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요즘 내 눈엔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이 밟힌다. 이것저것 궁금해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엄마 옆으로 와서 손을 잡아 달라고 내미는, 나는 잡아보지 못할 그 손.
얼마 전 아버지에게 “다음 대선 때 동성결혼이 쟁점으로 나오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더니 그건 힘들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대선이면 5년 뒤. 난 서른을 앞두고 있을 테고, 친구 중 몇 명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중 몇은 이미 애를 낳아 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난 아빠가 될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난 당연히 아빠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됐나 보다. 가끔 친구들이 “야, 이런 건 할 줄 알아야 나중에 애도 키우지~”하며 능숙하게 전구 같은 걸 갈아 끼우거나(물론 나도 전구는 갈아 끼울 줄 안다), “결혼하고 집 사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재테크에 관심을 보일 때면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젠장 난 저런 거 하나도 준비 안 하고 있잖아!!’하는 생각을 하기 부지기수.
결혼은 이미 내게 먼 일이 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차별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
나도 결혼하고 가족을 만들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현명한 우리 엄마가 항상 말하길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른 거”다.
재밌는 사실은 최근까지도 계속 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가족이란 던져버려야 할 굴레였다. 나의 모든 것이며, 그렇기에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될. 너무 소중하면서도 너무 두려웠던.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건 상관없지만, 내 주변 사람이 게이인 건 받아들일 수 없어”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경험담은 내게 오랫동안 골칫덩이였다.
‘내 가족도 그러면 어쩌지.’
난 매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섹슈얼리티는 절대 이성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후엔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건 더 힘든 일이 돼 버렸다. 싸우고 싶지 않았고 상처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준비가 될 때까지.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가족들이 내가 게이인 걸 모두 알게 됐다. 1년 넘게 싸우다가 최근에야 조금 사이가 좋아졌다. 안 좋은 말도 많이 오갔고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어쩌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죄인일 수 밖에 없다고 믿었다. 너무 소중하지만 그래서 너무도 미웠던 엄마 아빠.
그럼에도 내가 아빠가 될 자격이 있는 걸까.
아무 죄없이 태어난 아이를 안고 내가 네 아빠라고 소개할 자격이 있는 걸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가족은 지금 내게 그렇다.
모리와 모리2세 상상도 (feat. 순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