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행성인 미디어 TF)
활동을 하다 보면 정해진 스텝이나 전거가 없어 새로 길을 내고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자원을 확보하고 사람을 만날지, 언어를 어떻게 다듬고 어떤 미디어를 활용해서 바깥에 알릴지, 나의 메시지는 누가 들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작업은 때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드는 것이다.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문상훈 작가는 2019년 이지오 기획자와 함께 전시 《레즈비언!》(별관, 2019.9.19.-9.26)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활동과 예술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에 주목한다. 언니네트워크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읻다, 보지파티와 협력한 전시는 일종의 아카이브를 감각적으로 전시했다. 여기서 문상훈은 퀴어여성운동 안에서 활동가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균열을 내지만 생채기조차 쉽게 나지 못했던,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문화를 만들고 터전을 일궈온 활동의 기예에 예술적 실천을 유비한다. 그들의 활동을 예술의 관점으로 조명하지만, 이는 동시에 예술 자체도 활동의 기예와 공명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나 아쉬웠던 점은 기록되지 않거나 따로 아카이빙되지 않은 활동들은 전시의 시야 바깥으로 밀려나야 했던 점이었다. 이미 행성인을 비롯한 단체와 지역에도 수다한 여성커뮤니티와 활동들이 있었는데 왜 작가는 놓쳤을까. 또 다른 아쉬움은 가뜩이나 척박한 퀴어 운동 안에서도 퀴어 여성, 레즈비언 운동을 이야기하려다보니 삐딱한 접근 보다는 존중과 존경의 태도로 충실했던 점이다. 선배여러분이 애쓴 덕에 이렇게 활동하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비평적 아카이빙의 태도가 아쉬웠지만, 입소문으로만 전해지거나 아카이빙 기관 또는 단체의 묵혀 있는 책장 속 자료들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전시는 여기 이런 사람들이, 이런 행동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의미 있었다.
질문은 전시 이후 다른 질문으로 연결된다. 왜 한국에 자신을 드러낸 레즈비언 작가는 없을까. 당위와 한탄보다는 아쉬움이 비쳐지는 질문은 어째서 레즈비언의 습속과 문화는 게이 커뮤니티처럼 가시화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좀 더 강렬하게 연결된다. 다시 말해 퀴어적 실천이 모든 것을 해체한다고 선언하지만, 해체할 무엇이라도 손에 잡히면 좋겠다고, 혐오할 무엇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2019년의 개인전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킵인터치, 2019.12.13.-12.29)에 선보인 사진 작업 〈손 genital〉에서 그는 레즈비언 커플을 찾아다니면서 서로의 모델과 촬영자가 될 것을 요청한다. 커플은 상대의 모델이 되고 그를 찍는 이가 된다. 손의 제스처들은 레즈비언 섹스에서 성감대이자 도구로 사용되는 손을 찍는다. 모델은 저마다 포즈를 취한 손들에 제목을 붙이는데, 깁(give, 섹스 시 상대에게 손가락 등을 삽입하는 행위)과 스킨십의 포즈를 취한 손과 그 모델뿐 아니라 손길이 닿았을 촬영자(파트너)의 시선까지도 성적 뉘앙스를 끼얹는다.
같은 전시에 배치된 〈hello stranger〉는 그보다 더 처연한 방식으로 레즈비언의 존재가 어떻게 만남의 척박함으로 연결되는가를 환기한다. 작가가 이상형을 목록화하고 그에 맞는 익명의 레즈비언을 소개받으면, 그와 대면하지 않은 상태로 정해진 시간 동안 이동을 기록하고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작업 매뉴얼상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지는 않는다) 생면부지 남이지만 GPS를 기반으로 서울 지도 위에 점이 되어 그려가는 동선의 기록은 한시라도 근접하거나 스치는 우연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보기에 객관적으로 설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리적 거리와 정보값은 데이팅어플의 사용자들을 확인하는 방식을 부분적으로 전유하지만, 누군가의 소개를 매개로 타인의 동선과 이어지는 작업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판타지 의존적이다. 익명의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비교적 낭만적으로 의미부여하는 작업은 한편으로 데이팅 어플의 냉정하고 무심한 네트워크를 어떻게 설명해낼 것인가에 대해 빈칸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공동체의 빈칸일까를 가늠하게 되지만.
