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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by 행성인 2025. 8. 25.

 

지오

 

휴가 중입니다. 잘 쉬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예전에는 잘 공감이 안되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잘 쉬기 위해서는 집중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껏 늘어져 괜한 불안에 떨지 않으면서 쉬는 데 집중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이번 휴가는 그런 면에서 잘 보내는 것 같습니다. 생활을 규칙적으로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업무와 관련해서는 시간을 정해두고 처리하려고 했는데 습관적으로 텔레그램을 켜는 일이 조금은 줄더라고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온종일 일에 끌려다니는 듯한 기분을 벗어나는데 꽤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 동안 밀린 집안 일을 하고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냈어요. 연휴엔 동료들과 계곡에도 갔었죠. 어떤 날은 시리즈물 몇 편을 연달아 보면서 시간을 죽인다는 게 이런 걸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무료했지만 죄책감이 들지 않아서 휴가로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정동진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독립영화제 기간은 아니었지만, 독립영화관에 들러 단편영화도 보고 해수욕장에 들러 물놀이도 즐겼어요.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여름에 보내는 휴가의 마지막 주말을 만끽했습니다. 이제 다음주면 복귀하는데요. 잘 쉰만큼 일에도 집중을 잘 해야겠죠. 그 균형을 잘 찾아보고 싶어요. 

 

 

 

오소리

 

2015년 8월, 행성인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이제 꼬박 만 10년을 채웠네요. 한국 사람들이 유독 몇 주년을 기념한다죠? 그 중에서도 10단위 숫자를 각별히 챙기곤 합니다. 저도 괜시리 의미 부여해보며 지난 10년 전을 회상해보았습니다. 

 

그해 초, 막 대학을 떠나 취직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한창 행성인 활동에 재미가 들렸던 지라 행성인에서 상임활동을 하고 싶었죠. 하지만 연초만 해도 행성인에는 TO가 없었기에 주변 인권단체들을 기웃거렸습니다. 인근에라도 머물고 싶었거든요. 그렇지만 옆길로 새있는 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저를 뽑아주는 곳은 없었고… 😂  그러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되고, 드디어! 행성인 사무국에서 콜이 왔습니다. 상임활동하지 않겠냐고요. 그 전부터 꾸준하고 강하게 어필했던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말 열심이었거든요. 2013년 행성인에 가입한 이후부터 거의 모든 행성인 행사와 성소수자 인권 현장에 참석하는 성실함과 온갖 실무를 도맡아 하는 책임감을 보여주었죠. 대학을 떠남과 함께 학교 앞에 있던 자취방을 행성인 사무실에서 도보 5분 거리로 옮길 정도였으니, 뭐 말 다했죠. 😅 여튼, 제안을 냉큼 수락하고 그 때부터 행성인에서 상임활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첫 출근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행성인이 대흥동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된 때였는데요. 8층도 아니고 4층 소회의실을 사무실로 쓸 때였죠. 공간이 좁아서 제 책상은 싱크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어요. 파티션 하나 없이! (너무해!) 지금이라면 기함했을 배치지만, 그때는 제 자리가 생긴 것에 마냥 신났습니다. 첫날 제 업무는 새로 판 상담메일 계정에 수천 통의 기존 메일들을 일일히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상담메일만 골라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하루종일 눈이 빠져라 그것만 옮겼어요. ㅎㅎㅎㅎ 그래도 내가 뭔가 기여한다는 생각에 그저 뿌듯했습니다. 처음 출근했지만 업무 인수인계 같은 것도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체계 없이 엉망이었죠 🤣 알아서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죠. 실수도 하고, 헤매고, 상처도 받고. 하지만 그 고난한 배움의 과정조차 즐거웠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고들 하죠. 그 즈음 행성인 웹진에 제가 쓴 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집회, 기자회견, 토론회 등 거의 모든 성소수자 인권 현장의 스케치 기사를 남기는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더라구요. 10년 전 그때처럼 활동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그때는 정말 의욕만땅이었거든요. 지금은 일단 몸부터 안따라주네요 😂 

 

그때만큼의 활동력도, 의욕도 없지만 나는 왜 여전히 여기에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행성인 활동에서 갖는 뿌듯함, 10년 간의 관성,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즐거움, 위치한 자리에서 갖는 책임감, 활동의 성과를 통해 얻는 성취감, 행성인에 대한 애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소중함 등. 이제는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지 않나 싶습니다. 

 

활동 초반에 “네게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의욕만 앞서고 능숙하진 못해 자존감이 낮았던,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무렵의 제겐 상당히 상처가 된 말이었는데요. 지금에 와서는 비전이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여전히 저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손에 잡히는 일처리에는 능숙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능숙하지 못해요. 활동뿐만아니라 지금까지 삶을 그냥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뭔가 뚜렷한 미래를 그리지 않더라도 그저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단 내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다하면서요. 앞으로의 삶과 활동도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제 자리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때로는 관성적으로, 때로는 의욕을 가지고 신나게. 그렇게 물 흐르듯이 또 앞으로를 채워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10년 후,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뒤의 나는 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읽고 있을까요?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    

 

8년 전 오소리

 

 

이안

 

