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환자가 지나간 자리에 웅덩이가 생겼다. 환자가 착용하고 있는 소변줄에 문제가 생겨 소변이 샌 것이다. 바닥에 빨간 점이 찍혀있다. 환자의 링겔 바늘이 빠져서 피가 줄줄 샌 것이다. 손이나 바닥에 대변이 묻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병원에서 모든 물질은 세균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빠른 소독이 중요하다. 대체로 내가 소독하나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면 청소 노동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면 빠르게 오셔서 순식간에 소독해주신다. 굉장히 든든하다. 코로나 이후에는 가운, 마스크를 비롯해 일회용품 사용이 엄청나게 늘었다. 쓰레기가 빠르게 쌓인다.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에서 가득 찬 쓰레기는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다. 감사하게도 청소 노동자가 매일 쓰레기통을 깔끔하게 비워주신다. 코로나 병동에도 당연히 청소 노동자가 있다. 한여름에 방호복을 입고 병실을 청소하는데 땀이 너무 나서 오한이 들었다는 청소 노동자의 작은 푸념을 기억한다. 비나 눈이 오면 누군가 넘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바닥을 마른 걸레도 닦아주는 사람도 물론 청소 노동자이다.
이렇게 병원의 어느 순간에나 청소 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그러나 수많은 병원이 흔히 말하는 '우리 직원'에는 청소 노동자가 없다. 오히려 병원에서 청소 노동자는 휠체어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다. 휠체어는 하나라도 없어지면 CCTV를 샅샅이 뒤져서 무조건 찾아내지만 청소 노동자에겐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단적으로 청소 노동자의 고용 형태가 그 증거다. 많은 병원에서 청소 노동자는 병원이 아니라 이름도 낯선 용역 업체 소속이다.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건 많은 의미를 포함한다. 최저임금, 당장 내일 해고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한 마디라도 말하면 바로 가해지는 부당한 압박. 이런 병원에 맞서 용기 있게 행동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세브란스 병원 청소 노동자들이다.
2016년, 세브란스 병원을 청소하던 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시급을 440원 인상해달라, 정년 퇴직을 하면 그만큼 인력을 충원해달라, 청소하면 땀이 나니까 샤워실을 설치해달라. 이에 세브란스 병원과 용역업체 태가비엠은 민주노조는 안된다며 노동조합을 촘촘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탄압에 조합원 4명 중 3명이 탈퇴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합원 4명 중 1명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30여명의 조합원이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꿋꿋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헷갈리는 분들이 있을텐데, 청소 노동자는 용역업체 태가비엠 소속이다. 그러나 세브란스 병원도 노동조합 설립 단계부터 촘촘하게 감시하고 탄압했다. 세브란스 병원 소속 직원들이 부당 노동 행위를 하다 기소됐고, 세브란스병원이 청소 노동자들의 ‘노조 탄압 규탄’ 시위를 금지해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 청소 노동자들이 세브란스 병원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청소는 사소하지 않다. 피‧똥‧고름 흔적이 금세 사라지는 것, 눈이나 비가 와도 바닥에 물기 하나 없는 것, 쓰레기 냄새가 퍼지기 전에 쓰레기 통이 깔끔하게 비워지는 것, 복도에 쓰레기가 없는 것 등등. 청소 노동자가 존재하기에 병원이 쾌적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동안 세브란스 병원은 청소를 사소한 노동으로 여겼기에 직접 고용이 아닌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고, 실제로도 청소 노동자의 존재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놓고 청소 노동자들이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용기를 내자 왜 이렇게 감시하고 탄압하는가. 구질구질하다. 세브란스 병원은 본인들 생각부터 고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객을 섬긴다는 세브란스 병원장에게 묻겠다. 하나님이 말하는 당신의 이웃에는 청소 노동자가 없는가? 다시 한번 성경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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