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소수자 노동자] ⑥ 저는 디자인 노동하는 게이이자 HIV 감염인입니다

2022. 1. 24. 17:51성소수자와 노동

어디에나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일터에도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성소수자 동료가 있는지 묻는다면 대부분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혐오와 차별을 피해 일터에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막연한 상상 속에 가려진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기록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기고는 현재를 살아가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기획됐고, <노동과세계>에 게재됩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현장을 바꾸고서야 비로서 나의 삶이 바뀌었듯, 모두를 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함께 나서야 일터도, 우리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 기고를 통해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곁에 함께하는 동료가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비오, 이사벨, 선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소리는 30대 남성으로 게이이자 HIV(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 감염인이다. 온라인 마케팅 회사를 시작으로 여러 회사의 웹 디자이너로 노동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게임 그래픽을 전공했지만, HIV 확진 판정을 받고 힘들어하던 시절에 우연히 선배의 제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에 애착이 생기게 됐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순간1. 이분법 빌런과 마주하기

 

“남자가 여성스럽다든지, 사회적인 통념 상으로 ‘남자는 이래야 된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 그런 것 때문에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성별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걸로 인신공격을 하기도 해요. 뭐, 저한테는 ‘넌 그래 가지고 결혼이나 하겠냐’거나 ‘연애나 하겠냐’라고 할때도 있어요.”

 

소리가 다니던 첫 회사는 일주일 내내 야근을 11시까지 했다. 다행히 현재 다니는 직장은 노동 강도가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급여나 복지 등 다른 노동 조건도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문제가 있는데, 바로 ‘일터 괴롭힘’이다. 그가 속한 부서의 팀장은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명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직원들을 평가하고,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공격했다. 소리는 ‘여성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인신공격을 당해야 했고, 심지어 팀장은 소리가 게이 같다며, 자신에게는 말해보라고 커밍아웃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술을 먹다가 갑자기 팀장이 물어봤어요. 게이냐고. 다행히 둘만 있을 때 물어보긴 했는데. 갑자기 막 고기 구워가지고 삼겹살에 소주 먹으면서 팀장님 한 잔 받으세요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얘긴데 너 혹시 게이냐고, 남자 동성애자냐’고 이러더라고요? 에, 무슨 소리세요, 이랬어요. 무슨 소리냐고, 갑자기 뜬금없이 왜 그런 걸 물어보냐고, 진짜 어이없게.”

 

팀장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가르치는 연기 수강생 중에 동성애자가 많아 본인도 여러번 접해봤다면서, 소리에게 게이냐고 물어봤다. 소리는 고기나 마저 드시라고 상황을 맞받아쳤다. 일터에서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나에게 성소수자인지 물어본다. 이때 성소수자 노동자는 커밍아웃을 해도 될지, 아닌지 고민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빌런’일 확률이 높다.

 

성소수자인지 물어봤다고 빌런이라는게 아니다. 이 질문에는 ‘너는 누구냐? 너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으니 나에게만 고백해보아라.’ 라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 질문을 하는 순간 그들은 우리를 동등한 동료가 아닌 내밀한 정체성을 간파당한,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사람의 위치로 강등시킨다. 이러한 빌런의 질문엔 맞다고 대답할 수 없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쟤는 게이다!’ 라는 말이 공격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마케팅은 업계가 좁다고 한다. 회사가 다르더라도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건 물론이거니와, 작은 소문도 금방 퍼진다고 한다. 커밍아웃 후에 부정적인 반응이 온다면,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숨긴 채 일하는 게 힘들지만,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직장 내에서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순간2. 가진 사람

 

“하필이면 그 회사에 군면제가 한 분 계셨고, 그 사람이 (신체검사) 5급 면제였던 거에요. 그 사람이 저한테 딱 물어보는 거예요. ‘소리 씨는 민방위 안 가? 민방위 언제 가?’, ‘면제도 민방위는 가잖아.’ 이러는 거에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저도 말문이 탁 막히더라고요. 저도 상상을 못 했거든요. 면제라고 하면 면제겠거니 하고 물어보지 않는, 지금까지는 그래왔으니까. 되게 소름 돋으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가긴 했어요. 넘어갔는데, 그때부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소리는 일터에서 성적 지향성만으로 차별받는 것이 아니다. 소리는 어느 베스트셀러 소설에 나오는 ‘카일리’라는 애칭을 가진 친구와 함께 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HIV 바이러스다. 비타민 챙겨 먹듯 약을 꾸준히 먹고 관리만 하면 되는 이 질환을 국가가 나서 에이즈 예방법을 따로 만들어 차별의 지표로 활용하고 있었다.

