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미디어 액티비즘을 주제로 강의를 제안했지만 사실 막연하게 떠오른 키워드였다. 모바일과 SNS를 바탕으로 1인미디어가 일상이 되고 소비주체가 미디어 컨텐츠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퀴어들은 어떻게 제 목소리를 내고 이슈를 만드는가에 대한 동시대의 단편적인 경향들을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김일란 감독 섭외가 한 수였는지 모른다. 강의는 80년 초반 ‘광주비디오’로 시작하여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뉴스단’으로, 최초의 독립다큐멘터리로 일컬어지는 〈상계동올림픽〉(1988) 이후 결성된 ‘푸른영상’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미디어액티비즘의 주요 계보를 짚는다. 투쟁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 언론과 미디어 통제 속에서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들어가 공권력의 폭력과 투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활동은 기록에서 나아가 기록된 장면들을 함께 보고 유통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사진과 달리 인화 과정이 없고 편집과 복사가 가능한 영상은 투쟁의 전선에서 기록을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매일같이 기록한 영상을 함께 보면서 투쟁을 영웅담처럼 회고하고, 현장에서 카메라를 보면 힘이 나더라는 〈상계동 올림픽〉 당시 상계동 주민의 회고가 기억에 남는다.
강의는 시대별로 기술발전과 보급에 따라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액티비즘이 어떤 변화 양상을 보이는가를 말한다. 카메라 휴대와 활용이 용이해지면서 여성 감독들이 많아지는 배경에는, 운동의 양상이 다변화하는 상황이 맞물린다. 운동 내부 위계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여성주의(가 감독은 입에 맞는다고 한다) 미디어 활동가들의 분투는 새로운 분기점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변영주 감독의 〈낮은목소리〉는 그간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조명해온 위안부 여성의 이슈를 이성애 가부장제의 생존자로, 국가폭력의 생존자로 바라본다. 강의는 예의 관점 전환에서 나아가 해당 작품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점을 강조한다. 김일란 강독은 변영주 감독이 단순한 기록물 너머 개별의 완성된 작품으로 제작하고자 했음을 언급하는데, 여기에는 90년대에 이미 익숙해진 현장 기록 활동에 변별되는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탐구하는 미디어 액티비스트의 고민이 보이는 지점이기도 했다.
90년대는 국내 영화제가 늘어나면서 관객들이 보다 안정된 장소에서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이르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미디어 환경에 일대 변화가 찾아온다. 한미FTA 반대 집회 당시 매일같이 이어진 행렬에는 노트북과 소형디지털카메라를 함께 들고 다니며 팀처럼 현장을 생중계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0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연분홍치마의 활동은 변화하는 정치·미디어 환경 위에 이뤄진다. 2009년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노동자 투쟁의 폭력적 탄압을 기록하는 중에도 놓을 수 없었던 다큐멘터리 역할에 대한 고민은, 비슷한 시기 퀴어커뮤니티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성장하는 과정 위에 퀴어적인 재현이 무엇인지, 성소수자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연장한다. 그렇게 연분홍치마는 〈3×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너에게 가는 길〉에 이어 〈무브@8PM〉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일란 감독은 퀴어를 재현하는 작업은 스타일과 형식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여기에는 단지 장식적이고 미적인 판단 외에도 그들이 재현되는 이미지로부터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윤리적 접근을 포함한다. 시간을 더할수록 사람들의 얼굴과 몸들이 많아지는 포스터들은 당사자를 사려 깊게 담는 과정에도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미디어 액티비즘도, 현장의 기록도, 다큐멘터리 제작도 지금의 운동이 있기에 가능했으며 지금까지 만들어온 운동의 현재를 보여준다는 언급이 기억난다.
보이지 않는 소재에 시선을 두고 기록하는 과정은 많은 사람이 봐야 하는 만큼 어떤 관점으로 담을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날을 세워 질문하지만 왜곡될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강연자의 문장은, 기획과 제작, 유통 과정에 어떤 기예가 필요한가를 가늠케 한다. 특히 유튜브 채널 ‘연분홍TV’를 이어가면서 이전과 다른 관객을 만나고 보다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환경 위에서, 농담을 던지고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에는 그저 예능적인 접근 외에도 안전한 공간과 신뢰에 기반한 관계 설정, 더불어 예의를 지키면서도 망설임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둔다고 하는데, 신중한 언급에는 연분홍치마의 제작활동이 운동 사회뿐 아니라 대중 안에서 어떤 신뢰를 더해왔는가를 가늠케 한다. 앞서 진행된 강의만큼이나 짧은 시간이 아쉬웠던 마지막 강의는 동시대 미디어 활동의 지도를 그리기에 앞서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공동체를 담는 태도에서 나아가 미디어 활동이 어떻게 공동체를 새로 그려나갈 것인지를 새삼 고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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