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국 게이 친구가 한국의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해 말하던 중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그들은 우리를 그토록 혐오하나요?” 이 대화에서 나중에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떠났던 그 교회의 예배 시간에 몰래 들어가곤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신이 우리를 싫어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고 해명했다. 


내 친구의 그런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아, 나는 그 당황스러움과 그들이 우리를 싫어하는 이유, 그리고 희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마도 신은 우리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내가 어떻게 그런 질문을 듣게 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1994년에 처음 한국에 왔다. 한국인 친구와의 우정 때문에 올 수 있었다. 학생이었던 그가 CTS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들어오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그를 알게 되었다. 그 사이에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신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다. 서보명은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CTS를 졸업한 많은 훌륭한 동문들과 만나거나 많은 대학과 세미나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또 다른 친구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존경해온 제임스 래니James Laney인데, 그는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한국에 왔다. 두 친구 모두 한국과 한국 사람들, 문화 및 역사를 깊이 사랑했고 그들의 한국 사랑은 전염성이 있어서 나 역시 한국과의 사랑에 빠져버렸다.  


2001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나는 늘어난 한국의 동문들과 친구들을 통해 여전히 교회와 학계의 옛 친구들을 비롯해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또한 지금은 CTS 학부의 동료 교수로 있는 서보명의 도움으로 한국의 동성애자 단체를 만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교회가 동성애 혐오라는 독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교회 지도자들이 사회와 교회의 변화를 옹호하도록 하기 위해, 신학교에서 게이/레즈비언 연구를 해왔다. 몇 년 간 나는 신학교에서 전세계 학생들, 특히 한국 학생들과 더불어 같은 신학교의 게이/레즈비언 학생연합을 위한 상담 교수 역할을 했다. 서보명 교수는 나의 그러한 역할을 알았고  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투쟁에 대해 내가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친구사이’와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두 단체와 만남을 가졌다. 특히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그들이 후원한 감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동성애 관련 컨퍼런스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나를 초청해줬다. 동성애라는 주제로 그런 식의 컨퍼런스를 한 것은 한국에서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001년 9월에는 퀴어 문화 축제와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초청해줬다. 그것은 멋진 경험이었으며 또한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한국에서의 투쟁과 행복한 교류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줬다. 나는 거의 매년 한국을 다시 방문하여 한국 교회의 친구들과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계속 만나왔다. 교회 친구들이 내가 한국 동성애자들과의 교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나는 확신해왔다.      

단언컨대, 우리 교회 친구들은 내가 한국의 동성애자들과 교류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언젠가는 그 친구들이 한국 LGBT들의 완전한 인권을 지지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체적이고도 극적이게 보여줄 기회를 가질 것이다. 이러한 꿈은 천천히 실현 될 것이다. 이번 주에 나는 한국의 동성애자들과 연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애쓰는 기독교 학자들과 목사들이라는 두 단체를 만났다. 그들은 곧 교회 토론에서 좀 더 공적인 화제를 만드는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나의 글 일부를 출판할 예정이다. 이것은 나의 한국 동성애자 친구들이 해답을 찾는데 있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동성애의 실천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동성애를 아주 싫어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말들과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 그들이 쓰는 공포와 혐오의 언어를 알고 있다. 나는 전에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보수주의 교회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일단 한국에 처음 신교도가 소개된 때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을 사랑한 선량한 사람들이었으며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한국인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그들은 엄청난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일반 사람들에게 더 나은 의료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또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왜곡된 기독교의 계승자들이었으며 그들이 그런 교회를 발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퍼트리는 일을 주도했다. 19세기에 (혹은 훨씬 이전부터) 미국의 신교도는 부당한 구조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남부 지방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그곳에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왔다. 남부 지방은 인종주의에 기반한 노예제와 제도적인 백인 우월주의의 교향이었다. 현재 이러한 구조들은 인종이나 조건에 관계없는 모두를 위한 신의 사랑이라는 복음에 분명 위배되는 것이다. 복음주의 목사들은 죄와 구원의 장소로서 내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정의롭고 관대한 신의 통치가 도래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대신에 그들은 예수와의 사적인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 모든 구조적인 부당함은 내버려뒀다. 실제로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복음에 대한 배반 행위라고 생각하고 또 말했다.


