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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제가 정상인가요?” - 영화 <킨제이 보고서> 리뷰

by 행성인 2013. 10. 22.


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학교에서 동성 커플의 연애를 허용하라구요? 학교에선 이성애자들도 연애 금지에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하라구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누군가와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 아마 기절하실 거에요.”

“직장에선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성에 대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니 그 얘기를 꺼내는 건 커밍아웃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퀴어문화축제에서 옷 벗는 건 사람들에게 거부감 일으키는 것 같아서 싫어요.”


위에 적은 것은 동인련에서 활동하다 듣게 되는 기운 빠지는 말들이다. 동인련의 활동은 대부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성 그 자체에 대한 혐오를 맞닥뜨렸을 때는 커다란 벽을 만난 것 마냥 그저 무기력함을 느끼는 수밖엔 없었다. 아무리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치는 지지자가 많아져도, 성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가 남아 있다면, ‘동성애’가 아닌 ‘동성애자’에 대한 지지만 받는, 여전히 ‘남의 일’일 뿐인 반쪽 짜리 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영화 <킨제이 보고서>는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제시해주는 영화다. 원래 ‘킨제이 보고서’라 함은 1948년 출간된 <인간 남성의 성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과 5년 뒤인 1953년 출간된 <인간 여성의 성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 두 책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번역이 되지 않아 한국에선 많이 읽히지 않다가 2005년 동명의 영화로 국내 개봉하면서(빌 콘돈 감독, 리암 니슨 주연) 알려지게 되었다. 아직 보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한번 보시라. 훌륭한 영화다.

 

 

킨제이보고서


‘킨제이 보고서’로 불리는 두 권의 책은 출간 당시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미국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하나는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사회에 ‘과학’이라는 접근법을 통해 모든 것을 더 없이 솔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내용이 대중이 기대했던 “정상적인 섹슈얼리티”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먼저 섹스가 금기시되던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데, 킨제이 보고서가 처음 출간된 1948년의 미국은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 중에는 미국 사람들이 성적으로 좀 더 개방적인 것에 대해 “미국이니까 그렇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즈음 미국은 기독교 신앙과 사이비 과학이 성적 보수주의의 단단한 토대를 이루고 있었는데, 영화 <킨제이 보고서>는 그런 모습들을 여러 장면에 걸쳐 보여준다. 


장면 A: 소년 시절의 킨제이와 친구


킨제이의 친구: 몸에 경련이 났었어.

소년 킨제이: (친구를 쳐다본다)

킨제이의 친구: 멈추려고 했어.

소년 킨제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성적으로 배출되는 습관은 지양되어야만 한다. 박사들에 따르면,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것에는 정신이상, 장님, 마비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한다."

킨제이의 친구: 자다가 배출하면?

소년 킨제이: (책을 읽는다) "1온스의 정액손실은 40온스의 피 손실과 맞먹는데..."

킨제이의 친구: 잠을 자면서 나 자신을 죽이는 셈이네! 어떻게 해야 하지?

소년 킨제이: (책을 읽는다) "성경책을 펴고, 산상수훈을 읽으면서 찬물에 고환을 담그고 어머니의 순수한 사랑을 생각하라."


장면 B: 킨제이에게 섹스에 관해 상담하러 온 학생 부부


킨제이: 벤, 에밀리에게 오랄섹스를 해봤나요?

학생: 형이 그랬는데, 그러면 나중에 아기를 갖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장면 C: 위생학 강의 시간


위생학 교수: 인간에게 섹스가 필요하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자기 성기를 정기적으로 운동 시키는 소년들이 나중에 성생활을 하게 될 때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소년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성적으로 사망한 거나 다름없게 되죠.


이렇듯 섹스를 금기시하는 규범은 당시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성경과 사이비 과학이 말해주는 것들을 이용했고, 규범은 그렇게 더욱 강해졌다. 영화 <킨제이 보고서>는 킨제이가 이러한 규범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할 줄 아는 것이 과학자의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한다면, 때론 사회성이 부족해보이기도 하는 킨제이의 ‘과학자적 면모’가 사회가 강요하는 신념으로부터 킨제이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다. 


