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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LETSSAY] 4월의 렛세이

by 행성인 2014. 4. 30.

렛세이어 달

<또 주제를 벗어났네요. 애초에 삶에 주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괜찮다고 쳐요.>


악세사리. 나는 악세사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이다. 귀는 뚫었지만 귀걸이는 하지 못한다.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이상 벌겋게 부어오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물감 자체를 좋아하지 않음에 귀걸이는 나와 거리가 멀다. 같은 이유로 목걸이도 꺼려진다. 십대에 접어들기도 전에는 십자고상이 달린 금목걸이를 차고 다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벗어버렸다. 머리핀은 제대로 하는 법도 모르고 성가시다. 머리끈이야 검은 고무줄이면 된다. 악세사리라기에는 너무 실용적이기도 하고. 팔찌역시 귀찮음 때문에 거리를 두게 되었고, 자거나 씻을 때도 풀러놓지 않는 손목시계만이 자리를 지킨다. 반지, 반지 역시 성가시다.

  

 반지. 내가 살면서 끼우고 다녔다고 기억하는 반지는 두 개 뿐이다. 어린 시절 대모님이 사주신 묵주반지, 그리고 2주도 끼지 못한 커플링. 묵주반지야 아직도 엄마 화장대 구석에 먼지를 먹으며 모셔져 있지만, 커플링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언니, 밝은 색 말고 무슨 색 좋아해? 밑도 끝도 없던 그 애의 물음. 응, 검은색. 

그 애는 가는 은색 실반지와 조금 굵은 검은 반지를 두개 씩 사왔다. 아마 비싸봐야 팔구천원쯤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그 반지는 나와 그애의 커플링이었다. 먼저 실반지를 끼고 그 위에 바싹 붙여 검은 반지를 끼라고 했다. 하나여도 성가셨을 텐데, 두개나 되다니. 나는 2주만에 반지를 잃어버렸다. 반지도, 그 애도 귀찮았다.

  

 내가 아주 썅년임을 낱낱이 써보려고 했다. 나에게도 그 애에게도 처음이었던 연애를 아주 철저히 망친 나를 미화하지 않고 써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 계획이 틀어졌다. 학교 때문이다. 학교교문 때문이다. 

  

 올해 휴직하신 선생님 한 분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셨다. 곧잘 따르던 선생님이었다. 어느 점심시간 학교 근처를 지나다가, 제자들의 얼굴이 눈에 밟혀 잠시 들르셨단다. 그런데 선도부와 새로 온 학교지킴이가 교문을 열어주지 않아 여명의 눈동자에 나온 대치와 여옥처럼 창살친 교문을 사이에 두고 대회를 나누었다고 한다. 대치와 여옥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상황은 충분히 눈에 보였다. 두꺼운 교문, 제복을 입은 학교 지킴이, 선도부라고 크게 쓰여진 명찰을 맨 학생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런 학교가 아니었다. 학생들의 입시결과보다는 청춘의 봄이라는 이름의, 우리의 봄이 되어줄 고등학교 생활을 사랑하고 느끼라는 현수막을 매다는 학교였다. 선생님과 교사들이 거리낌 없이 지내는 학교였다. 학교에 배달음식을 시켜 선생님들과 나누어 먹었고, 늦은 밤 야자를 해도 여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교장이 바뀌고 여러 선생님들이 떠나며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울적해졌고, 우울해졌고, 무기력해졌다.

  

 무기력. 나는 무기력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좋아하던 노래를 듣고 글을 읽어도 울적해지기만 했다. 친구를 붙잡고 밖에 나가 찬바람을 쐬고 와도 진저리 쳐지는 무력함은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커밍아웃을 감행했다. 그래서? 그래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조금 있겠다. 한 달여 전부터 이미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 날 커밍아웃을 한 것은 무기력에 의한 충동이었다. 커밍아웃을 한 친구는 자습실 옆 옆자리. 눈짓과 입모양으로, 9시 30분이 되면 나가자고 전했다. 그때가 9시 15분쯤. 15분은 생각보다 빨리 갔다. 나는 그 친구를 붙들고 화장실로 갔다. 누군가 있길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몇 분 더 지나고 나서야 둘만 남았고, 나는 입을 떼었다.

