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주누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삶, 사실 일에 치여 사는 우리의 일상에서 한번쯤 꿈꾸는 삶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노동을 합니다. 노동을 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그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돈을 버는 것을 떠나 노동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잠깐 일을 못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잠깐의 백수 시절은 달콤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에 대한 욕구는 더 강해졌습니다. 이것은 단지 내가 당장 쓸 생활비가 부족해서 라기보다는 '일을 하고 싶다', '노동을 하고 싶다', '오늘 하루는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장애인의 노동권이라고 하면 너무 막연하지 않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막연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생각 '장애인은 어떻게 일을 하지?'라는 비장애 중심 사회, 능력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는 장애인 노동자가 있던데?'라고 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증의 장애인이 아니라 중증 장애인의 노동은 주변에서 쉽게 보지 못합니다. 정부의 통계에도 중증 장애인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여 애초에 노동자로 보지 않습니다.
전체 장애인 인구 중 약 70%가 실업상태에 놓여있으며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최저임금법 7조에 의해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상당히 낮습니다. 또 국가는 국민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 사용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습니다.
30년간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한 법률이 있었음에도 제정 당시와 지금 현재 유의미하게 나아지고 있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형 사업장의 경우 장애인 의무 고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생산성은 떨어지고 비용 부담이 늘어나니 장애인 노동자 고용이 아닌 보다 저렴한 '장애인 고용 부담금' 납부로 그 의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노동자의 고용을 기피하는 사업장과 노동의 욕구는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만 남는 악순환에 놓여있습니다.
여기서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권리 중심 노동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권리를 생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인 장애인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 사실 조금은 어려운 개념입니다. 권리중심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의 노동을 통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변화시키고 장애인의 권리를 생산" 하고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최중증장애인이 참여 가능한 직무로 구성"됩니다. 또한 권리중심일자리는 "중증 장애인 노동자가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을 홍보하고 직접 모니터링함으로써 협약에 근거한 장애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노동"입니다.
지난 2014년 유엔 장애인 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이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장애인 권리 보장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협약의 내용과 목적을 공론화하며 교육하지 못했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의 담지자로서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인식개선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노동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장애인(Disable)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것 아시나요?
우리는 비장애 중심 사회, 자본이 중심인 사회,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을 지워내고 시혜적인 존재로 치부해 왔습니다. 사회가 생각하는 장애인은 노동자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시설 또는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 존재, 또는 노동자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기생적인 존재로만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이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외치는 목소리는 사실 비장애인이 누리고 살아왔던 것, 단순히 시민으로 살아가게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장애인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고 교육을 통해 노동시장에 접근하는 것. 단지 누군가의 세금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시민으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요구합니다.
권리중심일자리의 슬로건은 "이것도 노동이다"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권리를 생산해 내는 노동입니다.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것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공연을 하는 것,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노동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어떻게 이게 노동이 될 수 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장애는 개인의 잘못이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며 의학적 기준으로만 장애를 한정 지어 볼 수도 없습니다. 장애는 상당 부분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이것을 방치할수록 장애를 재생산합니다. 예컨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던 이유는 개인이 지닌 손상이 아니라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이윤의 생산만을 노동이라고 부르는지, 아니면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 또한 노동으로 보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건물이나 거리를 청소하거나, 불을 끄러 가거나, 요리를 하는 것을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이 아니지만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라면 노동이라고 볼 수 있고,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 또한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변화되고 사회에 참여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많아진다면 그것이 이 사회를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들에게 단순히 어떠한 지원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서비스적인 측면이 아닌 노동을 통해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도록 접근함으로써 사회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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