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 이야기/모리의 그림일기

외로움에 대하여

by 행성인 2012. 8. 4.


얼마 전, 5년째 베프인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친구는 나의 협박에 반 강제적으로 나를 받아들였고 내 결혼식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행복했다.

 

약 2년 전에 처음으로 ‘게이로 산다는 것’이 인간관계에 아주 기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못하고, 어느 정도 이상은 절대로 마음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엇.

분하고 억울해서 자다가 깬 그날 새벽, 블로그에 글을 마구 적었다.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이란 상처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괴물 보듯 할 거라는 걱정과, 그런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마음을 빚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절친한 동생은 얼마 전에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버려지기 전에 버려야 해요.”

반은 맞는 말이다. 버려지는 아픔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클 테지만,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외로움은 견딜 수 있다. 적어도 얼마간은.

 

얼마 전까지도 나는 버려지는 아픔 대신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외로움을 선택해왔다(사실 ‘선택’이기보단 무의식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최선(最善)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껏해야 차악(次惡)일 수밖에 없는 선택.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나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에도 거짓말을 해야 했다. 가끔 그런 답답함은 친구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고, 반대로 가끔은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변했다.

 

이미 그렇게 여러 명의 친구를 잃었다. 더 친해질 수 있었지만 친해지지 못했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친해질 수 있을 리가. 사람들은 그런 걸 잘 알아차린다. 나에게 벽을 느끼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많이 친했던 친구를 잃을 때 그 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니가 뭘 하든 관심 없다.”

난 사람을 그렇게 사귀고 있었다.

 

결국 내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만나도 형식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친구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가족들.

나는 죽을 만큼 외로웠다.

 

그래서 말하기로 했다.

커밍아웃은 단지 ‘성정체성을 밝히는 일’이기만 한 게 아니다.

더는 외롭고 싶지 않아서, 차악이 아닌 최선을 선택하기로 했다.

더 기대하고 싶고, 더 말하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다.

비록 그것이 나를 더 상처 받게 만들지라도. 이젠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옆에 있으니 안심이다.

 

그래서 고맙다.

오늘 넌 동인련에 정기후원을 해주기로 했다.

네가 친구여서 난 참 행운이다.

 

넌 참 좋은 애야.









'회원 이야기 > 모리의 그림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에 대하여  (0) 2013.12.25
행복에 대하여  (7) 2013.02.02
가족에 대하여  (7) 2012.09.25

댓글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