  

"아,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말할까 말까 고민 중이야."

  

"뭔데? 그냥 말해."

  

"그냥, 커밍아웃하려고."

  

  친구의 얼굴에 놀랐다는 기색이 스쳐갔다.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잠깐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건조한 편인 손에 땀이 났고, 온몸이 긴장되었다가 갑자기 이완되었고, 아랫니가 잠깐 시렸다. 

  

"오, 좀 놀랐어."

  

 긍정적인 답. 워낙 말이 많은 편인 나는 나발나발 수 없이 말을 쏟아냈고, 그 친구는 받아줬다. 야자시간이 끝나기 직전 다시 자습실로 돌아갔고, 각자 짐을 싸서 집에 갔다.

  

 9시 반을 기다리던 찰나의 그 시간에, 가볍게 커밍아웃했던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갑자기 아무나 붙잡고 커밍아웃하고 싶다. 하교 길에 답장이 왔다. 

  

갑자기 아무나 붙잡고 커밍아웃하고 싶다

중생아

말해보거라

학원이지금끝났느니

그래서 했어

뜬금없니ㅋㅋ

ㅋㅋ

시발

나한테하는줄

존나잘들어줄라했는데

너한테는 했잖아ㅋㅋㅋㅋㅋ

__이 한테도 해봤어

?

했도고? 

아니뭐...베이스는 깔려있었지만

아직은안했잖니? 알고는있지만

아 정식으로 안했구나ㅋㅋㅋㅋ

ㅇㅇ

어 그럼 할게

그랭

나는 레즈비언이야

짜잔






​멋져?

  

그래알고있었어

와와

ㅇ ㅏ니뭘멋지냐

ㅋㅋㅋㅋㅋ

난 멋져

난 고져스해

ㅇㅅ ㅇ그래 ㅋㅋㅋ

멀...새삼스레

나중에결혼하면 초대해줭

ㅋㅋㅋㅋㅋㅋㅋ

  

 엉겁결에 제대로 커밍아웃을 했다. 한시간만에 두명 에게. 무기력은 날아갔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오겠지만, 일단은 괜찮아졌다. 그러니까, 주제에 맞는 글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아님 마는거다, 그냥. 



렛세이어 불 

<아름다움의 무게>


들꽃 묶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어릴 때 보았던 동화책 중에, 작은 아이가 이사를 갔는데, 옆집 아이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매일 매일 우체통에 제비꽃 두세 송이를, 민들레 서너 송이를, 이름 모를 하얀 꽃 몇 송이를 꽂아놓는 이야기를 보고 나는 그 꽃묶음이라는 단어에 흠뻑 빠져버렸다. 꽃묶음, 하고 말하면 느껴지는 이유모를 따뜻함이 입술에서 가슴 언저리까지 잔잔히 스며든다. 조막만한 손에 꼭 쥐어진 작고 예쁜, 조금 눅눅한 꽃묶음. 두세 송이 꽃에서 느껴지는 진심어린 따뜻함과 정성.


그리고 자라면서 그 작고 눅눅한 꽃묶음은 점점 잊어버리고, 화려하고 큰 꽃이 좋다고 생각했다. 장미, 그 중에서도 크고 화려한 꽃잎을 가진 품종들, 니콜, 섬머레이디, 에스메랄다, 작약도 좋고, 목련도. 화려한 색과 자기주장이 뚜렷한 크기와, 강한 향에 끌림은, 내가 나를 치장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 역시, 그런 화려한 사람을, 예쁜 사람을, 가만히 있어도 보이는, 존재감 뚜렷한 사람을.


꽃은 순간의 아름다움이라 더 아름답다. 순간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끝이 있다.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이 시작된다. 기억나는, 열댓 번의 봄을 보내면서 본 것은 새하얀 목련 잎에 새겨진 질척거리고 시커먼 발자국, 탁한 갈색으로 끝부터 타들어가는 장미 꽃잎, 커다란 꽃잎들이 모두 떨어져버린 꽃대의 무서운 초라함. 화려하고 큰 꽃일수록 그 끝이 더 허전하고 불쌍하고 보기 싫은 것은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순리였다.


