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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HIV/AIDS 감염인의 진솔한 일상을 사진에 담다 -“헬로, 윤가브리엘” 사진전의 김준수 작가 인터뷰

by 행성인 2011. 5. 18.

HIV/AIDS 감염인의 진솔한 일상을 사진에 담다 -“헬로, 윤가브리엘” 사진전의 김준수 작가 인터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의 작업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김준수 작가의 “헬로, 가브리엘”의 작품들은 가브리엘과 준수작가의 끈끈한 신뢰와 애정이 드러나는 전시였다. 그 긴 시간동안 애정을 가지고서 가브리엘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가브리엘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한 그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헬로, 윤가브리엘" 사진전의 김준수 작가


인터뷰하기 전 작가 인터뷰 사진을 찍었다.


정숙-사진을 찍기만 하다가 찍히면 이상할 것 같다.


준수-(사진을 피하며) 낯설고 쑥스럽다.


나리-전시 잘 보았다. 10월에 HIV/AIDS에 관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 HIV/AIDS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관심이 많았다. 동성애자나 HIV/AIDS 감염인들과 같은 소수자나 소외계층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


준수- 소외계층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소수자들 인 것 같다. 이제 커뮤니티가 형성된 정도라 할까?


나리- HIV/AIDS 감염인들에게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준수-1997년 동성애자를 주제로 개인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과 친해졌다. 그러다 소개로 ‘버디’ 잡지 표지를 찍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이렇게 저렇게 이쪽사람들을 알게 되다가 친구사이에서 사진 강좌 부탁을 받았다. 그 강좌를 통해 종로 3가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반응이 좋았는지 HIV/AIDS감염인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그때 감염인 5~6명을 만났었는데 가브리엘도 그때 만나게 됐다.

그때 형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사진을 찍기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우연히 가브리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형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이 형에 대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형을 설득했다. 형도 나중에는 자신을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 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나리-동성애자들을 어떻게 찍게 되었나?


준수- 처음에는 별 의미없이 접근을 했던 거 같다. 그 당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내 작업에 그 시대의 이슈, 사회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시점에 등장한 이슈가 동성애였다. 이걸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동성애자를 찍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동성애자를 찍는 사진작가라는게 좋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나리- 작업을 하면서 소수자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준수-97년 개인전을 할 당시 이성애자들이 보기에 동성애자라고 하면 알고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성애자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해지더라. 나도 처음 작업할때는 그랬던거 같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보니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랑 똑같네’, 뭐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단지 성적대상만 다르고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HIV/AIDS감염인들도 그랬다. 처음에는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가브리엘 형에게도 말한 거지만, 난 형이 에이즈 환자라서 슬픈게 아니라, 형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게 더 슬프고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던거는 내가 에이즈는 당뇨병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치료제나 약값에 대한 이야기는 복잡해서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형이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형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니까 형이 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다고 했다.

나리-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준수 - 잘 관리만 하면.. 그런데 누구나 관리만 잘하면 오래 살 수 있으니까. 그건 다 똑같으니까. 죽음에 층이 있다면 가브리엘 형이 죽음과 조금 더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나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리 - HIV/AIDS는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질병이다. 아웃팅이 되거나 커밍아웃을 했을때 사회적으로 차별을 당한다. 그건 좀 다르지 않나?


준수 - 내가 전시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다. 사실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형이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다면 너무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는 형이 자신과 좀 더 소통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브리엘은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 사회로 나와 뭔가 할 수 있으려면 HIV/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형이 자신과의 소통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에이즈가 발견된 지 벌써 30년이다. 레이건 정부 때문에 이 병이 문란한 병 더러운 병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바로 잡아야 되지 않을까.


나리- 사실은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은데, 이 사회가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거 같다.


준수- 사실 형은 얼마나 이 사회에 나오기 싫겠냐? 사회에 나오면 어떻다는 걸 형이 더 잘안다. 이 전시를 통해 자신과 가브리엘을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이 보고 그 중 한명이라도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진 않다. 그러나, 내가 이 전시를 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형이 쉼터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그게 가장 불안했었다. 사실 그게 다른거다 나랑은. 형이 조금 이라도 나랑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리 -차별받을 이유가 없는데


준수- 혹시 이 전시가 블로그나 카페에 올라가 집주인이 볼까봐. 불안하다. 여전히


나리-가브리엘이 HIV/AIDS활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사진전에서는 활동가의 모습보다는 가브리엘이라는 개인의 일상 모습이 더 많이 보여진다.


준수- 활동하는 모습들이 훨씬 더 멋지고 많지만, 쉼터에만 있는 모습을 찍었다. 솔직히 매카니즘적인 면도 있었다. 환등기가 밖에서는 안보이니까...

쉼터의 공간. 형이 살고 있는 한 평이라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형이 쉼터에서 이렇게 사네. 활동가로서 여전히 훌륭하지만 한평 남짓한 이 공간을 보면서 더 많이 활동을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오해가 많은 말이지만...


