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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나. 나의 여자친구. 그리고 엄마와의 달고 쓴 여행의 기록 - 2편 암흑의 런던

by 행성인 2011. 8. 4.

암흑의 런던 – 만약 아직 요정이 있다면, 열에 일곱은 반드시 게이일 테지


여자친구와 엄마가 마침내 런던에 왔다.



그리고 나는 안개를 헤치며 저기 도버항에 이미 내려앉은 어둠의 기운을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채, 한없이 순진한 마음으로 뒤늦게 런던에 입성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처음 둘을 만난 순간은 반짝하게 기뻤지만, 이 셋의 여행은 도대체 우편엽서 사진처럼 진행될 수가 없었다.


오랜 만에 만난 여자친구와 엄마가 모두 반가웠지만, 도대체 아무것도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나와 여자친구는 제대로 된 포옹도 하지 못한 채 절친한 친구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수위를 고려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다시 만난 기쁨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어색함과 긴장감이 거기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서야, 겨우, 우리는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호텔 근처에 있는 뚱뚱한 아저씨들이 오후 4시부터 맥주를 마셔대면서 축구를 보는 펍에 갔다. 맥주를 시키러 간다는 핑계로 테이블에 엄마를 남겨두고, 나란히 낡은 맥주집 카운터에 나란히 서서 처음으로 손을 꼭 잡고 마음을 다해서 웃었다. 나는 행복했다. 여자친구는 행복했을까? 여자친구는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힘들다고 불평을 하셨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를 봐서 용서해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갑자기 함께 있을 수 있게 된 이 시간에 마음이 벅차올라서, 응응, 미안, 미안, 내용 없는 대답을 하고, 손을 잡았다. 그리고 셋이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고 햄버거를 먹었다. 엄마와 여자친구가 모두 내 접시에 무언가를 더 얹어 주었고, 나는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밥을 다 먹었다. 모두가 피곤해하는 밤, 우리는 침대가 세 개 있는 방에서 잠을 잤고, 여자 친구와 나는 각기 다른 침대에서 팔을 길게 뻗어 손을 몰래 잡고, 그리고 나서 잠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여자친구와 엄마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한 걸까? 문제는 결국 방이었다. 셋이 어떻게 잘 것인지를 두고, 이미 걱정을 하기는 하였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더욱 쉽지가 않았다. 첫날은 호텔에 방이 없어서 침대가 세 개 놓인 방에서 지냈지만, 둘째 날에는 다시 방을 둘로 나누어서 여자친구가 작은 싱글룸으로 옮겨갔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다, 오래된 호텔이 대부분 그렇든 난방이 썩 훌륭하지가 못했다. 엄마가, 날이 너무 춥다, 너희가 너무 재잘거려서 잠을 잘 못 자겠다, 카페트에서 냄새가 난다라는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안불안했다. 엄마를 배려해 호텔을 고르느라 런던 시내 숙박 시설에 관한 논문을 쓸 지경에 이른 여자 친구는 마음이 상했다. 결국 방을 바꾸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어느새 대화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급반전 되고 있었다.


금요일 오전 10시, 런던 피카딜리선 지하철에서는 티킹티킹, 똑딱똑딱, 시한폭탄이 터질 듯 말듯,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결국 중간에서 입장 정리를 제대로 못하는 나로 인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신 여자친구님께서는,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지금 당장 여행이든 뭐든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 너는 니네 엄마랑 여기 잘 있으라는 이야기를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했다. 저 건너편에 앉아 계신 엄마에게 제발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애절한 눈빛에 아랑곳 않고, 분명하고 또렷또렷하게 하셨다. 아, 여자친구님!


나는 한번 틀어지면 다시금 뭐든 되돌리기 어려운 여자친구의 성정과, 한번 말을 시작하시면 거리낌이 없으신 엄마의 성정을 생각하며, 이 속에 무슨 갈등이 있든 절대로 이게 표면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음이 다급했고, 입이 바짝 바짝 말랐다. 나는 지하철에서 곧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감 속에서 여자친구님에게, ‘제발’로 시작해서 ‘제발’로 끝나는,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만들며, 화가 가라앉기만을 말 그대로 갈구하고 있었다.



여행 둘째 날에, ‘차라리 돌아가버리고 말테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는 건, 여행 전의 그 길고 긴 준비와 애걸복걸의 시간을 생각하면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여자친구의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었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특히나 이제 성인이 된 우리 모두에게 부족하기만 한 그 시간을 써가며, 단지 나와 있기 위해서 이 많은 수고를 하였건만, 결국 그 시간을 엄마와 나누어야 한다니. 나는 이 순간에 여자친구가 느낀 분노나 답답함이 단지 내 것을 빼앗겼다라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 속에 있는 것은, 내 자리를 내 자리라고 말할 수 없는, 그래서 뒤로 물러서거나 참아야 하는 그 느낌, 우리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가꾸어온 관계, 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관계를 결국은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그래서 그 관계의 중요함을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분노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런던에서의 며칠은 살얼음을 걷는 나날이었다. 뭐, 무조건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유명한 벼룩시장에 가고, 길거리에서 에티오피아 음식을 먹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고, 버킹검 궁전의 난간에 붙어 기마대를 보기도 하고,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유서 깊은 건물들을 지나쳐 런던 시내 구경을 하고,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를 구경하고, 빨간 색 이층 버스를 타고, 영화 <클로즈>에서 주드 로가 커피를 마셨다는 박물관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로댕의 키스와 같이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고, 고대 히타이트 문명의 벽화나 기둥들을 가만히 손으로 만져 보는, 멋진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여자친구와 엄마 사이에는 사진을 함께 찍을 것이냐 찍지 않을 것이냐를 존재론적 문제로 만드는 무수한 신경전이 계속 되고 있었다.