 

최근에도 소리는 가고 싶었던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려 했지만 군면제 여부와 함께 면제 사유를 적는 란이 있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병역법은 HIV 감염인을 민방위도 받지 않는 6급 면제로 분류한다. 누군가는 면제 받은 사람을 ‘신의 아들’로 신기해하거나 멋진 일로 보지만, 일터에선 멀쩡한 한국 ‘남성’이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것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6급 면제는 대부분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질병 및 장애를 가진 경우만 해당된다고 한다. 6급 면제 중에 질병 여부를 눈으로 분간할 수 없는 사람은 HIV 감염인들 뿐이다.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HIV감염인들을 사회 테두리 바깥으로 몰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HIV 감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크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동료들이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될 때 어떤 태도로 바뀔지 긴장하며 일해야 한다는 사실과 한국 사회에서 항상 따라다니는 그들만의 군대 신화 속에서 소외되고 다른 대답을 준비 해야 하는 상황들이 HIV 감염인 노동자들의 가슴을 조이고 있었다.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 IDAHOBIT) 맞이 지하철광고에 누군가 붙인 포스트잇

 

순간3. 강제된 이중생활

 

“이중생활을 하게끔 되더라고요. 초반에는 일반적으로 (페이스북)계정 만들어서 다 돌리려고 했는데, 걸리는 게 많더라고요. 사진 하나를 올려도 고민이 돼요. 올렸을 때 커밍아웃을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때부터 ‘게북(게이 페이스북의 준말)’을 만들어서 관리를 했던 것 같아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하는 걸 보면, 아마 회사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던 거겠죠.”

 

소리는 평소에 친구들과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직장에서는 그럴 수 없다. 처음에는 ‘남자’친구를 ‘여자’친구로 바꿔서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대화도 오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사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이렇게 이중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인지,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이 그러하듯, 그도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본인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커밍아웃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이중생활에 따른 불편함을 떠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에이즈 보도가 나오고 나서, 부모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울먹이면서, ‘군대 안 가고, 계속 약 먹고 있는 게 혹시 에이즈냐’고. 군대를 안 갔으니까, 부모님한테는 핑계를 둘러대야 했는데, 그냥 몸이 안 좋아서라고만 얘기를 했거든요.”

 

많은 기자들과 시민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HIV 감염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에이즈 관련 기사를 보도하는 기자들은 HIV 및 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한 선정적인 보도 경쟁을 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이즈 혐오’는 감염인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소리도 이 상황이 부당하다고, 지금 당장 혐오 조장을 멈추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다. 하지만 차마 자신을 드러낼 수 없기에, 그는 이런 부당한 현실을,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을 삼킬 수밖에 없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주년 기념 이미지

 

함께 살아가는 사회

 

같은 성소수자인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 단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감염인들을 색출해 구분하려 하고 그들과 자신을 다르게 규정하려 한다. 얼마 전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열린 문화제에서 어느 활동가의 발언을 떠올린다. 

 

‘여성이라는 성별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고, 고졸이라는 학력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고, 동성애라는 성적지향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이라는 성별과만, 고졸이라는 학력과만, 동성애라는 성적지향과만 살아가지 않는다. HIV감염인 역시 HIV바이러스와만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갖춰질 때 어떤 성별과, 어떤 학력과, 어떤 성적지향과, 그리고 HIV바이러스와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2021년 12월 3일 국회 앞,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단 에이즈 문화제 미류 활동가 연대 발언

 

우리는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접점이 있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체성과 함께 살아가고 있든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마주 보며 살아가면 어떨까? 그러기 시작할 때 우리는 손을 잡고 연대하며 우리의 삶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기사는 2017년 아름다운 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인터뷰를 재가공하였습니다.

 

 

* 이 글은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세계] 에도 공동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