지난 번 첫 글에 소개드렸던 장애해방열사연극 경기순회공연(무려 5개 지역을 동서남북으로…)을 무사히 마치고, 월말에는 혜화에서 서울공연을 올리기 위해 막바지 준비중입니다. 무대공연은 고생과 성취가 정비례하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많은 일을 도맡을 재량이 없는데도 사무국에서 퇴근하고 나면 집에 가자마자 소파에 늘어집니다 😓 생각보다 오래도록 긴장하며 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 한주 또 한 달… 조금씩 이 곳에 익숙해지는 것을 느낄 적마다, 부담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막막함이 조금씩 걷히는 것을 느낍니다. 막막했던 마음이 행성인에 있어서 든든함으로 채워질 때까지 성실히 자리해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저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대단히 신나게 놀고 그런 것은 아니고, 양양에 가 바다 구경도 하고 좋은 숙소에서 맛있는 밥 먹고 왔습니다. 셋이서 다녀왔습니다. 저는 폴리아모리이고, 두 짝꿍과 함께 가족이 되어가는 중이거든요. 휴가 겸 가족회의도 하고 왔습니다.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지낼 지 생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다 같이 지내고 싶지만 각자의 일과 삶의 터가 있는 지라 모든 조건을 만족할 곳을 찾기가 아주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아직은 낯선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함께 지내는 것을 남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지보다 일단 집 구하는 게 가장 어려운, 가끔 이런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현실이라는 거겠죠. 때가 왔을 때, 적절한 곳에서 오래 지내는 게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 가능한 오래오래요. 이사 자주 다니는 거 정말 너무 힘듭니다. 서울은 왜 이렇게 한 집에서 오래 지내기 힘든 걸까요? 여러분도 부디 집 걱정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남웅

 

여기저기 불러주고 남들 앞에 선 자리가 많은 요즘이었다. 미술검열 토론회〈미술, 검열, 제도〉에 검열당사자로 섰다가 다음날은 2025 셰어 후원파티 〈No Stigma Party : 낙인 없는 세상으로 조이하셰어〉에서 사회를 봤다. 이쁘게 입고 오라고 사준옷을 보란듯이 집에 모셔두고 다른 짐을 들고와서 한동안 정신 놓다가 기지를 발휘해 근처 옷가게에 아래 위 한세트 사고 아트박스에서 가위랑 소품을 구해다 이리저리 리폼해 입었다. 무대에서 섹드립만 날린 거 같은데 하는 동안 기분이 좋았던 건 행사의 관객도 무대도 셰어의 활동방향을 신뢰했던 덕이었겠지. 그다음주 월요일엔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 서울 오프닝에 검열규탄 기습시위를 하고, 그주 토요일에는 인디스페이스에서 기획한《한국 영화 안에서 운동의 언어는 어떻게 영화의 언어가 되는가》프로그램 〈연분홍치마 영화와 운동, 지속을 가능하게 한 것들: 연분홍치마 21년의 궤적〉대담자로 섰다. 나 아니면 누가 이 자리에 서냐고 농담처럼 호언장담했는데 실상은 재미담당이었다. 근래에는 돌봄과 애도를 주제로하는 각각의 연구에 인터뷰이로 섰던 결과물들이 연이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 밖으로만 돌았느냐. 행성인에서는 회원모임 '불편한 것을 말하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 아닙니다' 진행을 맡았고 8월 마지막 일요일 귀한 휴식을 반납하고 웹진을 발행중이다.(박수)(눈치챘겠지만 이 꼭지에 남기는 글은 매달 웹진 발행 직전에 쓴다.) 

 

이걸 굳이 남기는 건 여느 강의나 토론회보다도 다른 단체 동료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기념하고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면서 이후를 모색하는 자리에 함께 설 수 있어서다. 더불어 소소한 용기가 따르고 나혼자선 할 수 없는 과업을 함께 완수해서다.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요즘엔 허투루 활동하진 않았네, 복이 많구나 생각한다. 사사롭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던 활동들이 의미가 없지 않았다고, 돌아보면 이것들이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공동체를 만들어간 작업이었다는 걸 여러분도 나도 긴장 놓고 이야기하는 거. 그 공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니고(없다고는 안함) 설령 성공은 커녕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공동의 시간으로 남길 수 있는 거. 무엇보다 주어진 자리들을 뚝배기깨듯 미션 완수하는 후련함까지. 입병(문자그대로)만 좀 가라앉으면 좋겠다.  

 

 

호림

 

무엇보다 먼저 오버헤드프레스 22.5kg 들기에 성공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달 웹진에 글을 쓴 후에 “(그 무게를) 들게 되면 꼭 알려달라”는 말씀을 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이 소식부터 전하고 싶었어요. 저의 새로운 목표는 데드리프트 60kg 들기가 되었다는 말을 괜히 덧붙여 보면서요. 

 

요즘 고민하는 일은 다양한 호흡의 업무들을 잘 정돈하며 해나가는 일입니다. 꼭 활동가에게만 해당하는 것는 아닐텐데요. 특히 다양하고 이질적인 호흡의 일들을 저글링 해야하는 것이 활동가의 일상인 것 같습니다. 5년 후, 10년 후를 전망하며 해나가야 장기적인 과업도 보통은 1년마다 그 해의 세부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한 달, 일주일 단위로 쪼개서 점검해 나가기 마련인데요. 문제는 그 사이에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사안들이 끼어드는 것에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성소수자 혐오 선동 인사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추천하는 사태가 벌어진 이번주나,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처럼 말이죠. 그러면 다른 계획했던 일들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또 대응 활동에서 벗어나 밀린 일에 집중하려고 보면 다른 일의 기획과 실행에 착수할 시기이고, 그러다보면 어떤 일은 적기를 놓치고 또 다른 일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고 또 어떤 일은 결국 실행하지 못하고 지나가고 맙니다. 

 

이걸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지낼 때도 있지만, 요즘은 좀 나은 해결방법이 없을지 모색해보려는 중이에요.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일을 쳐내는 와중에도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 해야할 일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마감일이 언제인지 말고) 다른 기준은 없을까? 동시에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좀더 효율적인 회의 방식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참고할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업무관행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 속을 맴도는 요즘입니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지만 차근차근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며 남은 한 해를 보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