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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모던 이펙트>를 보고나서

by 행성인 2009. 3. 30.


공연장 안은 아늑했다.
그런 아늑함이 무척이나 좋았다.

공연을 보게 될 좌석은 가장 앞쪽이기도 했고
연극을 하는 배우들이 바로 코앞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몰입이 더 잘돼서 좋았다.


(해리의 악몽)
해리를 제외한 극중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쓴 채 등장하고
이때 조명은 붉은듯하면서 어두운 조명으로 전환된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게이 챔피언’은 무효라고 외치면서
해리의 목을 줄로 매어 억압하자
해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조명이 꺼지고 다시 무대가 밝아 졌을 땐,
해리의 동생은 소파에 드러누워 있고, 해리 누나는 집안정리를 하다가
누워있는 동생을 깨워서 걸레질을 시킨다.
동생은 물을 쏟은 것은 해리라며 오빠인 해리를 불러 걸레질을 떠넘기려 하지만,
해리의 누나는 해리는 방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면서 동생에게 걸레질을 시킨다.
이때 방안에 있던 해리는 악몽을 꾸면서 악을 질러댄다.

연극에서 나누는 대화 중에서는 코믹스러운 대사들도 있어서 재미는 쏠쏠했었다.

해리의 누나는 기자가 온다면서 집안정리를 하고,
해리는 잠에서 깨어서 나와 동생에게 다리를 보여주면서 다리에 털이 많이 있냐고 묻는다.
그는 동생의 대답에 안심을 하면서 소파에 같이 앉는다.

그리고 나서 곧 기자가 오고
해리의 동생은 무언가 일을 꾸미는 듯 기자와 대화를 하다가 사진을 건네준다.
시간이 흐르고, 해리의 누나와 동생이 퇴장한 뒤,
해리와 기자, 둘만이 남게 되고...

기자도 권투선수출신이라는 말에
해리는 무심코 기자의 몸을 더듬으면서 근육이 물 근육 같다고 말하는데,
이에 기자는 불쾌하다 듯이 해리의 손을 뿌리치면서 돌아선다.

그리고는 기자가 글러브로 해리의 얼굴을 치면서 게이새끼, 호모새끼라고 욕을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폭력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해리의 모습이 이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수많은 성 소수자의 모습과 내 모습과 함께 겹쳐지면서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증오감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 뒤 장면에서 진호가 목을 매고
해리의 진호를 부르는
안타까운 비명이 들리면서 무대조명이 다시 꺼진다.
물론 이 장면이 나온 이유는 진호도 기자에게 협박전화를 받은 이유였지만,,,


 

                                          ▷ 연극 모던 이펙트(사진출처_ OSEN)


갑작스러운 장면전개에 조금은 이해가 안됐었다.

장면이 바뀌고 해리가 동생 은이의 친구 희진과 사귀는 걸로 전개 되는데,.

진호가 해리의 집에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아닐 거라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장면과,
‘해리는 그럴 수 없다.’라며 희진과 말다툼을 할 때, 희진의 반응이란,,,,

이 장면에서
희진이는 진호가 자신을 좋아해서 이러는 것이라는 생각만 하는데..흠,
이 장면에서 모두들 웃긴 했지만,
만약 진호의 입장이 내 입장이었더라면,,
그러니까 희진의 반응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혹시나 의심이라도 받을까봐, 더 물어볼 수도 없는 그런 입장에 내가 처해 있다고 한다면,,
너무나 답답하고, 초조하고, 손발이 다 떨렸을 것이다.

물론 갇힌 생각의 틀 안에서만 상상하는 희진이 관객들이 보기에는 그저 웃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 과연 이 장면이 그렇게 웃기는 장면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한편, 연극이 끝을 향해 치달으면서
이 연극 속에는
해리의 동생 은이의 고통도,
아니, 성소수자가족들의 아픔도 묻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성소수자로서 본인이 더 힘들겠지만,
같이 있는 가족들도 힘들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끝 장면에서
해리 주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보여준 모습은 충격이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과 대사들..
나는 극중 해리 누나가 보여준 그간의 태도에
그래도 조금 낫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결국엔, 해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많이 허탈하고,
슬펐다,,,

결국에 해리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쓸쓸했다.

끝으로
레즈비언인 나로서는,,
요새 뮤지컬이라든지, 영화에서 동성애를 많이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에,
헤테로들이 그래도 성소수자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란 기대감과,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것 또한 나쁘지 않아서 좋기는 했지만,,,
많은 작품들이 성소수자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순한 홍보위주로 쓰인 다는 것에 많이 안타까워했었는데,
이번에 본 모던이펙트는 단순한 홍보위주가 아닌 것만으로 감사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슬픈 장면이라든가, 그런 감정들을 연기자들이 훌륭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
좋긴 했었지만, 헤테로와 성소수자가 같이 본다고 해서 이 작품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같을 순 없으니,, 아까처럼, 웃기지 않는 장면에서도 헤테로들은 마냥 웃기는 장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성소수자와 헤테로들이 느끼는 생각들과 느낌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소통이 될 만한 좋은 표현들도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그리고 한편으론.
성소수자로서 이 작품을
혹은 다른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작품 속에서 거의 다뤄지는 대상들이 남성동성애자이고,,
(물론 이것의 이유는 BL물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지만,,,)
성소수자 안에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보단, 남성 우선'이라는 사고방식이 반영되는 거라고 느끼게 되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만큼, 여성성소수자들은 숨겨져만 있는 존재인 것인가..? 왜 꼭 그래만 할까?
여성성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본 날들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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