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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성(性)과 동성애자, 에이즈, 도돌이표 같은 질문에 답한다는 것 - ‘에이즈 다르게 생각하기’ 토론회에 대한 단상

by 행성인 2012. 12. 1.


호림(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올해 초, 동인련 HIV/AIDS인권팀이 세운 계획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HIV/AIDS와 관련된 단체와 기관을 인터뷰 하여 HIV/AIDS 감염인이 받을 수 있는 지원과 서비스를 정리해 보자는 것,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HIV/AIDS 예방과 인권의 메시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전자는 나름 수월하게,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일정을 잡아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어느새 일 년이 지나있었고, 다소 부족하지만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후자. 처음엔 막연히 ‘조금만 고민하고, 조금만 창의적으로 생각’해보면 될 줄 알았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눌수록 참 답이 없는 문제라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문제는 “성(性)”이었다. “성”으로 매개되는 질병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차별받는 “성”소수자의 너무나 “성”적인(!) 관계.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는 ‘콘돔’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예방의 메시지가 작동하고 있지만, 내부의 감염인은 드러나지 않거나, 잊혀지는 불화와 갈등의 관계.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함께 살아가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들’과 ‘우리’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관계. ‘문란’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 ‘동성애자의 질병’이라는, 양자 모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낙인으로 인해 때로는 짐스럽게 느껴지는 관계. 이 관계를 에둘러 넘어가지 않고, 직면하며 넘어서는 예방과 인권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것이 올해를 시작하며 HIV/AIDS인권팀이 가졌던 최초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여전히 커다란 물음표만이 쓰여 있는 빈칸으로 남아있다.



지난 11월 24일 ‘에이즈 다르게 생각하기’ 토론회의 1부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토론회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룬 발제와 그에 따른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발제는 법과 캠페인, 언론보도로 나뉘어, 각 영역에서 HIV/AIDS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투영되는지를 성(性)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분석해본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첫 번째 주제였던 법에 관련해서는 ‘HIV/AIDS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형사처벌 하는 법률 조항(“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제를 준비한 재킴은 이 조항이 포함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일반인과 감염인을 명백하게 분리하고 있으며, 특히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감염인을 일반인에게 HIV/AIDS를 전파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감염인의 성권리(sexual rights)를 실질적으로든 추상적으로든 침해하는 조항이며, 따라서 예방법 하에서 감염인의 인권은 일반인의 인권과 동등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방법의 태도는 성적 권리를 포함한 감염인의 인권 보호를 우선시 하는 국제적인 흐름과도 배치되며, 일반인에 대한 예방만을 우선시 하는 이러한 공중보건적 접근은 실제 예방에 도움이 되지도 않으므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토론에서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며 실제 ‘적발’과 ‘처벌’이 가능하지도 않으므로 실효성이 없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 2008년 예방법 투쟁 과정에서 이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조항을 없애지는 못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여 이 조항을 없앨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두 번째 주제였던 캠페인은 정부와 정부의 위탁을 받아 HIV/AIDS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민간기관의 캠페인에서 어떻게 HIV/AIDS가 그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발제를 맡은 웅은 민간기관의 포스터를 중심으로 HIV/AIDS 예방 포스터의 메시지가 질병에 대한 공포에서 인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지만, 막연한 예방의 메시지가 실제 예방이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예방사업을 펼치고 있는 아이샵의 캠페인은 게이 커뮤니티에서의 에이즈 예방에 기여한 바가 있지만, 동시에 ‘콘돔 사용’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메시지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캠페인에 대한 내용은 인권팀의 ‘메시지’에 대한 최초의 고민과 가장 가까운 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토론의 마무리는 동인련에서 함께 그 메시지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을 해보거나, 민간단체의 에이즈 예방 포스터 공모전에 출품을 해보는 것이 어떨지에 대한 논의로 끝을 맺었다.


마지막 주제는 HIV/AIDS와 관련된 언론보도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이었다. 욜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HIV/AIDS 관련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언론과 미디어를 위한 HIV/AIDS 길라잡이’와 최근의 언론보도 경향을 분석했다. 한국 언론의 HIV/AIDS 보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인권 중심적 보도가 다소 증가했지만, 여전히 HIV/AIDS 관련 보도는 선정성 중심이며, HIV/AIDS가 질병 그 자체와 관련 없이 ‘꿀벌 에이즈’, ‘참나무 에이즈’처럼 공포와 죽음의 키워드로 이용되는 등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길라잡이’는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올바른 언론보도를 강조하고 있는 좋은 내용이지만, 관리와 통제 중심인 정부의 태도가 먼저 변화하지 않는다면 언론보도의 흐름은 제자리걸음일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HIV/AIDS와 관련된 고민은 항상 도돌이표 같다. 많은 이슈를 고민하고, 논의하고, 제기하지만, 결국 막히는 부분은 언제나 성(性), HIV/AIDS와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부의 문제다. 올해의 시작도, 토론회의 기획도 이런 질문에 직면해 보자는 취지였지만 여전히 에둘러 제기한 우리의 고민이 잘 전달되었을지 의문이다. 1시간 30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우리의 고민을 충분히 설명하기에 부족했다는 말로 (반쯤만 진실일)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싶기도 하다. 내년 이맘때에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은근 슬쩍 넘어가고 싶기도 하다. 부족한 우리의 현재 모습,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는 ‘메시지’의 자리가 여전히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나누며 마감을 한참 넘긴 부족한 글을 정리하려 한다. 준비한 우리도 예상치 못하게 많은 감염인이 오셨던 토론회 자리에서 한 감염인 분이 우리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감염인인가. 비감염인이 왜 이런 자리를 만드는가. 아프지도 않아본 너희가 어떻게 감염인의 마음을 아는가’라는 취지의 문제제기였다. 순간, 비슷한 질문을 훨씬 뼈아프게 겪으며 상처도 많이 받았었다는 운동 초기 비감염인 활동가들의 고생담이 떠올랐다. 동시에, 나와 눈을 맞추며 (조금은 난처하게) 웃고 계신 감염인 활동가를 보고 있으려니 나도 조금 웃음이 났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무겁게 상처가 되었던 “당사자”의 질문 앞에, 지금은 ‘우리도 HIV/AIDS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라 운동을 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조금은 웃으며 넘길 수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지금은 어려운 우리의 질문이 언젠가 그 무게를 좀 덜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