나리- 예전에 외할머니와 환등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작업을 본적이 있다. 이번 작품과 비교해보자면, 그 작품에서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벽이랑 다르지 않은, 수동적인 모습이 보였다. 반면 이번 가브리엘은 사진에서 능동적인 모습이 보여진다.


준수- 어릴 적 외할머니와 살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셔서 그 모습을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리씨가 본 그 사진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내가 할머니의 상태를 케어할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외할머니가 나를 바라봐줬으면 해서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가브리엘 형의 사진은 리모콘을 든 사진이나, 나를 바라보는 사진이나, 카메라를 당당하게 응시하는 모습이라던가, 작은 거지만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 연출된 것도 있지만, 가만히 누워 있는 거 보다는 뭐라도 하고 있는 형을 찍고 싶었다.


나리- 작가노트에 작가 자신에게 있어서의 “환등기”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이번 전시에서 대부분의 사진은 환등기로 쏜 과거의 가브리엘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소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감염 이전 이후를 말하고 싶었던 건지, 과거의 사진(환등기로 보여준)과 어떤 다른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준수- 작업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찍는 건 순간이니까. 환등기를 틀어놓고 계속 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환등기에 비춘 자신의 과거를 보면서 가끔 형이 ‘ 아~ 나도 예전엔 이런 적이 있었다.’ 라고 생각을 하는 듯 한 모습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 자체가 형과 나에게는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나리- 환등기의 사진이 모두 과거다. 과거의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준수- 사진이 별로 없었다. 과거 사진이 더 많았어도 그 사진들을 다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형 스스로 주사를 놓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나는 기뻐서 그 사진을 일부로 등치시켰다. 처음 만났을 때 몸 상태가 굉장히 안좋았는데 스스로 주사를 놓을 정도가 되었다니...

그 사진은 꼭 넣고 싶은 사진이었다.


나리- 이 작은 사진들에서 가브리엘은 왜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있는가?


준수-의학적으로 한쪽 눈이 실명하면 고개가 기울여진다고 한다. 후유증 같은거다. 사회생활을 못하는게 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질병 때문에 눈이 실명한거지만.. 사실 이 사진들이 부담스러웠다. 질병 때문에 온 좋지 않은 모습이라서...그래서 일부러 작은 소품으로 만들어냈다.

(사진을 쳐다보며) 하지만 형이 이 전시로 얼굴을 드러낸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나 큰 용기를 낸 것 같다. 이 전시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이런 작업이 쌓이고 쌓이면 조금은 변화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나리- 전시를 보면서 고민이 들었던 부분은 가브리엘이 감염 전후의 별로 달라진게 없는, 감염전의 삶도 너무 힘든 상황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질병으로 더 삶이 힘들어진 면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과거 가브리엘의 모습이나 현재의 삶이 모두 힘든 삶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미래를 그리면서 행복해 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다.


준수- 형이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한다. 하늘을 보며 행복해하는 형의 모습이 몇 컷이 있는데,,,전시는 하지 못했다. 나리씨가 다음 전시에서 꼭 해주길 바란다. (하하)

사진작업에 어느 정도 재밌는 부분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볍게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 질병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 그러나 내 스타일만 고집하고 싶지는 않았다. 메시지 전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염 이전과 이후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형에게는 자신과의 소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준수- 처음에도 이야기 했지만, 난 이 전시를 통해 형이 자신과 세상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HIV/AIDS는 더러운 병 문란한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리- 앞으로의 작업계획은?


준수- 멋지게 포장을 해야할텐데...하하

이 전시는 상업적이지도 예술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누구는 이 작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한국에서 동성애자나 HIV/AIDS 감염인을 가장 가깝게 접근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정숙씨랑 친한데, 사진은 잘 못찍어, 근데 사진을 잘 찍는 누가 정숙씨를 찍는다고 생각해봐라. 정숙씨는 잘 찍는 사람보다 나랑 찍길 원할 거다...

내가 편하니까..잘 찍고 못 찍는 것은 다음 문제이다. 앞으로 가브리엘의 작업을 계속 하지는 않을거다. 가끔 형과 만나 술이나 한잔 하겠다.

나리- 가브리엘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준수- 어제 한 후배가 와서 이 작업은 형 혼자 한 게 아니라 가브리엘과 같이 작업한거다라는 말을 했다. 맞다. 이것은 정말 가브리엘과 함께 한 거다.

가브리엘에게 고생했다. 아니 같이 작업했으니까 수고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웃으며) 뭐 더 좋은표현이 없을까?


정숙-나는 가브리엘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준수- 축하...축하... 그래 그 표현이 좋겠다. 축하드립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나리- 계속 이 HIV/AIDS이슈가 가시화 되어서 작가님이 느꼈던 것처럼 HIV/AIDS 감염인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좋은 전시 보여주시길 기대 하겠다.


오늘 좋은 얘기 해주셔서 감사하다.


인터뷰 진행 -  나리
인터뷰 정리 - 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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