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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위로의 편지 - 저는 아직도 따뜻한 봄날을 기다립니다 -

by 행성인 2011. 4. 8.

위로의 편지
- 저는 아직도 따뜻한 봄날을 기다립니다. -

 

이 글의 초고를 쓰는 3월 29일, 제가 있는 곳은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꽃피는 춘삼월이라 누가 그랬던가요. 작년 3월 말에도 눈이 왔다는 이곳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또 눈이 올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 때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을 피우다’ 캠페인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이리도 사나운 날씨가 1년 내내 이어지는 곳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 했습니다. 제게 3월 말은 남쪽에서도 꽃이 피는 때고, 4월은 만발한 벚꽃을 아쉽게 바라보며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입대를 한지 어느 덧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육우당이 떠나간 지는 8년이 흘렀고요. 제가 세상과 단절되면서 사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육우당이 떠난 후로 세상은 그리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숨죽이며 살고 있으니까요.

 

일흔 명이 조금 넘는 병사들과 생활하는 이 좁은 부대에서도 저는 5명에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첫 사랑을 빼면 커밍아웃으로 누구와도 관계가 틀어진 적이 없기에 제게 따르는 행운에 늘 감사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것을 ‘행운’이라고 밖에는 달리 부를 수 있는 말이 없어 씁쓸합니다. 한 외국인 유학생은 자신이 게이라는 이유로 대학교 기숙사에서 강제 추방당했고, 어떤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해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9일, 17살이 된 한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에서조차 정체성을 비난당했고 끝내는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지금은 그 기사가 삭제되었다고 나오는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들 세상이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세상이 나아져서 제가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저에게 따르고 누군가에게는 따르지 않았던 운. 그런데 왜 우리는 안전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운의 보장이 필요한 걸까요? 왜 제게 따르는 운에도 온전히 감사만 할 순 없는 걸까요?

 

그 자살 기사를 읽고 19살에 생을 마감한 육우당이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같은 비극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었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존재로 위로를 받았듯이 저의 존재로 누군가가 위로를 받길 바라며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어도 할 수 있는 건 통탄과 묵념뿐일까요? 피기도 전에 떨어진 꽃봉오리를 보는 기분으로 세상의 풍파에 무덤덤해져야 하는 것일까요? 사진으로 밖에 본 적 없는 육우당의 얼굴을 어렴풋이 그리며, 저는 스스로의 무력함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곧 다가오는 그의 기일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입대한지 1년이 되는 날의 이틀 전인 4월 24일이지요.

 

가슴 아픈 선택을 추모하는 날이 다가오지만 ‘더 이상 슬픈 추모가 아닌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밝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취지로 진행했던 작년 캠페인처럼, 감당하기 힘든 무기력함도 생각보다 빨리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태롭게 흔들려도 꼭 붙들고 있던 세상이 바뀔 거란 확신, 죽음보다는 가치롭다는 생에 대한 믿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념. 저에게 중요한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서 저를 일으켜 세워준 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보게 되는 ‘희망에 찬 사람들’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그래서 제가 가진 생각들도 결코 고독한 싸움을 통해서만 얻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위로의 메일을 써주는 낯선 누군가가 있고, 자신의 힘듦을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고, 제 블로그의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트위터를 통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청소년 친구들도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었고요.

 

예, 이런 사람들이 는다 해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웃팅을 당해 곤경에 처했을 때는 당장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면, 찾아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저처럼요. 너무 개인적인 경험에만 치중한 생각일 뿐일까요? 하지만 제가 받았던 많은 메시지들을 돌이켜 보면 비단 제 생각뿐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무언가가 누군가의 삶을 다시금 찬란히 꽃피우게 할지도 모르지요.

 

이 글에서 쓰인 많은 가정문들이 나중에는 선언문이 되기를 상상해 봅니다. 고개를 돌려 바람을 맞는 순간 어느 덧 봄이 왔음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어느 순간 현실이 되어 있을 겁니다. 땅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덮인 눈 속에서도 이미 씨앗은 숨 쉬고 있으니까요.

 

아니마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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