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대하여

Posted at 2013. 12. 25. 01:10// Posted in 회원 이야기/모리의 그림일기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얼마 전, 가슴 아픈 기사 하나를 봤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13년 10월 30일 아침, 부산 북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한 여성이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그 여성(A씨)은 여고 동창인 B씨와 함께 40년간 동거하며 살아 왔는데, 주로 B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A씨가 가사 노동을 담당해 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말 B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B씨를 간병하던 A씨는 B씨의 가족과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고 하는데, B씨 가족에 따르면 A씨가 B씨 명의로 된 아파트와 보험금 상속인 명의를 자신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갈등 끝에 결국 A씨는 병원을 떠났고, B씨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패물 등 돈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모조리 챙겨 나갔다. 이후 B씨 가족은 A씨가 B씨 명의 통장에서 주식배당금, 국민연금 등의 현금을 빼간 사실을 알고 A씨를 절도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하고 아파트 집열쇠도 바꿨다. B씨 가족은 “40년간 동거하며 최근에는 조선소 허드렛일까지 하며 가장역할을 해온 B씨가 암말기 진단을 받았는데도 이 같은 요구를 한” A씨에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집을 나온 A씨는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방을 얻어 살다가 지난달 초 결국 숨을 거둔 B씨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접했고, 한 달여만에 자신이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 연합뉴스 기사에서 정리


이 사건을 다룬 언론사들의 기사 제목은 대부분 이들의 관계를 “40년 동거한 여고 동창생” 정도로 적고 있다. 두 여성이 40년 동안 함께 살았다는 것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라도 느꼈는지 뉴스1에서는 “절친”, 연합뉴스에서는 “우정을 과시했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제신문에서 다룬 기사는 심지어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동성애와는 무관하지만"이라고 적으며 그 의문점을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반면 이들의 관계를 동성 커플로 적은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동성 커플이라고 적으면 안 됐던 걸까? 명예훼손이라고 고소당할까봐 걱정이라도 했던 걸까?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라고 하는 건 명예훼손이고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라고 하는 건 명예훼손이 아닌 걸까? 국제신문의 표현은 독자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경찰이 “동성애와는 무관”한지 여부를 어떻게 알아냈다는 건지도 궁금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히 경찰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저 “우정을 과시했던” “절친”으로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기사를 적는 것에 언론은 아무 책임이 없는지도 의문이다. 두 사람이 동성 커플이었을 가능성은 너무도 크다. 하지만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두 사람이 동성 커플일 가능성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이는 곧 언론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보도를 함으로써, 앞장서서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다”는 말을 전하고 있는 것과 같다.


40년 간 함께 산 사람, 누구보다 가깝고 소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 권리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었을까. 혈연이 아닌 A씨는 병원에서 B씨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찾아 온 B씨의 가족들에게 B씨의 옆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분증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병원에서는 아마 A씨에게 가족이 아니면 ‘보호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함께 한 공간도,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들도, 사랑하는 이가 혼자 남겨질 상황을 대비해 B씨가 들어두었을 보험을 받을 권리도 빼앗기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옆에서 지킬 권리마저 박탈당해버린 A씨는 과연 누구에게 그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너무도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들을 빼앗겼는데, 그 권리를 되찾으려 하자 ‘절도 혐의’를 받게 된다는 것, 내 권리는 이렇게 무참히 빼앗기는데, 저들의 권리는 너무도 당연히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 기사에서 제일 가슴 아팠던 부분은 A씨가 B씨의 죽음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은 산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별을 고할 충분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별하지 못했는데,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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