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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활동 후기] 제 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 ‘함께 만드는 혼인평등’ 후기- 혼인 평등 = 혼인 50% + 평등 50%

by 행성인 2023. 2. 26.

 
슈미(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동료들은 자신의 삶에서 축하받는 순간이 많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리는 순간, 청첩장을 돌리는 순간,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 덕분에 신혼여행에 잘 다녀왔다며 답례품을 돌리는 순간, 신혼부부 행복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며/양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며 사람들을 집에 초대한 순간, 아이가 태어난 순간,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돌이 되었다며 떡을 돌리는 순간. 저는 동료들을 아끼기에 이런 순간마다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나와 동성 짝꿍의 기쁜 순간은 알린 적도, 알리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나의 기쁜 순간은 나만의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동료가 무척 부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위태로운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배우자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A 동료는 몇 개월동안 배우자의 진료에 맞춰 ‘원활하게’ 연차를 사용할 수 있었고, 배우자가 입원을 하던 시기에는 돌봄 관련 휴가 제도를 이용해 돌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으로 기차와 전철을 타고 출퇴근해야 하는 지역으로 이사하게 된 B 동료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으나,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회사의 ‘배려’로 해당 지역의 지점에 자리가 생기자 우선 순위로 발령날 수 있었습니다. C 동료는 배우자의 친척이 돌아가시자 바로 경조사 휴가 제도를 이용해 배우자의 곁을 지켰습니다. 



‘혼인 신고의 절차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절차가 간단해보이지만, 그걸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여러 권리에서 박탈됩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



그동안 저는 짝꿍과 둘이 알콩달콩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까짓 서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생각이 다릅니다. 서류에 드러나지 않는 관계는 일상에서 많은 얼버무림과 포기와 긴장이 필요했습니다. 짝꿍이 입원을 해서 연차를 낸 날에는 동료들이 어디 놀러갔다 왔냐는 질문에 집에서 쉬었다고 얼버무렸고, 1인 가구로 보여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공 주택은 짝꿍과 함께 살기 어려운 방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1.5룸이었고, 집주인이 1인 가구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비상연락망 목적으로 가족의 연락처를 적어달라는 요청에 짝꿍의 번호를 적으면서 가족보다 연락이 빠를 거라고 능청스럽게 넘겨야 했습니다. 저는 짝꿍과 일상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하는데, 정작 어느 순간에도 서로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까짓 서류는 생각보다 중요했습니다.  

제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 ‘함께 만드는 혼인평등’ 진행 스케치

 
 

‘혼인 평등 = 혼인 50% + 평등 50%’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류민희 변호사

 
 

그래서 지난 2월 18일에 진행된 제 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에서 ‘함께 만드는 혼인평등’ 세션을 들었습니다. 이번 세션은 혼인평등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부터, 지금까지 혼인평등 법제화를 위해 어떤 투쟁을 해왔는지, 우리가 혼인평등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저는 짝꿍과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살고 싶어서 혼인평등에 가볍게 관심이 있었을 뿐인데, 혼인 평등은 생각보다 복잡한 의제였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혼인평등은 ‘성소수자의 평등한 시민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제’이면서 ‘성소수자들의 욕구가 높은 의제’ (박한희, 「왜 지금 혼인평등을 말하는가」, 『제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 자료집』 중)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혼인평등을 중점으로 운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동성혼 법제화 중장기 의제 투쟁 목표
 ‘2026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한 동성혼 법제화’ 

 
 

물론, 혼인신고가 썩 유쾌한 제도는 아닙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혼인평등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성애적 혼인 제도에 동성애자만이 편입되는 결과가 아닌’ ‘성소수자가 처한 구체적 차별의 현실을 바꾸어내는 의제’이자, ‘성적 권리와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장’ (박한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단단한 언어들로 엮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서 혼인평등이 달성되면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졌습니다. 일단, 저는 결혼식 축의금을 내느라 텅장이 될 저의 지갑이 약간은 걱정되지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의 결혼식을 할지 궁금합니다. 어서 혼인 평등된 세상이 성큼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나아갑시다. 평등의 첫걸음을 떼고 사랑이 이길 때까지.’ (박한희)

 
 
 

* 아래 사진은 필자 개인의 요청으로 게재하는 바, 본문의 행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2월 25일 행성인 회원 엔진과 콘딕의 혼인신고 축하파티에서 혼인평등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하는 슬릭