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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행성인 연속 특강 후기3] 기후위기는 어떻게 성소수자를 관통하는가: 행성인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시민의 위치에서 행동하자

by 행성인 2022. 8. 29.

 

이호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강연 일주일 전,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무참하게 쏟아지는 비는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불편이었지만, 이를 피할 거처가 없거나 이동이 어려운 사람, 폭우를 맞으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 취약한 주거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명과 안전, 삶의 토대가 휘청이고 무너지는 일이었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직접적으로 체감한 이후라 강연에서 소개된 지구 곳곳의 기후부정의의 사례로부터 눈 돌리기 어려웠다. 

 

두 시간을 꽉 채워 진행된 강연 내내 수많은 이미지를 함께 보았다. 강연자인 이송희일 감독님이 시각매체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강연의 진행 방식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리고 그 진행방식 덕분에 왜 기후위기가 단순한 인구 증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을, 남반구를,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착취하며 성장해 온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인지, ‘탄소중립이라는 프레임이 왜 문제인지기후위기가 왜 정의의 문제인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와 싸운다는 것은, 과거든 현재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이다. 퀴어 해방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싸움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강연자료 중 

 

행성인이 이송희일 감독님에게 강의를 요청한 이유는 그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게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기후위기와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부족한 한국 상황에서 기후위기는 성소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성소수자로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한지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강연을 통해 기후위기는 주거와 난민, 보건의 위기라는 점에서 취약한 조건에 놓인 성소수자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이미 지구 곳곳에서 기후위기로 인해 영향을 받고, 또 싸우고 있는 퀴어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지 성소수자의 삶의 취약성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퀴어의 감각, 저항과 돌봄, 연결로 설명할 수 있는 퀴어운동의 유산이 기후위기의 시대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구축하는 일에 힘을 줄 수 있는 일이기에 기후정의운동에 함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깊게 마음에 남았다. 강연 후반부 시간에 쫓겨 길게 듣지 못한 이 이야기를 깊게 나눌 다른 자리를 기약해본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고 나면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기후위기가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이 체제가 변해야 하는 거대한 의제라는 점을 알게 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을 바꾸어 내야 하지 않을까, 미약하더라도 무언가 개인적인 실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강의의 말미에 우문일수도 있는 이 질문을 강사님에게 던졌다. 강사님의 답은 추상적이면서도 선명했다. 지구에 발 딛고 있는 내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이 행성의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생각을 해보는 것,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세상을 보는 시선의 위치를 이동시키고 나면,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소비를 통한 실천에서 벗어나 시민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집회에 나서는 일도 그 행동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의 중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지만, 돌아오는 9월 24일에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기후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 자리에서 많은 성소수자들과 함께 우리의 구호를 적은 피켓과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