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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행성인 연속 특강 후기2] 과거의 나로부터 떠난다는 것: 현실에도 판타지는 있다.

by 행성인 2022. 8. 29.

 

지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과거의 나로부터 떠난다는 것’이라니 강의 제목이 참으로 서정적이다. 제목은 서정적인데 내용은 격동의 드라마 한 편이다. 남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홍은전이 빼곡한 강의실을 탈출하여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어 함께 싸우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여정 끝에는 ‘당신은 차별받는 사람인가, 저항하는 사람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사람들은 말했다.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말에 힘껏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과 같은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말할 때, 노들은 그저 차별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차별받는 사람들이기만 한 건 아니다. 우리는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회전문이 나온다. 첫 회에서 준호는 영우에게 쿵짝짝 왈츠 박자를 알려주며 함께 회전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 영우는 준호가 알려준 박자에 맞추어 혼자 회전문을 통과하며 뿌듯함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회전문은 극중에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치로 많이 쓰였었다. 누군가는 함께 통과하고 누군가는 회전문을 잡아주었으며 누군가는 옆문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저 문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영우의 상상이 아니라 누군가 건넨 제안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따스한 판타지 드라마는 뜨거운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듯싶다. 지하철 4호선 역사에 붙은 단단한 구호처럼 말이다.

 

다시 강의로 돌아와 강사님은 노들장애인 야학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좋았던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고 밝혔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적응하는 세계에서 저항하는 세계로, 냉소나 냉담보다는 희망을 더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공동체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다르게’ 관계 맺으며 그녀는 함께 저항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깨워준 이들이 계속해서 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수명이 다했다는 무시무시한 징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우영우는 뿌듯함을 건네며 끝났다. 그러나 드라마 속 회전문은 여전히 누군가는 통과할 수 없는 벽으로 거기 있다. 저 문을 없애버리자는 외침과 함께 뜨거운 다큐멘터리는 다시 시작하지만 그 곁에 ‘저항’과 ‘연대’로 우리가 함께 싸울 때 어쩌면 다큐멘터리도 따스한 판타지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