오늘날 이것은 한국 신교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미국 선교사들은 “복음전도”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성경에서 일부(마가복음과 누가복음)를 번역했고 그 복음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사람들, 즉 민중에게 전파되었다. 그리고서 교육과 의료 봉사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실제 삶 - 사적인 삶과 더불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삶 - 과 관련이 있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중의 억압이 복음과 대립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나중에 한국이 일제 통치를 받았을 때는 그것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로마 제국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즉,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급진화되어 갔다. 선교사들은 그런 사실이 매우 불편했고 그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민중의 기독교를 사람들이 더욱 편안하게 여기는 기독교로 대체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통치 하에서 그들은 권력자들에게 골칫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더욱 개인적이고 내적인 독실함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복음주의 캠페인을 시도했다. 따라서 사람들의 깊은 종교심은 세상의 변화로부터 멀어진 채 천국을 갈망하는 치열한 내적 독실함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구원이 내적이고 개인적이며 사적인 것에 제한되자, 또한 죄와 그로부터의 구원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성적 욕망과 행동은 죄에 대한 언급의 초점이 되었다. 누군가의 성적 욕망과 수행보다 더욱 개인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뒤이어 이러한 사실은 성적 욕망과 수행의 가장 위협적인 왜곡으로서의 동성애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복잡한 이야기이고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개혁 기독교가 결혼과 가족의 가치에 대해 강조해오면서, 그것은 기독교 제도와 프로파간다의 수사학에 있어 점차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왜냐하면 복음 예수는 결혼과 가족 가치에 매우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과 가족 가치의 확신은 기독교가 사회의 도덕적 개선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해왔고 또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되어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매우 이상한 동맹이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매우 영향력이 있었다. 서구 열강들이 자신들의 제국적인 식민 지배 계획을 실행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암흑과 미신 속에 사는 세계에 서양 문명의 특혜를 가져온 것으로서 정당화했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사들은 그러한 제국적 프로젝트의 도구로서 이용되곤 했다. 물론 많은 선교사들이 그러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최악의 형태를 개인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그 프로젝트를 독려하는 폭력과 탐욕에 영웅적으로 대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뒤쳐진 사람들에게 문명의 특혜를 제공했다고 느끼거나 말하곤 했다. 가끔씩 이것은 여성들이 새로운 존엄성을 발견했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관리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대면한 사람들의 성적 모랄을 언급하며 개혁해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일종의 “섹스 경찰” 이었다.


그들이 특별하게 초점을 맞췄던 것들 중에 하나가 동성애였다. 이것은 결혼과 가족 가치라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가치를 어기는 최악의 형태처럼 보였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환기시켜 온 것이 바로 동성애혐오이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작년에 델리 대법원에서 동성애 반대 법을 번복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런 법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그것은 인도 자체 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19세기에 영국의 제국 정책을 위한 정당화의 일부로서 영국에 의해 부과되어 온 것이다. 봐라. 우리가 인도 국민들을 더욱 도덕적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당신들은 제국 프로젝트에서의 우리의 탐욕과 폭력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 말경, 일본에서도 발생했다. 동성애를 수용하던 전통이 서구 과학자들, 군 지도자들, 기독교 지도자들의 연대 행위에 의해 갑자기 부끄러운 전통이 되었다. 동성애혐오는 서구 제국주의와 기독교 도덕 정책 사이의 동맹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글 : 테드 제닝스 _ 미국 시카고 신학대

번역: 동성애자인권연대 김경태



동성애자인권연대는 테드 제닝스 교수의 방한에 맞춰 특별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테드 제닝스 교수는 2007년 성소수자 진보포럼에 이어 3년 만에 만나는 한국의 성소수자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한국 성소수자들의 친구, 성소수자 운동을 지지하는 테드 제닝스 교수의 강연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Why do they hate us? (1)

 


Not long ago a Korean gay friend, speaking of Korean Christian Churches, Catholic and Protestant, asked me: Why do they hate us so much? Later in the conversation he confessed to occasionally slipping into a worship service of the church he had left when he became openly gay: he explained, sometimes I think that maybe God doesn’t hate us.


My friend’s words have haunted me and tonight I want to address the perplexity, why do they hate us, and the hope: maybe God doesn’t hate us.

But first I should say something about how I came to hear that question and why it meant so much to me. 