공동체의 갈망은 크지만 손에 쉽게 잡히지 않고 갈라치기 쉬우며 안전을 보장할 자원과 제도, 지지대가 없으면 금방 고립되고 폐쇄적으로 돌아가기 쉽다. 공동체는 한시적으로 구성되고 증발하기 쉬우며, 커플 역시 결속해줄 장치가 감정 뿐이라면 연약한 관계의 끈이 틀어지고 단절되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성원들은 만남에 취약하고 예민해지기 쉬우며 정서적 낭만보다는 안전과 안정을 위한 좁은 관계를 택한다.
그럼에도 갈구하게 되는 이 감정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가설해나가는 공동체로 섣불리 부를 수 있을까. 작가는 과거 어떻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동류의 타인을 만났는지 살피며 그 문화와 집단의 습속을 취합하고 무대에 올린다. 작업은 타인과 동류 집단을 재현하고 전시하는데 나아가 재현하는 과정 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사람을 만나며 습속의 다른 가지를 만들어낸다. 문상훈은 《드랙킹콘테스트》 초반 드랙킹 퍼포머로 활동하다 3회부터 공동 기획자로 이름을 올린다. 무대는 레즈비언과 레즈비언으로도 여성으로도 특정할 수 없는 정체성, 소위 퀴어로 일단 부르고 보는 이들과 드랙킹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수어통역사들을 무대 위 퍼포머로 나란히 올리고, 척박한 환경을 살아낸 ‘선배’ 퀴어들을 배우로 섭외하여 그들의 발화를 몸짓과 태도로 발산시킨다. 무대는 때로 시대착오적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압축적인 여운으로 남기지만, 동시에 앞으로 열릴 공동체를 펼쳐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다소 수다스럽고 얄궂다. 가령 드랙킹콘테스트가 근래 기획하고 상연한 《드랙X남장신사》는 무대의 재잘거림 비중이 높아지면서 부치가 무엇인가, 퀴어와 트랜스젠더가 무엇인가에 대한 속류의 상황들을 무대에 올린다. 가령 남자를 모방하고 따라하는 부치라는 속설에 각잡고 비판하는 퀴어 이론과 정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게 어떻냐'는 식의 삐딱함과 오류의 상황들을 열어가면서 '그래서 부치가 뭔데'를 반복하고 '그럼에도 부치는 인권'이라는 엉뚱한 결론으로 총총 거리며 정체성을 보란듯 미끄러지는 집단의 쾌락들.
집단의 무대는 작가 개인의 몸이 체현하는 성별 표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속류 남자들의 특징을 모방하고 패러디하는 드랙킹 퍼포머 ‘존존슨’으로 무대에 올랐던 문상훈은 최근 이상적 남성성을 향한 욕망에 주목한다. ‘공간:일리’에서 기획된 전시 《규중칠우쟁론기》(2021.6.8.-10.26)에서 한 파트를 차지하는 문상훈의 전시 《No Future》는 작가가 자신의 이상적 노화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다.
전시는 어릴 적부터 가졌던 남성에 대한 선망을 체화하기 위해 시류의 젠더 통념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는 전시장에서 타투를 새기는데 나아가 종로와 강남의 병원들을 찾아 수염과 구레나룻 이식수술을 상담받는다. (두 지역의 병원이 상반된 태도로 환자를 상담한 지점은 만감이 들게 한다.) 조롱이 아니라 이상적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여정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속류 한국 남자와 이상적 남성상이 지정성별 남성이 아닌 같은 몸을 경유하며 재현된다. 이질적 층위의 남성과 남자와 비남성성은 결국 남성의 과포화와 공백을 한데 드러내며 어떤 남자/남성성을 물음표와 함께 그려가는 모습이다.
작가는 본인의 몸과 서사를 경유하면서 이를 공동체에 연결시킨다. 취약한 환경으로부터 취약해진 이들이 서로를 결속하는 이상한 무대를 지속하는 작업은 당연히 불화와 갈등을 낳을 것이다. 그 속에서 신뢰를 확인하며 서로의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환대하자는 주장은 말처럼 아름답고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약속이라 한다면 당신을 존중하고 내가 변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공동체에 왕도는 없다는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차이를 개인의 몸 안에서부터 합의되지 않는 남성성의 표현에서 타인과의 관계로, 공동체의 모습을 한데 그려가는 방식으로 조망하는 듯하다. 그것이 활동의 영역인지 예술의 영역인지, 혹은 사랑에 필요한 기예인지 아직 명확히 구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작가가 당장 구분할 의향을 보이는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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