여자 친구의 얼굴은 점점 캄캄해져 갔고, 나는 이 셋의 구도에서 둘의 짝을 적당히 만들어 내느라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엄마는 이것저것을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었다. 날이 너무 춥다, 도시가 너무 우울하다, 음식이 너무 짜고 기름지다, 야채와 과일을 먹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거 살 수가 없다, 막상 보니 별거 아니구나, 너는 왜 이렇게 아직도 덤벙대니, 피곤하다, 그래도 더 구경을 다녀야지 얼른 얼른 움직여라. 으아아아!



그리고 어느 날 저녁에는 대영 박물관 뒷길을 따라 하늘높이 솟아난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를 걸어서, 태국 식당에 갔다. 오랜만에 따뜻한 국물과 야채가 많이 들어 있는 저녁을 먹어서, 참으로 오랜 만에 모두가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가 우리 엄마와 함께 하려고 하는 이 멋진 순간들 속에서, 사실은 이제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는 내 여자 친구는 혼자만 아는 슬픔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말하지 못하는 슬픔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리고는 나는 지금 도대체 여기서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서너 쪽으로 너덜너덜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마음속에 커다란 납덩어리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사랑한다는 구름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사실은 얼마나 당신을 상처 입히고 있는 걸까, 하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마음속에 가득 찼고, 그래서 몇몇 발걸음은 바닥에 디디기가 아프게 무거웠다.


이 암흑의 런던 여행에서 나는 여자친구의 캄캄해지는 얼굴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죄책감을 느꼈고, 엄마의 끊임없는 불평에 옴짝달싹도 못할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엄마의 불평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 모든 불평이 사실은 나의 부족함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거나 인정받을 수 없다는, 엄마와 나 사이에 오래 묵은 문제들이 이 불평들 속에서 다시금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패배감을 다시금 느꼈다.


마침내 내가 고꾸라진 건 호텔 앞에 있던 한 동성애자 서점이었다. 런던을 떠나기 전날, 엄마를 호텔에 먼저 모셔다 드렸고, 여자친구는 샤워를 하고 옷을 다시 갈아입는다고 하였고, 그럼 나는 서점에라도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혼자 호텔을 빠져 나왔다. 며칠째 눈 여겨 보던 호텔 앞의 동성애자 서점에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줄 엽서를 고르려 했지만, 사실은 그저 책장 앞에 서서 숨을 고르는 게 전부였다. 그 때, 대머리이지만 댄디댄디한 40대의 서점주인 아저씨가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말했다.


- 하아, 나 내일 아침에 여기를 떠나는데 조금만 더 구경하면 안 될까요?

- 그래? 문 닫을 시간 지났는데, 흠, 조금만 더 있으렴.

- (서점을 떠나려는 순간) 하아, 아저씨, 나 얘기 좀 해도 돼요? 혹시 여자친구랑 엄마랑 같이 여행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뭐, 그런 책 없어요?

- 어? (이때 아저씨의 표정은 그런 골치 아픈 짓을 도대체 어떤 멍청이가 하니라는 표정)

- 아, 정말 나는 미칠 것만 같아요. 나도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엄마는 끝도 없이 계속 불평이지, 여자친구도 내내 불평이지, 나는 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유럽 여행이라는 것을 왔는데, 하나도 즐겁지가 않고, 도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일까요?

- 니네 엄마가 니네 둘이 사귀는 거 아시니?

- 말은 안 했는데, 그래도 대충 눈치로는 아는 상태예요.

- 그럼, 그냥 이 참에 확 이야기하지 그래.

- 가뜩이나 해외여행도 골치 아픈데, 너무 일이 커질까 봐서요. 아아, 정말 엄마는 뭐든 다 불평이고, 여자친구는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여기 왔는데, 하나도 안 즐겁다고 하고, 나는 정말, 흐어, 둘 눈치 보느라 죽을 것만 같아요.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걸까요? 이 멋진 도시에, 런던에 왔는데도, 하나도 즐겁지가 않고, 다들 불평만 늘어놓으니, 정말, 나는 왜 괜히 이런 짓을 해가지고. 여자친구한테도 너무 미안해요.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고, 괜히 이렇게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아서.