I first came to Korea in 1994.  I came because of friendship.  One friend was a Korean student I had come to know as he completed work at CTS on a Masters degree and was preparing to enter the PhD program.  In between he had decided to return to Korea where he studied at Hanshin Presbyterian graduate theological school.  Bo Myung Seo was to be my guide as I made contact with many wonderful alumni who had graduated from CTS and so spoke at many universities and seminaries in Korea.  The other friend was someone I had long known and admired, James Laney, who had been named ambassador to Korea.  Both of my friends had a deep love of Korea, its people, its culture, its history and their love for Korea was infectious and so I too fell in love with Korea.


When I returned in 2001 I continued to meet with many friends, new and old in church and academic circles here in Korea through a growing circle of alumni and friends here.  But also through the help of BoMyung Seo,   who was now my colleague on the faculty of CTS,  I also met with gay and lesbian groups here in Korea. Years before I had started a program in Gay and Lesbian studies in my seminary to help the church overcome the poison of homophobia and to enable Christian leaders to be advocates of social and ecclesial transformation.  For several years I was the faculty advisor both for international, especially Korean ,students in my seminary and for the gay and lesbian student association in the same seminary.  Professor Seo knew of that work and thought I should get to know the struggle of gay and lesbian people in his beloved Korea.  So I met with people in two groups here: Just Friends and the Human Rights group.  The latter group, which today has the name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in Korea, invited me to speak at a conference they sponsored at Kamshin Methodist Graduate theological School on homosexuality.  I think it was the first time the subject of homosexuality had been addressed in such a setting.  And they also invited me to be present for the cultural festival and the gay pride march in September of 2001.  It was a wonderful experience.  And it began my happy association with the gay and lesbian struggle for human rights in Korea; I have returned many times, nearly every year and have continued to meet both with my friends in the Korean Church and my friends in the gay and lesbian movement.  I have made sure that my church friends know that I am proud of my association with gay and lesbian people in Korea.  I have the hope that one day they will be advocates for the full human rights of LGBT people in Korea;  that they will have a chance to show concretely and dramatically that they do not hate homosexual people.  Slowly this dream is coming true.  This week I have met with two groups of Christian scholars and pastors who are eager to find ways to be in solidarity with gay and lesbian people in Korea, and soon they will be publishing some of the things I have written that they think might be helpful in making these issues more public in church discussions.  This is a beginning to tan answer to my Korans gay friend: for not all Christians do hate gay and lesbian people, not all reject the practice of homosexuality.


But I know that many leaders of Christianity in Korea do sound and act like they do hate homosexuality.  I know the words they use and the arguments they deploy, the language of fear and loathing that they use.  For I have heard it all before: it comes from the reactionary churches of the US.


In part this goes back to the introduction of protestant Christianity into Korea.  Many of the early missionaries were fine people who fell in love with Korea and wished to share a message of hope and love with the people.  They worked to bring better health and education to the common people often at great personal sacrifice. But many of them were also heirs to a distorted version of Christianity that they had not invented but of which they became the agents.  In the 19th century (and even before) protestant Christianity in the US had become afraid of challenging the structures of injustice.  This was perhaps especially true in the Southern part of the US from which most missionaries came.  The South was the home of racial slavery and then of institutional white supremacy. Now these structures were obviously contrary to the Gospel of God’s love for all regardless of race or condition.  Evangelical preachers avoided talk of social and structural sin by focusing on the inward and the personal as the place both of sin and of salvation.  Instead of speaking of the coming of God’s reign of justice and generosity they spoke of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Jesus that left all the structures of injustice in place.  Indeed they often thought and said that any attempt to change the world was a betrayal of the Gospel.


Now this had important effects in Korean protestant Christianity.  At first American missionaries could have no direct role in “evangelization” they translated parts of the Bible (the Gospel of Mark and then the Gospel of Luke); these were carried to the people, the minjung, in a language they could understand.  And then education and health care. But the difficulty was that when common people read the Bible they understood that this had to do with real life;  not only personal life but also economic and political life.  They could see that the oppression of the minjung was contrary to the gospel and they could later notice that when Japanese imperial rule came to Korea that this had some resemblance to the Roman Empire that had crucified Jesus.  That is, the people were becoming socially and politically radical through reading the Bible.  The missionaries were very uncomfortable with this, they regarded it as dangerous.  And so they sought to substitute a Christianity with which they were more comfortable for the Christianity of the people.  In consequence, under Japanese rule, they introduced evangelistic campaigns that sought to turn the people toward a more personal and interior piety that would not get them into trouble with the powerful.  Thus the deep religious feelings of the people were directed away from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and toward an intense interior piety that yearned for heaven.