섹스에 대한 금기는 정형화된 “정상적인 섹슈얼리티”의 모습을 만드는 것으로 진화했다. 기본적으로 ‘죄악’이라고 보는 섹스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 뿐이었고, 따라서 임신/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모든 섹스는 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자위 행위, 오랄 섹스, 다양한 체위에 대한 탐구 등은 종교적인 낙인은 물론 사이비 과학의 말도 안되는 주장을 통해서도 억압을 받았다. 때문에 자신의 성행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고, 아무도 오랄 섹스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랄 섹스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규범화된 “정상적인 섹슈얼리티”가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점인데, 실제로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킨제이 보고서>가 조사한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성행위를 얼마나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혼외정사, 혼전성교, 자위 행위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고, 동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도 훨씬 많았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미국 전역에서 읽혔는데, 자신이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느낀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 성소수자도 포함되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장면 D: 노년 킨제이와 한 여성의 대화

 

여성: 23년째 결혼생활 중이었고, 3명의 멋진 아이를 두었지요. 막내가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전 직업을 구했어요. 한 미술 재단이었죠. 거기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됐지요. 1층에 근무하던 비서였는데, 우린 급속히 친해졌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상상이 가시겠지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죠. 거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 감정이 더욱 강해지는 거였어요.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됐죠. 술을 마시게 됐어요. (울먹이며) 결국 남편은 절 버렸고 아이들마저 떠났죠. 결국 앤디와 지내게 됐어요.

킨제이: 우리 사회가 정말 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여성: 무슨 말씀이세요? 훨씬 좋아졌는데요.

킨제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여성: 선생님이 하신 거죠 당연히. 선생님의 책을 읽은 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지 알았어요. 결국 용기를 내서 고백을 했고, 그 친구 역시 놀랍게도, 같은 감정이라고 했어요. 우린 3년째 행복하게 같이 지내고 있어요. (킨제이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선생님이 제 인생을 구해주셨어요.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사람들과 밥을 먹다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젯밤 섹스가 어땠는지, 혹은 섹스 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섹스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한국에서 섹스는 여전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이 섹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성교육이 필요 없다’ 혹은 ‘성교육은 청소년의 섹스를 부추긴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한국 사람들에게서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을 권리를 빼앗는다. 성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섹스와의 화해'로서, 즉 섹스를 죄악이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닌, 그 자체로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껏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고, 사정은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섹슈얼리티가 죄악시 되는 것, 필자가 ‘성억압’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오늘날의 한국의 상황에서 억압을 받는 것은 비단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다. 섹스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임신/출산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만을 고집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만약 섹슈얼리티 규범과 젠더 규범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성소수자’라고 재정의한다면, 비단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간성뿐 아니라 이성애자도 성소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혹은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 여자/남자다”하는 규범에 따르지 않는 모든 사람을 성소수자라고 한다면,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라는 말이 ‘통계학적으로’ 그렇게 문제가 될 말일까 궁금한 것이다.


 

“제가 정상인가요?”


“왜 어떤 소들은 거의 섹스를 안 합니까? 다른 소들은 정상적으로 하는데. 왜 어떤 남성은 일주일 에 서른 번의 오르가즘이 필요하고 또 누구는 거의 없어도 되는 걸까요. 그건 모든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길 바란다는 거죠.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조건을 무시하는 게 더 쉽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 이를 위해 본성을 쉽게 배반하는 겁니다.”

- 영화 <킨제이 보고서> 중.


영화 <킨제이 보고서>를 보면서 가장 크게 울렸던 말은 “제가 정상인가요?”였다. 인간은 끊임없이 “정상”이 되고 싶어한다.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서 동성애가 관찰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서만 동성애혐오가 나타나는 이유다. “자연스러운”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섹스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섹스를 둘러싼 우리의 경험, 생각, 가치관이 아무리 다양해도,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하지 못 한다면 그 다양함이 “정상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 정상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정상성이 강요 될 수 있는지도 계속 이야기하다보면, 구강 성교나 항문 성교나 자식 낳는데 아무 도움 안 되긴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