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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군형법 군인권

게이, 군대와 맞짱뜨다

by 행성인 2008. 12. 11.

이 글은 2008년 11월11일에 개최된 '군대와 게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인권의 길을 찾다'토론회에서 발표된 발표문 ('군대, 게이들에게 어떤 공간인가', 정욜) 을 구성한 것입니다.

 -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무지개빛 인권바람! 군대에서 솔솔~]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무지개빛 인권바람! 군대에서 솔솔~] 프로젝트가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을 11월 중순 무렵 군사법원이 “군형법 제92조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동성애자 군인의 평등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는 소식을 언론기사를 통해 접했다. 처음에는 보도 기사를 잘 못 읽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그동안 군 내부에서는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었는데.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고 군대가 무슨 약을 잘 못 먹었나 싶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대법원은 군형법 92조에 언급된 '추행'을 '계간(항문성교)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군 간부가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양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행위에 대해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성행위로만 낙인찍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현재 병영생활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성범죄 가해자로 보고 있는 것으로서 동성애자 군인들을 더욱 음지로 몰 것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군사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따라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군 형법 92조에 대해 위헌판결을 확정지어야 한다.


맞짱 ?! 가능한거야?


2006,7년 언론에 공개된 군대 내 남성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건은 그동안 존재했지만 무시되어 왔던 군대 내 게이들의 삶과 고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게이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성애자들의 경우 대개 “어떻게 게이들이 군대에 있을 수 있냐” “군대가 이젠 막나가는구나”라며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반면 일부 게이들의 경우 냉소적으로 커밍아웃한 그 병사를 힐난하며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처음 접한 성소수자 운동은 여러 반응들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사건해결의 열쇠를 찾기 위해 급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군대에서 경험했던 인권침해, 차별사례를 진정했던 나의 경험을 빗대어 보면 적지 않은 지지, 지원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지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06, 07년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 벌어진 여러 인권침해 사건은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당연한 사건, 사례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사건개요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인식은 여전히 성적으로 문란한 집단쯤으로 여기고 있어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아무 문제없이 생활하고 있어도 그 게이병사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관심병사로 규정된다. 또한 여성스럽지 않아도 자신의 섹스포지션이 무엇인지, 성격은 어떤지, 자신이 느끼는 여성성이 어느 정도인지 끊임없는 물음을 받게 된다.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군 병원에서도 에이즈에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채혈이 이루어지고, 혹시나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있다면 밤이 될 때 함께 생활하는 이들과 떨어져 자야 될지 모른다. 이것은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며 조합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동성애자 군인들의 삶을 그대로 나열한 것이다. 한치 앞의 삶도 가늠해 볼 수 없는 세상을 살면서 2년간의 군 생활을 안전하게 잘 마무리하고 나올 지는 아무도 알 지 못한다. 하지만 군 입대를 앞둔 게이들은 앞으로 펼쳐질 병영 생활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으로 이미 군 전역을 한 선배의 추억담을 들으며 2년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군대에 입대하면 커밍아웃을 절대 하지 않을꺼야' '2년 동안 버텨보자' 라고 스스로 다짐도 해본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인권침해 사건의 당사자들도 커밍아웃을 죽도록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고 2년 동안 잘 참아보자고 입대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막다른 길목에서 자신의 선택할 길도 없이 숨기고 싶었던 모든 면이 노출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순간의 사건으로 최악의 병영 생활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은 2008년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가 출발할 수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군대 이슈를 함께 할 단체와 개인들이 필요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 2006,7년 사건지원에 함께 해준 단체들이 모였지만 무엇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처음부터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모든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였고, 프로젝트를 마감하며 발족한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사무국도 동성애자인권연대와 공동으로 담당하기로 하였다. 사실 이 단체와 개인들이 없었다면 프로젝트의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다.

 

맞짱 뜰 준비를 위해


징병제로 유지되는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상 군대와 게이,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인권침해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군대의 남성적인 문화에 대한 거부와 성적지향이라는 양심의 문제로 병역 거부하는 주체로도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모두 개인의 책임과 피해로 돌아가고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준비해야 점이 무엇인지 프로젝트를 통해 알아가고자 했다. 6개월 정도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료를 구성하거나 지지, 지원자를 모으는 일보다 오히려 군대를 바라보는 게이들의 시선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군 생활 이야기를 채록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웹사이트에서는 로맨스에 가까운 자극적인 경험들을 공유하거나 상담까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들에겐 그러지 않았다. 군 입대를 앞둔 게이들과의 간담회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다만 익명성을 극복하면서까지 자신이 군대에서 경험한 사례를 재조립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정도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단체 간담회를 통해 병역거부와 트랜스젠더, 성전환자들의 군 입대 문제와 같이 새로운 도전과제(앞으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를 맞닿게 되었고 11월11일 개최된 군대와 게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인권의 길을 찾다 토론회에서는 늘 피하고 싶었던 주제였던 '군대에서의 게이로맨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동안 사건지원과 대응에만 국한되어 군 관련 이슈가 다루어져 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도전과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군대에서 차별과 인권침해 해결이 초점이었던 활동도 이제 ‘군대에서 어떻게 하면 개인의 성적지향을 허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쉽게도 2008년 프로젝트에서는 넓혀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같은 도전과 물음은 유의미한 것으로서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활동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의
활동을 기대한다


6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무지개빛 인권바람! 군대에서 솔솔~] 프로젝트의 최대의 성과는 바로 군대와 성소수자라는 제한된 이슈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군 관련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병사의 고통이 접수되었을 때는 이미 여러 전문가들의 지지,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건해결과 피해군인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법률, 의료지원은 물론 인권침해 행위를 분석해 줄 사람까지 모두 함께해야 가능하다. 근본적인 군 개혁이 없는 이상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침해 사건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프로젝트 기간 동안 문제의식을 넓혀주고 쟁점을 더해준 단체와 개인들이 있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의 발족은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왔던 전문가, 활동가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군대에서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인권침해와 차별에 반대한다.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한 상담을 기본으로 하지만 인권침해 사건을 민첩하게 대응하고 부대 내에서 관련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며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병영지침서

'와 같이 간부나 사병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다. 사실 동성애자인권연대나 한국게이인권운동 친구사이와 같은 단체에 상담을 의뢰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결과와 상관없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여전히 많은 게이, 트랜스젠더들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인권침해와 차별을 예상하면서도 묵묵히 부대에서 참고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소박한 꿈은 군입대한 성소수자들이 네트워크를 알고 자신의 병영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만큼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비록 네트워크가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고 있지만 앞으로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상담과 지원을 넘어 군형법 92조 계간금지 조항과 같이 차별적인 제도들을 바꿔내는 활동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S.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홈페이지

     www.guniv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