 간단해보여요. 

 

1. 기존 가구를 옮겨 공간을 비웁니다.

2. 장판을 깔 방향을 정하고 길이를 재요.

3. 30센티미터 여유를 두고 장판을 자릅니다. 바닥에 깔고 모서리 부분을 맞춰줍니다. 본드칠은 하지 않았어요. 

4. 그 다음 장판을 잘라서 이전 장판 끝부분에 겹쳐서 깔아줍니다. 무늬를 맞춘 후 겹친 부분을 잘라냅니다. 이음부분에 용착제를 발라줍니다. 

5. 이와 같은 과정을 공간에 맞춰 반복합니다.

 

쓰고 보면 간단한데 무려 17시간이 걸렸어요. 물론 가구를 옮기고 그참에 먼지 털고 닦느라 시간이 더 소요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이토록 오래 걸린데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었어요. 먼저 장판을 주문할 때 치수가 잘못 전달되어서 제가 깔려고 했던 방향과 달리 재단이 되어 온 것이었어요. 제가 깔려던 방향은 가로여서 4개로 재단이 되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길쭉하게 2개로 재단이 되어 와서 다시 맞춰 재단을 해야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사실 이게 가장 큰 원인인데요) 집의 생김이 이리 마구잡이일 줄을 미처 몰랐던 것이죠. 주방 쪽이 거실보다 폭이 좁고 방문이 있는 곳마다 각이 져 있어서 그에 맞춰 절단을 하느라 정말 애를 먹었어요. 심지어 옛날 집이어서 그런지 왜 벽이 직선이 아닌 것이죠? 바닥이 완전히 평평하지 않고 벽과 모서리도 굴곡이 있는 거에요. 장판 무늬의 끝과 끝이 안맞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죠. 황당하고 짜증나고 오기가 생겼다가 지치고.. 몇번이나 입술을 꽉 물었나 몰라요. 아, 내가 이 집의 생김을 모르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구나! 처음 이사온 날 장판을 깔아준 기사님들이 왜그리 한숨을 푹푹 쉬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죄송함과 존경심이 일더라고요.

 

이틀에 걸쳐 깔고 나니 삭신이 쑤십니다. 보람은 글쎄요. 살면서 무신경하게 지나친 것들이 다시 보였던 일이 얻은 것이라 할까요. 이 집에 묻어온 때와 흔적, 얼룩 같은 것들을 만져본 경험이 남는 것 같아요. 하루이틀 지나면서는 볼 때마다 정도 더 붙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결과물도 만족스러워요. 1년이 아니라 3년은 더 살아야할 것 같아요.

 

 

 

오소리

 

행성인은 지난 5월 17일, 아이다호를 기념하며 행동하는 성소수자 버스를 운행하여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5.18에 맞춰 광주에 방문한 건 처음이었는데, 무지개와 함께 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무박 2일은 무리한 일정이었을까요… 이후 걸린 감기로 한동안 고생했네요. 🤧 이제 조금 살만해졌어요. 요새 일교차가 심한데, 여러분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셔요. 

 

지난 5월 25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올해로 벌써 6주년을 맞이했네요. 평소 같았으면 근교로 놀러가거나 하다못해 외식이라도 했을텐데, 올해에는 성소수자 인권포럼과 딱 겹치고 말았어요… 😥 이번 포럼 참 유익하고 좋았는데요!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건 아쉽네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지면을 빌려 결혼기념일 소식 공유해보아요 😉

 

 

 

남웅

 

에너지가 10이 있다고 하면, 활동에 10을 다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 음주생활과 더불어 미디어에 과포화 생활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덕에 기억력이 퇴화하고 가끔 실수하는 일은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헐렁거리는 편을 택하기도 한다...못됐나?

 

기억하는 건 그만큼 힘이 드는 일이다. 또 그만큼 마음을 두고 집중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반성을 안 할 수 없지만, 차라리 기록을 더 잘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잘하는 걸 더 잘해보자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활동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믿을 구석이 있어서다. 동료가 괜히 있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감사합니다 동지여러분), 개인이 실수를 하더라도 완충하거나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활동의 구조와 환경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싶은 '진심어린' 마음 같은 거다(오랜 활동으로 뻔뻔해짐).

 

그렇다고 실수가 잦고 많아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노파심)

 

왼) 이태리에 팔렸다 (나 말고 박상영님 소설 '믿음에 대하여' 이탈리아판 표지로 이우성 작가의 그림이...놀라서 제보해준 띵동 동지들 고맙습니다) / 오) 행성인 후원영상 썸네일이 저렇게 뜬다고...놀라서 제보해준 HIV/AIDS인권팀원님들 고맙습..이다 고맙습)

 

 

호림

 

 

뉴욕에서 아드보카시 위크 2025 참여자들과 함께 

 

지난 5월 9일부터 18일까지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뉴욕에 기반을 둔 국제 성소수자 운동 단체인 아웃라이트 인터네셔널에서 주최하는 아드보카시 위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인데요. 아드보카시 위크는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전세계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초대해 유엔의 다양한 기구들과 각 국가의 유엔 대표부를 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옹호 활동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유엔이라는 다국 간 협력 체계 자체가 위기에 놓여있고, 전세계적으로 안티 젠더(anti-gender), 안티 라이츠(anti-rights) 반동이 기승을 부리고, 그 영향으로 성소수자 운동의 자원이 위축되는 시기에, 뉴욕에서 유엔 기구와 각 국가 대표부를 대상으로 성소수자 아드보카시를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아주 복잡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국제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의 전반적인 추세는 진전을 그리는 듯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과 나라의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요. 그래서 지금처럼 각 지역과 나라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고, 성소수자 운동의 자원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마음이 힘든 한 주였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우울하고 비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참 많은 일주일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세계 곳곳에서 온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활동가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에서 전통과 종교의 이름을 한 억압, 정치적 불안과 사회문화적 위기까지, 운동을 둘러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위한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수 많은 이야기를 원 없이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유엔 본부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인권 옹호를 하는 활동가들의 오랜 헌신과 끈기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인권의 후퇴를 막기 위해 유엔 기구와 각 국가 대표부 내에서 노력하는 이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소중한 시간이었구요. 

 

운동이 가장 바쁜 시기에 출장이라 큰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국제 행사/프로그램보다 많은 것을 얻어 온 일주일이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어떤 배움은 잊혀지고 또 어떤 경험과 기억을 희미해지겠지만, 뉴욕에서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이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