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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직장을 다니는 게이들의 즐거운 수다!

by 행성인 2008. 12. 7.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너,나,우리"랑"' 11월호 우리소리 _ 회원인터뷰>




인터뷰 정리 : 정욜
 

인터뷰에 참여해준 저스틴, L군은 시청 근처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주 만나는 동인련 회원들이다. 주말 종로3가에서 힘껏 올린 머리스타일과 잘 차려입은 옷차림으로 만나는 건 아니지만 이 시간만큼은 회사생활의 답답함을 뚫어주는 작은 돌파구가 된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처음에는 저스틴이 동인련 회원으로 가입하면서부터 일주일에 한번 꼴로 만나기 시작하였는데 저스틴의 소개로 회원으로 가입한 L군의 합류로 이제 세 명이 함께하고 있다. 이번 주는 순대국, 다음 주는 점심 부페. 우리는 늘 만날 때마다 식단부터 정한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함께할 수 있는 날은 이전보다 적어졌지만 대화내용은 더욱 풍성하고 재밌어졌다. 인터뷰한 날도 평일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날이 모두 쉬는 날이어서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인터뷰 때문이었나. 저스틴이 퇴근하고 왔는데 빨간 넥타이로 멋을 내고 왔네^^

 

욜 : 먼저 자기소개를 한다면?

J군 : 사실 이런 질문이 너무 어렵다. 입사할 때나 어느 때나 자기소개는 늘 시작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도 애인이 없으니까 나를 열심히 소개해봐야겠지? ^^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뭔가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열망이 크고 욕심도 많다. 그리고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냥 생긴 대로. 생긴 대로라는 것은 남자를 좋아하는 지금 모습 그대로. 내 안의 여성적인 부분까지도 일반적인 잣대로 재단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나?


욜 : 좀 따분한데.. 그럼 이반시티용으로 하나 더 ^^

 J군 : 180에 72, 성향은 올, 원하는 게 이거지? 아~ 그리고 콜린퍼스같은 스타일을 좋아해

저스틴 : 난 이반시티용으로만^^. 175/65. 성향은 올이야. 애널을 별로 안좋아해

(사실 소개만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저스틴과 J군의 의견충돌이 있었다고나 할까. J군이 성향을 올이라고 말하는 순간 거짓말이라는 소리와 함께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저스틴은 J군이 소녀고 이기적이라고 하며 평마박떼(평소에는 마짜, 박탈 때는 떼자라는 게이들 사이의 은어)임을 인정하라고 했고, J군은 섹스포지션은 정해져 있지 않고 단지 그 사람이 좋으면 되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J군이 인터뷰 내내 평박박떼가 아니라며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인터뷰 정리할 때 빼달라고 했다. 물론 둘의 이야기를 재밌게 지켜본 나로서는 모든 내용을 솔직히 담고 싶지만, 삭제 요청이 있었기에 이렇게 간단하게만 정리하려고 한다. 어쩌면 이 논쟁은 인터뷰가 끝났어도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이다. 둘 사이가 계속 유지된다면 평생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욜 : 게이로서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나 사건이 있다면?


J군 : 사랑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군대를 갓 제대하고 만났던 형이 있었는데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동정심이 느껴졌다. 정에 약하다 보니까 헤어지는 것도 힘들었어다. 25살이었으니까. 벌써 2년이나 지났네. 저스틴형처럼 친하게 지내는 형들도 그 사람을 별로 안 좋아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일을 계기로 저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아끼고 거짓말하지말자’. 교제기간은 120일 정도로 짧았지만 그래도 기억이 많이 나는 사람이다.

 저스틴 : J군 마음속엔 소녀가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섹스는 좋아했잖아

 J군 : ^^ 격렬했지. 그 사람을 통해 사랑에 대해 많이 배웠다. 타산지석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번개라는 익명적인 공간에서 만나다보니 그런 거 같다. 우리 게이들에게 만남이란 주로 번개를 통해서 이루어지다보니까 그 안에 왜곡되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이성애자들은 자기감정들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우린 숨기다보니 익명적인 채팅공간을 통해 분출할 수밖에 없다. 관계 면에서도 황폐해지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계기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나? 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 어려워하는 것 같다.

 

욜 : 이야기를 듣다보니 데뷔 때가 궁금하다. 데뷔 얘기 좀 해줘

 

J군 : 계기가 13살부터 좋아했던 애가 있었는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못 잊었다. 정리도 안돼고 너무 고민이 돼서 상담을 받으려고 친구사이를 찾아갔다. 내가 변태가 아닌가. 왜 태어났을까. 거기서 상담을 해주었는데 그때 내가 다니는 대학모임 대표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학교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친구 얘기하니까 생각이 난다. 스킨십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스킨십은 학교운동장에서 귀신체험을 했는데. 그 아이와 나, 둘이 가게 했다. 무서워서 팔짱을 꼈다. 무서움도 있었지만 가볍게 스킨쉽을 하고 있으니까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설레임도 있었던 것 같다. 아련했던 추억이 아직도 기억난다. 몸에서 나는 향기. 학창시절의 정말 황홀했던 기억이다.