풀린 신발 끈을 묶으려고 허리를 숙였을 때에나 발견하게 될 정도로 조용하게 펴서, 의외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어느 샌가 뒤돌아보면 사라져있는 조용한 끝맺음, 그렇게 사는 돌계단 옆에 핀 보랏빛 제비꽃들을 보았다. 그들이 사라졌음에도 크게 아쉬움이 들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있을 때 그다지 큰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내년에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다시 필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큰 존재감은 없어도 작고 예쁜 것의 소소한 발견은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이며, 슬프지 않은 끝마무리는 완벽한 마침점이다. 엄마, 엄마 딸은 이제 쓰레기를 사왔다며 장미다발을 안은 아빠를 타박하는 엄마를 이해 할 만큼 자랐어요.


아니, 그렇다고 마냥 화려한 꽃들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지쳐갈 뿐이다. 감탄하면서도, 영원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것들에게서 오는 견디기 힘든 안타까움에 마음이 들썩이는 것이 지쳤을 뿐이다. 한순간을 빛나는 존재들을 보면서 그들의 끝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제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슬플 뿐이다. 봄에 드리운 드레스 자락 끝 장식 같은 꽃들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나는 물에 젖어 축 늘어진 내 낡은 잠옷처럼 짓눌려가고 있을 뿐이다.



렛세이어 물

<얼룩덜룩>


17살이 지난 이후로 내 얼굴에 뾰루지는 올라오지 않는다. 그게 첫사랑의 열병이 끝나감을 알리는 아마 신호탄이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얼굴에 나지 않는 뾰루지는 피부 속으로 침투했다. 무수히 많은 신경과 혈관과 세포들을 타고, 근육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심장을 양식 삼아 자신을 꽃피워냈다. 아주 알맞은 환경이었다. 짝사랑이 준 슬픔이라는 달콤한 상처가 기름이었고, 그녀가 닫고 나간 문이 곧 꽉 막힌 모공이었다. 더 이상 매끈하지 않은, 그러니까 ‘어린이’가 아닌 심장이 된 것이었다.


처음에 딱지들이 떨어져 나갈 때는 남을 원망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흉터가 남을 때는 나를 원망했던 것 같다. 결국 너는 이 정도의 사랑밖에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 정도로 미숙한 아이라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굳이 나만의 잘못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뾰루지의 흉을 크게 남기는 원인이었다. 너의 잘못을 무조건 없애야만, 그리고 그 잘못을 다 내 탓이니까 내 안에 억눌러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건 역으로 너에게 부담만 씌웠다. 첫사랑과, 첫 번째 연애는 아니었지만 정말 마음이 간 사람과 하는 첫연애는 그랬다. 나는 정말 아무런 방법도 몰랐고, 어렸고, 심장이 깨끗했다.


보들거리는 솜털은 모두 과거 속에만 남아버린 지금 나는 두 번째 사랑까지 모두 마치고나서야 그 뾰루지들이 만든 흉터가 가득한 심장을 내보일 수 있다. 그런 용기가 아주 가만히 생겨났다. 처음 보는 학회 사람들에게 두루뭉술하게나마 내 이야기를 하고, 위로받고, 울 수 있었다. 말이 한 번 트니까, 두 번째도 괜찮았고, 언젠가는 나 혼자 사람들을 경계하며 닫아버린 문을 조금씩 열 수도 있을 것 같아졌다. 완전히 열기까지에는 이런 과정을 몇 번이나 더 거쳐야 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어 지금의 나는 사랑이 아직 무섭다. 외롭지만, 뾰루지가 올라오고 떨어지는 그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새 사람에게 아주 뚜렷하게 선을 긋게 만든다. 하지만 물러서면서도 발을 쭉 뻗어 그 선을 조금씩 지워 옅게 만들고 싶다. 운동장 위에 그어진 피구 게임의 선은 몇 번의 발걸음에 곧 모래와 섞인다. 흰 가루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려면 조금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진한 그 경계가 지워지는 건 금방이다.


나는 그 금방을 믿고 싶다. 연애를 더 이상 못하겠다고 주저앉아버리고 싶지 않다. 


