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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3. 출생: 두 아빠의 품 안으로

by 행성인 2022. 6. 28.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출산 예정일을 1주일 정도 넘겼으나 아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출산기가 느껴져 출산을 위해 산모가 입원을 하였습니다. 남편, 사촌 누나와 함께 산모를 면회 갔습니다. 병원은 군립병원으로 아주 작았습니다. 시설도 많이 낙후되어 산모와 아가가 걱정 되었습니다. 부디 산모와 아가 모두 무탈하고 건강하게 퇴원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생부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병원 근처 바닷가에 잠시 마실을 나와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무지개가 뜬 것을 보았고 ‘아 이내 아기가 나오려나 보다’라고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정오 즈음에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기는 강보에 싸여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나가 아기를 저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아기를 안은 저는 얼 떨떨 하기도 하고 신기했습니다. 제 생애에 단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아기를 품에 안아본 순간 이었으니까요.

 

생모가 10달 뱃속에 담았다가 보내는 마음이 어떨까 싶어, 생모에게 한 1주일 정도 아가와 함께 보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모는 하루만 아가와 함께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마 하루 보다 더 오래 함께 하면 정들어서 보내기가 힘들 것 같아 그런 듯 합니다. 아기는 퇴원 후 그렇게 생부모와 언니 오빠들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저희 집에 왔습니다.그리고 하루 아침에 이렇게 세 식구가 되었지요.

 

자 이제 아기가 집에 도착했으니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기는 잘 먹고 쉬아도 응아도 잘 하였습니다.

남편은 아기가 너무 작아 목욕시키기가 무섭다며 저에게 하라고 넘겼습니다.

저야 간호학교 시절 신생아실 실습에서 아기 목욕시킨 경험이 있어 제가 전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수유는 둘이 번갈아 가며 먹였지요.

 

가장 큰 어려움은 밤에 아기가 울면 수유를 먹이고 다시 재워야 하는 일 이었습니다. 워킹 맘들이 밤에 자다 깨어 아기를 돌보면서 숙면을 하지 못 한 채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는 일은 정말 너무도 힘겨운 육아 노동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우리는 낮에는 제가 주로 담당하고 밤에는 남편이 맡기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잠 귀가 무척 밝아서 금방 일어나는 스타일 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몰라 아기가 깨는 것도 모를 것이기 때문 입니다.

 

신생아 때 피부 보호와 발진 예방을 위해 천 기저귀를 준비했습니다.필리핀이 워낙 덥고 또 습한 날씨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습니다.

 

젖병 소독은 초반에 물을 끓여 열탕 소독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전기 소독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구입해서 사용해보니 무척 편리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모기 였습니다. 필리핀은 전염병 가운데 모기로 인한 뎅기열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 입니다. 정부는 뎅기열의 발생 주의보를 내리기도 합니다.

아기를 모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기장이 설치된 침대에서 아기를 재우곤 했습니다.

 

수유와 먹이는 물은 생수를 사서 먹였습니다. 우리는 시내까지는 차로 약 1시간 가량 걸리는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유와 기저귀 그리고 물티슈는 미리미리 사다가 집에 쟁여 놓아야 했습니다.

 

간호사인 저에게는, 아기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기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병원 퇴원할 때 받았던 기록지에 키와 몸무게가 기준점 (Base Line)이 됩니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기 건강관리 차트를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먹는 횟수와 양, 그리고 정기적으로 몸무게를 재서 체중이 어느 정도 늘었는지를 측정해볼 수 있지요. 신생아 때는 거의 매일 활력증상을 측정하고, 점차 1주 간격, 그리고 1달 간격으로 측정하여 기록해서 비교해 보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접어 놓았던 아동건강간호학 책에서 ‘영아돌연사’라는 무시무시한 건강문제를 공부하고 예방법을 유념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란 자나깨나 이렇게 자식 걱정을 해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기가 가르쳐 주었지요.

 

이렇게 아기는 두 아빠의 품에 안겨 하루 하루씩 커서 어느덧 첫 달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두 달, 세 달…점점 더 무럭무럭 커 나갔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아가 인보야,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먹고, 쉬아 응아도 잘 하고 튼튼하자 꾸나. 

 

다음 편에서는, 아기가 먹는 수유와 이유식 이야기를 전해드릴께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