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
5월 연휴에 셀프 모노륨 장판 깔기에 도전했습니다. 바닥 습기로 장판에 곰팡이가 올라오는 문제가 있었어요. 재계약을 하면서 누수가 의심되어 집주인에게 말하니 당장 바닥공사를 하기에는 문제가 커지니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더라고요. 겨울을 지나며 곰팡이는 점점 올라오고 집주인은 제대로 수리해줄 것 같지 않고 앞으로 1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야한다면 그때까지라도 좀 깨끗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체가 아닌 덧방시공을 선택했습니다.(기존 장판 위에 새 장판을 까는 것) 그러면 아래 습이 더 차오를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추천할 방법은 아니라지만 다음 계약때까지 임시방편이라도 조치를 취해야 하니까요. 교체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 계약까지만 깨끗하게 지내보자는 심산인지라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셀프 시공을 선택하게 된 것이죠. 물론 스스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뭐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힘들었어요. 왜 전문가가 필요한지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과정은 간단해보여요.
1. 기존 가구를 옮겨 공간을 비웁니다.
2. 장판을 깔 방향을 정하고 길이를 재요.
3. 30센티미터 여유를 두고 장판을 자릅니다. 바닥에 깔고 모서리 부분을 맞춰줍니다. 본드칠은 하지 않았어요.
4. 그 다음 장판을 잘라서 이전 장판 끝부분에 겹쳐서 깔아줍니다. 무늬를 맞춘 후 겹친 부분을 잘라냅니다. 이음부분에 용착제를 발라줍니다.
5. 이와 같은 과정을 공간에 맞춰 반복합니다.
쓰고 보면 간단한데 무려 17시간이 걸렸어요. 물론 가구를 옮기고 그참에 먼지 털고 닦느라 시간이 더 소요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이토록 오래 걸린데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었어요. 먼저 장판을 주문할 때 치수가 잘못 전달되어서 제가 깔려고 했던 방향과 달리 재단이 되어 온 것이었어요. 제가 깔려던 방향은 가로여서 4개로 재단이 되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길쭉하게 2개로 재단이 되어 와서 다시 맞춰 재단을 해야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사실 이게 가장 큰 원인인데요) 집의 생김이 이리 마구잡이일 줄을 미처 몰랐던 것이죠. 주방 쪽이 거실보다 폭이 좁고 방문이 있는 곳마다 각이 져 있어서 그에 맞춰 절단을 하느라 정말 애를 먹었어요. 심지어 옛날 집이어서 그런지 왜 벽이 직선이 아닌 것이죠? 바닥이 완전히 평평하지 않고 벽과 모서리도 굴곡이 있는 거에요. 장판 무늬의 끝과 끝이 안맞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죠. 황당하고 짜증나고 오기가 생겼다가 지치고.. 몇번이나 입술을 꽉 물었나 몰라요. 아, 내가 이 집의 생김을 모르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구나! 처음 이사온 날 장판을 깔아준 기사님들이 왜그리 한숨을 푹푹 쉬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죄송함과 존경심이 일더라고요.
이틀에 걸쳐 깔고 나니 삭신이 쑤십니다. 보람은 글쎄요. 살면서 무신경하게 지나친 것들이 다시 보였던 일이 얻은 것이라 할까요. 이 집에 묻어온 때와 흔적, 얼룩 같은 것들을 만져본 경험이 남는 것 같아요. 하루이틀 지나면서는 볼 때마다 정도 더 붙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결과물도 만족스러워요. 1년이 아니라 3년은 더 살아야할 것 같아요.
오소리
행성인은 지난 5월 17일, 아이다호를 기념하며 행동하는 성소수자 버스를 운행하여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5.18에 맞춰 광주에 방문한 건 처음이었는데, 무지개와 함께 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무박 2일은 무리한 일정이었을까요… 이후 걸린 감기로 한동안 고생했네요. 🤧 이제 조금 살만해졌어요. 요새 일교차가 심한데, 여러분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셔요.
지난 5월 25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올해로 벌써 6주년을 맞이했네요. 평소 같았으면 근교로 놀러가거나 하다못해 외식이라도 했을텐데, 올해에는 성소수자 인권포럼과 딱 겹치고 말았어요… 😥 이번 포럼 참 유익하고 좋았는데요!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건 아쉽네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지면을 빌려 결혼기념일 소식 공유해보아요 😉
남웅
에너지가 10이 있다고 하면, 활동에 10을 다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 음주생활과 더불어 미디어에 과포화 생활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덕에 기억력이 퇴화하고 가끔 실수하는 일은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헐렁거리는 편을 택하기도 한다...못됐나?
기억하는 건 그만큼 힘이 드는 일이다. 또 그만큼 마음을 두고 집중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반성을 안 할 수 없지만, 차라리 기록을 더 잘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잘하는 걸 더 잘해보자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활동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믿을 구석이 있어서다. 동료가 괜히 있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감사합니다 동지여러분), 개인이 실수를 하더라도 완충하거나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활동의 구조와 환경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싶은 '진심어린' 마음 같은 거다(오랜 활동으로 뻔뻔해짐).
그렇다고 실수가 잦고 많아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노파심)
호림
뉴욕에서 아드보카시 위크 2025 참여자들과 함께
지난 5월 9일부터 18일까지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뉴욕에 기반을 둔 국제 성소수자 운동 단체인 아웃라이트 인터네셔널에서 주최하는 아드보카시 위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인데요. 아드보카시 위크는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전세계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초대해 유엔의 다양한 기구들과 각 국가의 유엔 대표부를 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옹호 활동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유엔이라는 다국 간 협력 체계 자체가 위기에 놓여있고, 전세계적으로 안티 젠더(anti-gender), 안티 라이츠(anti-rights) 반동이 기승을 부리고, 그 영향으로 성소수자 운동의 자원이 위축되는 시기에, 뉴욕에서 유엔 기구와 각 국가 대표부를 대상으로 성소수자 아드보카시를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아주 복잡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국제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의 전반적인 추세는 진전을 그리는 듯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과 나라의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요. 그래서 지금처럼 각 지역과 나라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고, 성소수자 운동의 자원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마음이 힘든 한 주였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우울하고 비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참 많은 일주일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세계 곳곳에서 온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활동가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에서 전통과 종교의 이름을 한 억압, 정치적 불안과 사회문화적 위기까지, 운동을 둘러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위한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수 많은 이야기를 원 없이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유엔 본부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인권 옹호를 하는 활동가들의 오랜 헌신과 끈기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인권의 후퇴를 막기 위해 유엔 기구와 각 국가 대표부 내에서 노력하는 이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소중한 시간이었구요.
운동이 가장 바쁜 시기에 출장이라 큰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국제 행사/프로그램보다 많은 것을 얻어 온 일주일이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어떤 배움은 잊혀지고 또 어떤 경험과 기억을 희미해지겠지만, 뉴욕에서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이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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