- 이런 이런. 잘 들어.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너 자신의 행복이란다.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니가 행복한 거야. 다 같이 휴가를 온 거니까, 이 시간을 즐기는 건 각자의 몫이지 니 잘못은 아니잖아. 엄마가 자꾸 불평하면, 확실히 이야기해. “오이! – 이봐요!”(캐러비안의 해적 최근 편에서 잭 스패로우가 가짜 잭 스패로우를 만나러 갔을 때, 술집에서 선원이 “오이! 이 치가 스패로우를 만나러 왔다는 데”라고 말할 때 나오는 영국 사투리), “불평은 이제 그만 하고, 제대로 즐기도록 해요. 언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불평, 불만이에요. 엄마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있고, 내 여자친구도 있는데, 다 같이 하는 여행을 위해서는 서로 지킬 건 지키고, 다른 사람 기분도 배려를 해야지요”라고, 자꾸 불평하는 건 싫다고 분명히 이야기 해. 예의 없이 엄마한테 막 대하라는 건 아니고, 여기까지 온 거, 좀 참으라고, 확실히 이야기 해.

- 그래도, 엄마한테 그런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그런 기분 있잖아요, 이미 동성애자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엄마한테 미안한 기분이 계속 드는 거.

- 무슨 소리야. It’s tough love.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거야. 쉬운 게 아니라고. 니가 동성애자인 걸 어떡해? 그렇게 태어난 걸. 사랑한다면, 다 감수해야 하는 거지. 그걸 다 감수하고 보듬어주는 게 부모고, 진짜 사랑 아니겠니.

- 하아, 아저씨, 잠깐 좀 껴안아도 돼요?


폭포수같이 내 속의 이야기를 쏟아 부은 후에, 나는 난생 처음 만나는 아저씨와 포옹을 나누었다. 위로가, 마치 팅커벨이 요정 가루를 뿌려주듯이, 요술 할머니가 호박 마차를 불러오듯이, “뿅!”하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왔다. 두 팔을 처음 만나는 사람의 등과 어깨에 두르면서, 나는 내가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의 행복”이라는 말을 난생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아, 그렇구나.


나는 이 위태로운 셋의 순간에, - 엄마와 나와 여자친구라는 셋 - 건강한 이기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처음으로 배웠다. 나는, 우리는, 스스로가 남의 집 딸과 다르다는 것, ‘엄마 친구 아들’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사실 얼마나 죄스러웠던 걸까? 그리고 이 죄책감 속에서 우리의 관계, 가족과의, 연인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상처받고, 일그러지고, 곪아가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혹은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타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또는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덜 돌보아 왔던 것일까?


“더 행복해지겠어,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행복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이 순간이 우리 마음속에 굳은 심지로 잘 자리잡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의 건강함 속에서만이 타인에 대한 사랑이, 배려와 희생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나는 부끄럽게도, 난생 처음으로 낯선 타인에게서, 요정에게서 이 주문을 배웠다. “괜찮아, 네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거야, 그게 먼저야”라는 마법의 주문은, 나와 당신, 우리가 매일을 살면서 느끼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사실은 차별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가치 있게 느끼지 못하는 순간, 그 속에서 우리를 차별하는 그 괴물 같은 힘이 자꾸 자꾸 자라난다.


- 여자친구랑 단 둘이서도 시간을 보내도록 해. 그렇게 내내 엄마랑 같이 있을 필요는 없는 거잖아. 자, 지도를 줘봐, 내가 갈만한 데 알려 줄게.


- 응응. 고마워요!



푸른 색 간판에 커다랗게 “Gay’s the Word”라고 멋들어지게 쓰인, 러셀 스퀘어 뒤의 작은 서점은 저녁 6시 20분이 넘어서, 위급하게 쓰러진 나를 구조하고 문을 닫았고, 저녁에 있을 트랜스젠더 모임을 위한 자리로 변했다. 나는 나를 찾아 저녁이 막 내리는, 포석이 깔린 거리를 타박타박 걸어오는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너 그거 알아,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행복이래!”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앞뒤를 묻지 않고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그것도 몰랐어? 니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우리는 만난 지 3일이 되어서야, 겨우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손을 마주 잡았고, 나는 공원 어딘가에 벌렁 누워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행복! 이라고 마음껏 외쳤고, 처음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어댔고, 그리고 런던 어딘가의 지하 술집에 들어가, 서로 연애를 걸고 있는 이국의 여자아이들 속에서 맥주 한 병을 달게 나누어 마셨다.


결국 사흘의 시간 동안 우리는 여자친구가 고대하던 런던아이도 타지 못했고, 내가 꿈에 그리던 셜록 홈즈의 집에도 가지 못했고, 엄마와 함께 우아한 애프터눈 티도 나누지 못하였다. 이 여행의 첫 시작에 모두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엄마와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다운로드 하는 것은 권장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이 위태로움 속에서, 나는 건강하게 이기적일 것,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나의 배타적 권리를 잊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처음으로 배웠다.


아직 마음이 뽀드득 다 닦여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런던의 요정에게 경배를!


그리고 이봐요, 친구들! 어쨌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당신 자신의 행복이라구!


보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