​ 심장에 가득 난 뾰루지는, 뾰루지가 가라앉으며 생기는 딱지는, 그리고 딱지가 떨어져 생기는 흉터는 성인이 되기 위해 마음에 한 점 한 점 박히고 있다. 나는 오돌토돌한 심장이 좋다. 뾰루지가 나본 사람들만이 거울 앞의 자신을 두고 얼마나 괴로워하는 지 알 수 있다. 사랑도, 겪어본 사람이 남의 괴로움을 이해한다. 사랑을 확신하는 순간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지를. 빨갛게 부어오른 그 부위에 손가락이 아주 살짝만 스쳐도 얼마나 쓰라린지를. 그 아픔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남과 완전히 같은 깊이는 아니더라도 그 구멍을 들어다볼 용기가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 

더 이상 뾰루지가 마냥 겁이 나지는 않는다. 



렛세이어 나무

<넌 왜 항상..>


장거리 커플의 특징상 데이트 며칠 전부터는 괜히 예민해지고,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누구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보통 거의 2주 만에 보는 애인님이기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매일 볼 수 있으면 꾸미지 않는 다는 말은 아니지만, 평소 일상의 나와 비교하면 전혀 다르다는 걸 누구든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안 입던 원피스도 미리 꺼내어 다려놓고, 별 일 없으면 잘 하지도 않던 매직기가 잘 되나 확인을 해보고는 한다. 데이트하기 전 날 밤이 되면, 늘 귀찮다고 하지 않던 팩을 꺼내들고서는 뭘 붙여야 좋을까 삼십분은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 골라 붙이고서는 누워서 이번엔 뭘 하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 팩을 떼고서 처박아두었던 수분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일찍 잠에 청해본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애인님이기에 설레어서 결국 잠을 설치고 만다.


그래서일까? 애인님을 나만큼이나 반기는 불편한 존재가 늘 나와 함께 한다. 그건 인중 근처의 뾰루지. 그래서 데이트 날 아침이면 늘 전신 거울 앞에서 “넌 왜 항상…” 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아니 평소에 내가 신경을 안 써서 모른 걸지도… 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데이트에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내 마음을 무시한 채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뾰루지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얼른 파우치에서 꺼내 컨실러로 가려보지만, 내 마음과 노력이 무심하게도 오히려 더 눈에 돋보여서 나를 약 올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 괜스레 평소보다 조금 더 기초화장에 신경을 쓰고, 피부 톤은 최대한 컨실러와 비슷하게, 콧대는 높게, 눈매는 날렵하고 고혹하게, 볼은 발그레하게. 익숙하지 않은 화장이지만, 조금 더 선을 강하게 칠하게 된다.


그러고서는 손을 대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노력하며 애인님을 보러 가면 뾰루지쯤은 잠시 잊을 수 있지만, 데이트 중 우연히 유리에 비친 얼굴을 보고서 또 의식하고 나면 이걸 짜버릴 수도 없고, 혼자 속으로만 답답해하다가 컨실러로 한 번 더 가린다. 그러다 쳐다본 그녀는 무의식중에 자신 얼굴에 있는 뾰루지를 손으로 뜯고 있는 걸 보면 잔소리를 하기 일쑤. 하지 말라 하면 “답답하잖아ㅠㅠ 힝…” 그래도 우쭈쭈 해주며 손을 잡아주곤 한다. 하지만 나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주변만 건드려서 그 부분의 화장만 떠있는 것을 보고 또 짜증이 나서 예민해지고는 한다. 고작 뾰루지 하나가 뭐라고… 그런 내 속은 모르고 자꾸만 손으로 뾰루지를 건드리는 애인님. 그러다 너 피부 흉 생긴다고 이 여자야… 제발 말 좀 들어라..


사랑을 하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져서 피지선이 활발해져서 뾰루지나 여드름이 잘 날 수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면에서는 성호르몬의 분비가 활발해져서 성별성이 두드러지고 자신의 매력이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인 즉,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감수성이 예민해진 사람들에게서 뾰루지나 여드름이 많이 난다는 것. 우리가 돌아봐도 이유도 없이 감정 기복이 심해지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런 피부트러블이 많지 않았나싶다. 요즘 들어 “너 정말 예뻐졌다. 사랑이라도 하는 거야?” “연애 하냐? 예뻐진다, 자꾸?” “화장 기술이 좀 늘었다? 어떻게 다 가리냐?” 와 비슷한 말들을 많이 듣는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다. “넌 왜 항상… 그 날 그 자리에 나타나는 거니…”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니까 하며 오늘도 웃어넘겨본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데 다음 주면 또 나타나겠지? 얄미운 것. 너도 내 여자가 잘난 건 알아가지고… 그래도 안 돼. 그 여자는 내 거야. 탐내지 말라고.