저스틴 : J군은 저아 감성적인 것 같아. 장차 아줌마가 될꺼야 ^^ 사실 난 뒤늦게 학교모임에 가입한 편이었다. 25살에 가입했는데 조금 억울한 느낌도 든다. 1학년 때부터 학교모임을 알고 있었지만 소문이 날까봐 무서웠다. 군대 갔다 와서 같이 다니는 친구, 동기들이 적어지다보니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그래서 학교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3학년 1학기 때였는데, 그땐 정말 잘 팔렸는데^^ 가입하자마자 두 명한테. 지금은 안 팔려~

 

욜 : 저스틴은 기억나는 사건이나 순간 없었어?

 

저스틴 : 이 이야기에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군대가기 전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한강 둔치에서 키스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건 친했던 커플 4명이 같이 서울랜드에 놀러 갔는데, 상대 여자의 남자친구가 정말 잘 생겼었다는 거 ^^ 여자랑 관계를 해본적도 있다. 사촌형이 군대 가기 전 미아리에 데려갔는데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정말 내가 게이라서 안 되는 것인지 흔히 말하는 끝마무리를 못하고 나온 기억이 있다.

 

J군 : 이성과 같이 잘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런데 가는 것은 정말 싫다.

 

욜 : 둘 회사 생활은 어때?

 

J군 : 입사 10개월 정도 되었는데. 처음에는 힘든 게 많았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까지도 힘들었다. 친해지면 터놓고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하는데 계속 상대를 속인다는 느낌이 드니까 불편했다. 지금도 조금 그렇지만 마인드를 단련시키고 있다. 여자동료들과 얘기하게 되면 남자이면서 부드럽고. 대화하면 얘기가 통한다고들 한다. 여전히 불편한 건 여자 얘기가 나오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배우 콜린퍼스 사진을 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없고 소개팅을 해준다고 할 때는 빙빙 돌려 말하고 동성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나조차 사람들과 함께 농담으로 대할 때가 있다.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 사람에게조차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성애자 같은 경우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데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안타깝다. 얼마 전에는 여직원한테 문자도 받았다. 당장 거절하기 힘들어서 늦추고 하다 결국 만났는데 예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상담을 해줬다. '정말 게이들은 이성에게 있어서 카운슬러와 같아.'


욜 : 저스틴 대리님도 한마디 ^^

 

저스틴 : 입사 6년 정도 되었는데. J군과 다르게 지금은 조금 초월한 기분이다. 업무도 나한테 맞고 게이라고 해서 불편한 건 많지 않은 것 같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결혼할 나이가 되니까 주변에서 많이 물어보는데. 그냥 속인다는 생각안하고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다고 말한다. 여성인지, 남성인지까지 물어보지는 않으니까^^ 요즘에는 일반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든다. 주변 선배들이 결혼해서 애 낳고 힘들게 사는 것 보면 게이라는 게 어쩌면 복 받은 삶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독신이에요'. '페미니즘 동아리 했어요' 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특이하게 가도 괜찮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버는 돈을 날 위해서만 쓸 수 있잖아.

 

욜 : 그럼 동인련은 언제 가입했어? 가입하고 나서 기분은?

 

J군 : 2001년 인권캠프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건 저스틴 권유로 가입하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정신적인 면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저스틴 : 나도 캠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대학 때는 다른 모임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었다. 만날 사람도 많았고, 여기저기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안했다. 그 당시 알고 지낸 몇 명은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그런데 올해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를 나가고 싶었는데. 회사동료나 학교 때 알았던 친구들이 안나간다고 하더라. 같이 나갈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동인련을 찾았고 가입까지 하게 되었다. J군은 데이트 코스로 한번 왔었다.^^

 

욜 : 벌써 11시30분이다. 마지막으로 뻔한 질문 하나. 앞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J군 : 매일매일 바쁘게 산다. 평일에는 회사다니면서 학원도 가고 요가도 배운다. 그때 그때 필요한 공부도 한다. 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도태되지 않은 사람. 자기발전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년에는 일본어를 하나 더 할 예정이다. 그래도 무엇보다 좋아하는 애인과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하면서 낄낄대면서 살고 싶다.

 

저스틴 : 난 소개팅! 욜~ 외로워!! 소개팅 좀 시켜줘~

 

꽤 긴 시간동안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회사일로 많이 피곤했을 텐데, 옛날 생각 많이 난다면서 성실히 응해준 저스틴과 J군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회사는 노동을 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가족보다 이반친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장동료들과 함께 보낸다. 그들에게 늘 솔직하지 못한 점에 불편함도 느끼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런 마음을 초월하기도 한다. 동성애와 관련한 이야기라도 나오면 내 얘기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때로 농담처럼 받아치기도 한다. 이런 삶이 나를 인정하고 이반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보다 훨씬 많다. 아휴~ 늘 둘러대는게 지겹다. 뭐! 우리들뿐이랴... 오늘 밤도 한 숨 쉬며 내일 회사갈일 걱정하며 자고 있을 이반 직장인들이여. 내일도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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