Now when salvation is restricted to the interior, the individual and the personal then this means that talk of sin, that from which we are saved, will also have the character of the individual and the personal.  Thus sexual desire and behavior becomes the focus of talk of sin, for what is more personal that one’s sexual desire and practice?


This in turn will make possible an attack upon homosexuality as the most dangerous distortion of sexual desire and practice.


This is a complicated story and I can only summarize it here.  Since the reformation Christianity had placed an emphasis on marriage and family values.  This became an increasingly important part of the rhetoric of Christian institutions and propaganda.  This is very odd of course because in the Gospels Jesus is very critical of marriage and family values.  But an affirmation of marriage and family values had become a way of talking about how Christianity made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the moral betterment of society and so was necessary to society.   In retrospect it was a very strange alliance.  But it was also very effective.  When the Western powers embarked upon their own imperial and colonial project they justified this as bringing the benefits of western civilization to a world dwelling in darkness and superstition.  And Christian missionaries often became instruments of that imperial project.  Of course,  many of them did not personally approve of the worst forms of that colonialism and imperialism and sometimes they engaged in heroic opposition to the violence and greed that motivated that project.  But they too often felt and said that they were bringing the benefits of civilization to backward people.  Sometimes this meant that women found new dignity; that the poor received health care and education. But it also meant that Christians felt that they had to address and reform the sexual morals of the people they encountered.  So they became a sort of “sex police” as well. 


One of the things that they particularly focused on was homosexuality.  This seemed to be the worst form of a violation of marriage and family values, something you still hear today.  So one of the things that Christians brought with them was homophobia.  For example in India last year the supreme court in Delhi overturned a law against homosexuality.  Now where did that law come from?  It didn’t come from India itself.  It had been imposed by the British in the 19th century as part a justification for their imperial policies: see we are making the people of India more moral and that means you should not criticize us for our greed and violence in the imperial project.  Something similar happened in Japan as late as the end of the 2nd world war: a tradition of acceptance of same sex love suddenly became shameful because of the joint action of western scientists, military leaders and Christian leaders.


Homophobia has been brought to many parts of the world through an alliance between western imperialism and Christian moral politics.



Ted Jen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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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
    2010.05.27 17:52 [Edit/Del] [Reply]
    매우 중요한 사실들, 중요한 고리들을 알려주는 글이군요. 테드는 역시 멋지심 ㅎㅎ
    다음 글이 기대되요!!
  2. 수훈
    2010.05.28 08:43 [Edit/Del] [Reply]
    일부 선교사들의 왜곡된 기독계승이란 표현에 많은부분 공감이 됩니다.

    유독 우리나라 개신교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다른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힘든
    강성 & 배타적 보수주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고, 그 강성 보수성은 한국 로칼라이징 되면서 더욱 강한 성격으로
    들어나는듯 합니다.
  3. 2010.05.29 00:05 [Edit/Del] [Reply]
    기독교 학교에 다니면서 호모포비아적 태도를 접할 때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숨기고 있으니 문제되는 일은 없으면서도 어느 때는 굉장히 불안하지요. 이글을 읽고 그럼 교회 외부에서 교회 내부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4. 한결
    2010.06.07 19:59 [Edit/Del] [Reply]
    아아,, 지난 토요일 캠페인때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던 분중 한분이 바로..!
    아아.. 이제서야 알게되었네요...

    10일이 중요한 모의고사 날이라.......
    꼭 한번 듣고싶은데... ㅠㅠ... 아아... 글이라도나마 더 듣고싶네요.. ㅠㅠ..
    다음호 기대할게요!!
    • 나라
      2010.06.08 15:02 [Edit/Del]
      맞아요 그 할아부지! ㅋㅋㅋ 10일에 오면 좋을텐데 아쉽게 됐군요. 그래도 다음호에 또 글이 실리고 계속 글을 보내주시니 다행이지요? ^^
  5. 은성
    2010.06.08 10:56 [Edit/Del] [Reply]
    아무래도 저도 교회에서 반주하고 하면서 저희엄마도 독실한 크리스챤이라
    아웃팅 당한 뒤에 너무 힘들었었는데. 특히나 교회에서도 그럴까봐
    정말 교회가 좀 더 맘을 열고 본다면 그렇게 나쁜것도 아닐꺼라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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