렛세이어 돌

<초커>


약속, 홍대에서의 약속이다. 아니, 굳이 홍대가 아니더라도.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대충 꺼내어 상의와 하의를 조합한다. 해골이 잔뜩 그려져 있는 티셔츠와 가죽치마, 그리고 종아리 부근에 커다란 해골이 그려져 있는 하얀색과 검은색의 스트라이프 니삭스. 평범한 여고생의 옷 스타일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과하지는 않게 차려 입는다. 그 다음은 화장. 항상 쓰고 다니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벗고 렌즈를 낀다. 검은 손톱이 얇은 렌즈를 눈 안에 집어넣는다. 학교에 다니는 5일 동안 화장대의 서랍장 안에 잠들어 있던 온갖 화장품들을 다 꺼내서는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얼굴선도 다시 잡고, 이곳저곳에 색칠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거울 앞에 비춰지는 것은 학교 다닐 때의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진 나 자신이다.


 얇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뼈로만 되어있는 손모양의 머리핀으로 귀 뒤로 넘긴 머리카락을 고정시킨다. 그에 들어난 귀에는 까만색의 해골이 흔들거리는 체인형 귀찌를 달았다. 내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그 해골이 이리저리로 흔들렸다. 삐뚤어진 앞머리를 빗으로 다시 정리하고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더 살핀다. 좋아, 괜찮네. 스스로 만족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초커.


 마치 검처럼 생긴 얇은 십자가가 매달린 초커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쥐었다가, 폈다가. 다른 걸 할까? 생각하면서 초커를 쥔 손을 폈다가, 아니, 그냥 이걸 하자. 라며 다시 손을 쥔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다. 거울 속의 비친 나의 목이 서늘하고 심심했다. 손에 쥔 초커를 천천히 들어 올려 목에 건다. 목에 완전히 붙도록, 가장 끝의 고리에 건다.


 초커의 가죽은 아주 가벼운 압력으로 나의 목을 누른다. 그것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슬쩍 웃음을 지었다. 심심하고 서늘했던 나의 목이 한순간에 화려하게 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끝으로 내 목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초커의 가죽을 천천히 쓸었다. 처음 내 목에 걸리기 전까지의 초커는 차가운 냉기를 가득히 품고 있었지만, 완전히 내 목에 닿아있는 그것은 이제 내 체온과도 같은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초커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어쩌면 펑크룩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였을 지도 모른다. 처음 산 초커를 목에 걸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목에 닿는 서늘한 가죽의 느낌. 나는 그 느낌에, 한순간에 매료되어버렸다. 앞으로 계속하고 다니게 될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내 목에 달라붙은 가죽과 매달려 있는 장식물이 너무나도 좋았다.


 목에 닿는, 서늘한 압박감.


 무언가가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주는 불안한 쾌감.


 살에 찰싹 달라붙은 가죽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초커, 빅토리아 여왕이 목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처음 착용했던 것이 유행이 되었다는 화려한 영국의 악세서리. 거울 속의 내 모습은 그야말로 멋있었다. 그저 단순한 장식만이 달려있는 초커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했다. 손가락으로 초커를 가볍게 잡아 살짝 당겨본다. 목과 가죽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만들어진다. 그러다 손을 놓았다. 가죽은 또 다시 나의 목에 달라붙었다.


 목에 닿는, 기분 좋은 압박감.


 나는 앞으로도 초커를 하고 다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웹진 랑은 퀴어 에세이 블로그 LETSSAY의 글들을 기고받아 연재합니다. LETSSAY 블로그에서 더 많은 에세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달, 불, 물, 나무, 돌 다섯 레세이어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LETSSAY란? 각양각색의 다섯 명의 여성 성소수자의 솔직담백한 퀴어 생활 에세이입니다. "Let's say"와 레즈비언 에세이(Lesbian Essay)라는 의미처럼 여러분과 공감할 수 있는 퀴어풀한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